조선 건국, 이방원이 주도한 왕자의 난, 그리고 광해군, 인조 반정 등은 이미 사극으로 숱하게 만들어진 역사적 소재들이다.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역사가의 말처럼, 사극은 오늘에 발을 붙이고 '과거'의 이야기들을 늘 새롭게 '각색'한다. 바로 '조선 건국'과, '광해군' 시절의 이야기도 예외가 아니다. 누가 어떤 관점에서 해석하느냐에 따라 역사 속 인물들은 때로는 영웅이 되고, 때로는 악의 축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제 2019년 가을에 찾아온 이 '역사'들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다시 씌여진다. 그리고 그 아버지의 이름을 가진 역사 속에서 상상력의 힘으로 탄생한 아들들은 '아비'의 나라라는 숙명에 맞서 싸운다. 

 

 

아버지와 아들, 그 애증의 관계 
<나의 나라>는 고려 말 조선 초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이다. 당연히 이성계 부자가 등장한다. 하지만 극중 이성계로 분한 김영철과 그의 다섯 번째 아들인 장혁이 분한 이방원은 그간 이 시대를 배경으로 했던 사극과 달리 주인공이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조선 개국과 그 이후 다시 벌어진 두 차례의 왕자의 난에는 바로 아버지 태조 이성계와 훗날 태종이 된 이방원의 '부자의 애증' 관계가 놓여있다. 

'애썼다', 그 한 마디면 됐을 거라는 이방원, 하지만 아비인 이성계는 자신과 함께 조선을 건국한 동지이자, 아들 중 가장 특출났던 다섯 째 아들 이방원을 끊임없이 견제했을 뿐이다. 심지어 이제 왕좌를 이어받기에 차고도 넘치는 아들들을 두고 후처로 맞이한 선덕왕후 강씨에게서 난 어린 왕자 방석을 후계자로 삼았다. 결국 이런 이성계의 결정은 아버지의 신임을 얻지 못한 방원이 스스로 왕좌를 찬탈해 가는 두 차례의 왕자의 난을 초래하고야 만다. 

이렇게 이성계와 이방원의 엇갈리는 부자의 애증 관계가 드라마의 씨실이 된다면, 그 씨실의 결을 채워가는 건 또 다른 부자의 애증관계이다. 바로 이성계를 도와 조선 건국에 앞장선 남전, 안내상이 분한 남전은 정도전과 남온을 합친 듯한 가상의 인물이다. 일찌기 고려의 실력자였고, 이제 조선의 건국에 앞장선 개국 공신, 그런 그의 위세 앞에 그림자 속에 숨어든 청년이 있었으니 바로 그의 아들 남선호(우도환 분)이다. 하지만 그는 아비를 아비라 부를 수 없는 노비의 아들인 '서얼'이다. 적자인 형이 물에 빠져죽자 니가 죽었어야 했다는 모진 말을 들으며 자란 남선호는 세상에 보란듯이 '입신양명'하여 아버지 남전 앞에 당당하고 떳떳한 아들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무과 시험에서도, 요동 정벌에서도 늘 운명의 고비에서 '인정' 받아야 한다는 욕구가 그로 하여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아비의 주군인 이성계에게 중용이 되었지만, 남선호는 결국 깨닫고 만다. 아비인 남전에게 자신은 그저 '권력'을 위한 수단이었음을, 유일하게 자신을 믿어주었던 연이의 죽음 앞에 선호는 이제 더는 아비의 '개'가 되지 않겠다 결심한다. 아비의 추악한 뒷모습을 남김없이 확인하고나서야 비로소 아비에게서 자유로워지려한 아들, 하지만, 그 결심은 이미 늦었다. 그가 어찌해보기도 전에, 자식보다 '권력'을 탐한 아비는 가 그 '권력'의 칼날 앞에 무참히 쓰러지고 말았다. 

