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드라마로서도 <쓰리데이즈>는 참 재미있다. 

북에서 내려온 리철규 소좌를 자신의 기자 회견장에 세우는 배수의 진을 친 대통령(손현주 분), 하지만, 그런 대통령의 시도는 오히려, 이제 그와, 그를 도운 경호관들조차 사기꾼 집단으로 만들어 버리는 자충수가 되어 옮아매어 진다. 더구나, 그 올가미의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그 누구보다도 한태경(박유천 분)이 믿었던 한태경의 동료이자, 청와대 법무팀방인 이차영이다. 도무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그래서 매회 작가와 제작진에게 뒤통수를 맞으면서도 기꺼이 내 뒤통수가 멍이 들도록 거기에 머리를 들이밀게 만드는 재미를 <쓰리데이즈>는 선사한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9회를 통해 대통령과 한태경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 대사는, 드라마를 넘어 오늘을 사는 우리가 한번쯤은 새겨들어야 할 명언들이다. 

‘쓰리데이즈’ 박유천, 장동직 무사히 빼돌리는데 ‘성공’

이동휘; 그래야 옳은 거잖아요.
이제 탄핵을 받으면 대통령 관저를 비우라는 통보를 하고 난 후, 우리가 어떻게 만들어 온 정권인데 이렇게 만들 수가 있냐는 신규진 비서실장(윤제문 분)의 원망섞인 힐난에, 이동휘 대통령은 딱 한 마디로 대답한다. 하지만 그래야 옳은 거지 않냐고? 그런 이동휘의 답에 신규진 비서실장은 반문한다. 그런 사실이 우리 사는데 무슨 도움이 되냐고? 경제가 좋아지냐고, 정치가 달라지냐고? 사람들은 그걸 몰라도 살아간다고. 

아니 오히려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 살아가고 싶어한다. 골치 아프게 과거의 진실들을 알아서 자기 사는데 머리 아프기만 하다고 생각하며 외면한다. 이동휘 대통령의 사실이지 않냐는 묵직한 한 마디는 그래서 뭉클하기까지 하다. 우리가 저마다 살아가야 한다는 핑계를 대고 외면하고 살아가는 삶의 이면에 숨겨진 진실들을 내보이는 것같아서. 

드라마 속 양진리 사건으로 형상화되어 나타난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며 그 결결이 잊고 살았던 진실들이 그 대사 한 마디에 울컥 솟아올라 가슴을 친다. 멀게는 '과거사 진실 위원회'가 밝혔냈던 친일파 인명 사전에 올랐던 사람들의 진실에서 부터, 뒤늦게서야 밝혀졌던 제주도 4.3 사건 등,그리고 가깝게는 지금도 우리 사회 어디에선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내걸고 진실을 밝히려 애쓰고 있는 제주도에서부터, 쌍용자동차, 그리고 평택, 밀양 송전탑 현장에까지 우리가 잊고 사는 또 다른 양진리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드라마 속 신규진 비서실장은 노골적으로 재신과 손을 잡고 대통령을 탄핵하는데 앞장서는 협잡꾼이지만, 사실 현실의 우리들은 또 한 사람의 신규진이 되어 누군가의 진실을 외면하고 살아간다. 사는데 보탬이 되지 않으니깐. 

그래서 이동휘의 수식어가 붙지 않은 한 마디는, 그 한 마디만으로 많은 이야기를 전하고, 듣는 사람의 가슴을 울리고, 부끄럽게 한다. 그래서 이 드라마 <쓰리데이즈>가 좋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뻔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 누구도 선뜻 하기 힘든 직언을 우리들에게 해주어서, 그렇게 드라마를 통해서라도 부끄러운 이 시간이, 마치 고해 성사를 대신 해주는 것처럼 시원하기도 하다. 

(사진; obs)

한태경; 저의 선택입니다. 
하지만 사실을 밝히려는 대통령의 행보는 쉽지 않다. 재신 김도진 회장(최원영 분)의 예언대로, 대통령은 그가 진실을 밝히려 하면 할 수록 입지가 좁아지고, 사람이 죽어간다. 9회에서도 그를 돕고자 기자 회견장에 나선 리철규 소좌가 죽었다. 
그리고 힘들게 그를 기자회견장까지 데리고 온 한태경은 그의 살인 누명까지 쓰게 되었다. 그런 한태경을 보고 대통령은 후회한다. 그의 아버지 한기준이 자신의 아들만은 이 일에 끌어들이고 싶어하지 않았는데, 의지할 곳이 없었던 대통령은 이제 겨우 3년차 된, 자신을 위해 죽기엔 너무 어린 경호관과 일을 도모하게 된 것이 무겁다. 
하지만 그런 대통령에게 한태경은 말한다. 이것은 자신의 선택이라고. 

그저 누군가를 지켜야 하는 직업에서 시작하여,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이 출발점이었고, 억울하게 죽어간 아버지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사명감이 추진체였다면, 이제 9회에 들어, 한태경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자신의 선택으로 이 일을 선택하게 된다. 그래서 김도진이 한태경에게 한태경에게 이동휘에게와 마찬가지로 네가 무슨 일을 하려 하면 할 수록 네 주변의 사람들이 죽어갈 거라는 협박에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당신이 얼마나 미친 사람인지 세상이 알게 하겠다고 자신있게 대꾸할 수 있게 되었다. 어른 세대가 저지른 과거가 과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오늘을 사는 세대의 임무로 발현되는 과정, 그저 직업 정신이 투철한 한 청년이 자각된 역사적 인간으로 거듭나게 되는 모습을 <쓰리데이즈>는 주인공 한태경을 통해 생생히 그려낸다. 그리고 김도진 일당의 2014년 사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런 한태경 세대의 결심은 양진리를 되풀이 하지 않는, 즉 역사적 과오을 되풀이 하지 않는 진정한 진보가 되는 것이다. 


물론 현실은 팍팍하다. 이동휘 대통령이 친 배수의 진은 오히려 그의 자작극으로 그를 옭아매고, 진실을 향해 뛰어든 한태경의 용기는, 자기 아버지의 죄를 덮으려고 살인조차 저지르는 파렴치범으로 매도된다. 
하지만 그래서, 더 <쓰리데이즈>를 응원하게 된다. 현실은, 한태경이 만난 검찰처럼, 그리고 그에게 뻔하게 각색된 스토리의 질문을 던지는 언론의 그것이지만, 우리가 만나는 드라마 <쓰리데이즈>에서만큼은, 그런 바늘 구멍하나 보이지 않는 암울한 현실을 뚫고 진실을 밝히려 하는 주인공들이 승리할 테니까. 그렇게 라도 우리도 왜곡된 현실의 숨통을 튈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조금은 덜 부끄럽게 사는 용기를 얻어 가질 테니까 말이다. 좋은 드라마다.  

그리고 이 좋은 드라마의 훌륭한 대사들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 이동휘 역의 손현주와, 한태경 역의 박유천에게 감사한다. 그들의 진정성어린 연기가, 대사를 그저 대사가 아닌, 진실이 되어 가슴에 와닿게 해준다. 두 사람이 인터뷰를 통해 밝혔던 진정성이란 각오가 그저 입에 발린 말이 아니었음을 매회 두 사람의 연기를 통해 확인하고 감동받아 행복하다.


by meditator 2014. 4. 3. 0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