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이동휘 역을 맡은 손현주 씨가 인터뷰에서 당부했었다. 4회까지 봐달라고. 

손현주라는 배우가 결코 식언을 하는 사람이 아닌 것을 드라마 <쓰리데이즈>는 4회에 이르러 증명한다. 4회에 이르러 이 드라마는 그간 3회 까지 진행되어진 이야기들이, 그저 본 게임에 앞선 에필로그였음을, 진짜 이야기는 이제 비로소 시작되었음을 마치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의 장엄한 팡파레가 울려퍼지듯이 웅장하게 펼쳐보인다. 

그렇다고  <쓰리데이즈>가 3회까지 펼쳐놓은 이야기들이 결코 소박하지는 않았다. 1회 서민의 생활을 살피기 위해 시장으로 나섰던 대통령이 다짜고짜 밀가루 세례를 맞는가 싶더니, 세 발의 총성과 함께 대통령이 사라졌다. 대통령 암살 음모를 파헤치는 이야긴가 싶더니, 불현듯 암살범이 전면에 등장한다. 하지만, 이야기는 다시 다른 각도로 펼쳐진다. 암살 위험을 피해 도망간 것으로 여겨졌던 대통령은 음어의 비밀과 함께 피치못할 이유로 단 한 명의 수행원을 대동한 채 청주역에서 특별 검사를 만나려 했단다. 

그리고 드디어 4회, 3회에 이르기까지, 때로는 장황하게, 때로는 번잡스럽게 진행되었던 이야기들은 응집력을 가지고 한 곳으로 모아진다. emp탄의 무차별 공격으로 사고를 만난 대통령은 의도하던 만남을 이루지 못했고, 특별 검사는 주식 조작 과정에 개입한 대통령의 비리를 조사하던 과정에서 발견한 탄핵감의 과오를 만천하에 밝힌다. 3회까지 몰두했던 대통령의 암살은 또 다른 거대한 음모 혹은 사건의 발화점에 불과한 것이 되어버렸다. 


3회 까지의 과정에서 절대악은 경호실장이었다. 사실을 밝힌 한태경에게 대뜸 총구를 들이밀은, 당당하게 자신의 거쳐였던 경호관저 2층에서 대통령을 겨누었던 그의 존재감은 대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4회에 들어, 그가 대통령을 죽이려 했던 98년의 사건이 전면에 드러나면서, 한태경의 아버지를 비롯한 자신의 측근들에게 진실을 가릴까 두렵다는 토로를 했던, 정신이 혼돈한 과정에서도 모든 것이 거짓말이라고 되뇌이는 대통령의 말에서, 우리가 그간 알아왔던 드라마적 진실이 시험대에 오른다. 

대통령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밝히고자 하는 사실이 진짜 진실이라면, 사명감을 가지고 폭로에 앞장선 특검의 진실은 무엇이며, 지켜야 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며 암살에 앞장선 경호실장의 진실은 또 어떤 것인가 의문을 남긴다. 만약 순조롭게 암살이 진행되어다면, 특검의 발표대로 모든 혐의를 뒤집어 쓴 당사자가 되어버린 대통령을 만드는 거대한 세력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진다. 한 개인의 사명감에서 시작된 암살 시도가 대통령조차도 필요에 따라 제거해 버리려 하는 거대한 국가 전복 음모로 변모되는 과정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 국가적 음모가,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것이기에 드라마 <쓰리데이즈>가 그저 여느 블록버스터 급 장르물과 다르게 전율을 느끼며 우리에게 다가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진; 스포츠 한국)

하지만 <쓰리데이즈>의 매력은 단지 회를 거듭하며 스케일을 키워가는 블록버스터급 이야기의 스케일에만 있지 않다. 오히려, 그 안에서 놓치지 않는 고뇌하고, 고민하고, 그리고 싸워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있다. 3회의 단 한 장면 등장했던 대통령이 기차 안에서 신참 경호원 한태경과 만들어 내는 훈훈한 장면의 기억이 오래도록 남듯이, 거창한 이데올로기와, 막연한 불의가 아닌, 진실을 향해 순수하게 나아가는 인간의 본성,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부딪치며 빚어내는 인간미가 거대한 악의 세력에 대항하는 힘이 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심어준다. 결코 자기 자신 대신 누군가를 총알받이로 만들 대통령이 아니란 비서실장의 단언처럼, 긴박했던 사건들 속에서, 오래 뇌리에 남는 것은, 유언처럼 되새기게 되는 대통령의 나직한 하지만 단호한 진실을 밝히겠다는 선언이다. <싸인>, <유령>을 이어, <쓰리데이즈>까지 이어지는 이제는 '갓은희'라 칭송받는 작가 김은희의 세계관이기도 하다. 

<쓰리데이즈>는 또한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아버지 세대의 과오로 인해 펼쳐진 사태에 휘말려 들어간 우직한 경호관 한태경과 그의 주변 인물들의 고군분투기다. 아버지 세대의 과오를 알고, 그것을 시정하려는 누군가와 그것을 막으려는 세력 사이에 던져진 아들 세대의 고뇌와 결정은, 곧, 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에게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실천적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이다. 재미는 있지만, 결국 보고 나면 나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괴로운 드라마가 될 것이다. 하지만, 단 4회 만에 기꺼이 <쓰리데이즈>가 요구하는 고행을 기꺼이 감내하게 만드는 드라마, 그것이 이제 비로소 시작된 <쓰리데이즈>의 힘이다. 


by meditator 2014. 3. 14. 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