그런가 하면 주인공인 서휘(양세종 분)는 아버지가 없다. 이성계의 오른 팔이었던 서휘의 아버지 서검은 우연히 알게된 비밀로 인해 억울한 죽음을 맞이했다. 아버지가 없는 세상에서 어린 동생과 함께 살아내기 위해 사선을 넘나드는 서휘, 동생을 살리기 위해 남전의 첩자가 되었고, 이방원의 칼날 앞에 놓이게 되었다. 하지만 시련 속에서 다듬어진 서휘의 기지는 이방원의 눈에 들었고, 서검의 아들은 그를 죽음의 끝에서 건져낸다. 아비가 없었지만 적과 내 편을 알 수 없는 정쟁 속에서 어느덧 '부자'와 같은 돈독한 믿음을 가지게 된 이방원과 서휘, 불신의 부자 관계들 속에서 외려 이 '의사 부자' 관계의 믿음이 결국 역사적 승리를 거머쥐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로서 <나의 나라>를 주목할 관전 포인트이다. 

 

 

아들을 죽여야 사는 아비 
광해군은 왕이 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의인왕후 박씨에게서 소생을 얻지 못한 채 공빈 김씨 등에게서 임해군, 광해군 등 13명의 아들과 10명의 딸 본 선조, 그 자신이 후사 없이 죽은 명종의 대를 이었던 조선 최초 방계 혈통의 왕이었던 만큼 정실에 의한 왕가의 계승을 중요시여겼다. 그래서 그의 나이 51세, 선조 자신이 19살인 인목왕후를 정비로 들였다. 

하지만 이미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버리고 '파천'을 벌이는 등 권위가 떨어진 선조와 달리, 문제가 많았던 임해군 대신 세자가 된 광해군이 신하들의 신뢰를 얻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 kbs2의 <녹두전>은 바로 이런 선조와 광해군이 가진 부자의 갈등 관계를 불러온다. 임진왜란이라는 위급한 상황에 밀려 어쩔 수 없이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했던 선조는, 그 광해군 대신 광해군이 낳은 아들을 왕으로 책봉하겠다고 했다는 역사적 상상력을 덧댄 것이다. 

이미 세자로서 전장을 누비며 갖은 어려움을 겪으며 왕이 될 날만을 고대하던 광해군에게 이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비보였고, 결국 스스로 자신의 아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차마 갓난 아이를 죽일 수 없었던 왕의 벗이자 충직한 신하였던 정윤저(이승준 분)는 허윤의 묵인 아래 외딴 섬으로 가 왕의 아들인 녹두를 자신의 아들인 양 키운다. 

 

 

그러나 좁혀져 오는 왕의 의심을 피해 녹두를 없애려는 허윤의 피습은 외려 녹두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를 찾아 한양을 찾는 계기가 된다. 자신을 죽이려는 자들이 과부촌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과부가 되는 여장을 해서라도 존재의 진실에 다가가려 한 녹두는 결국 자신이 왕의 아들임을 알게 된다. 조금 더 왕의 곁으로 다가가기 위해 무과에 응시하고 녹두가 자신의 아들인 줄 모르고 광해군을 그를 급제를 시켜 자신의 곁에 둔다. 

한편 일찌기 아버지로 부터 시작하여 늘 자신의 자리에 대한 불안을 감출 수 없었던 광해는 스스로 자신의 아들을 죽이려 했고, 아버지가 후사로 삼으려 했던 영창조차 궁에서 쫓아낸다. 그런데 이제 죽였던 아들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의 벗인 허윤조차 한 칼에 베어버리는 폭주를 하는 광해, 그런가 하면 정작 가장 의심을 받지 않으면서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훝날 인조 반정의 주인 율무, 그리고 광해군의 곁에서 그가 가장 믿을 만한 무관이 되어 아비의 폭거를 지켜보게 되는 녹두,  광해군의 운명이야 이미 역사적으로 판명난 것이지만 역사적 상상력으로 덧댄 뒤늦게 자신의 존재를 깨닫게 된 광해의 아들은, 죽여야 했던 자신의 아들을 알게된 광해는 과연 어떤 운명을 선택할 것인가. 이 부자 관계의 행보가 궁금하다. 

by meditator 2019. 11. 11. 1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