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2까지 이어진 <낭만 닥터>가 27%가 넘는 성과를 거두고 종영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다. 당연히 아직 '의학 드라마'의 여운이 남아있는 상황, 여기 아직 시작하기도 전에 야심차게 시즌 2를 장담하며 서막을 열어젖힌 또 한 편의 의학 드라마가 있다. 지난 2017년 <슬기로운 감빵 생활>로 <응답하라> 시리즈에 이어 새로운 장르의 드라마를 선보인 신원호 사단이 출사표를 던진 <슬기로운 의사 생활>이다. 

 

 

의학 드라마의 클리셰를 보기좋게 비껴가며 
시작은 매우 '의학 드라마'답게 시작한다.  양석형(김재명 분)의 집을 찾은 채송화(전미도 분), 그런데 낡은 석형의 집에 전기가 나가고 이를 고치러 온 전기 수리 기사는 부주의하게 맨손으로 전기를 다루다 그만 감전을 당하고 만다. 일촉즉발의 상황, 하지만 채송화는 환자를 돌보고, 양석형은 동료 침착하게 119에 신고를 한다. 이어진 병원, 서로 친구인 듯한 신경외과 채송화와, 소아외과 안정원(유연석 분), 흉부외과 김준완(정경호 분)의 '의사 생활'이 우리가 지금껏 보아왔던 의학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이어진다. 당연히 보는 시청자는 이 드라마가 '신원호'사단의 드라마인 것을 잠시 잊은 채 우리가 보아왔던 여느 의학 드라마와 비교하며 그 만듬새를 품평하게 된다. 

그러던 중 등장한 이 병원 재단 이사장이 생사의 기로에 놓였다는 소식, 아니 그간 의학 드라마에서 그 '익숙하던' 재단을 둘러싼 클리셰가 여기서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가 싶다. 이사장의 아내로서 등장한 김해숙 씨의 분위기와, 어쩐지 그와 엇물리는 모기업 전무로 나타난 김갑수 배우의 포스는 전형적인 재단을 둘러싼 이권 다툼의 냄새를 한껏 뿜어낸다. 

하지만 그렇게 전형적인 병원과 그속에서 이전투구를 일삼는 재단의 권력 비리를 다룰 것같던 <슬기로운 의사 생활>이 여전히 신원호 표 드라마임을 밝히는 건 김해숙 씨의 자녀들이 등장하면서 부터이다. 안드레아라는 이름의 막내 아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 '하느님의 자녀'가 된 네 아들과 딸들, 그렇다면 그간 신원호 사단의 드라마답게 이제 율제 재단을 이어받을 막내 아들 찾기가 이어질라나 싶은데, 바로 소아외과 의사인 안정원이었음을 밝히며 싱겁게 아들 찾기는 막을 내린다.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그간 의학 드라마에 익숙했던 시청자들의 기대를 보기 좋게 뒤엎으며 막내 아들인 안드레아가 제 발로 재단을 '악의 축'같은 전운(김갑수 분) 전무에게 넘긴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알고보니 어머니(김해숙 분)의 어릴 적부터 둘도 없는 친구였던 것. 시청자들을 의심하도록 만든, '여기가 어디라고 와?'라는 대사는 아픈 아내가 있어 상가에 오지 말라는 어머니의 당부를 어길 정도로 착하고 고지식한 사람이라는 뜻이었고 도시락을 싸들고 찾아간 어머니의 눈에 띈 그는 아내의 병상 옆에서 잠들어 있었다. 그간 의학 드라마들이 보여준 클리셰에 익숙한 시청자들의 허를 찌른 것이다. 마치 이 드라마는 그간 여러분들이 보던 그런 '의학 드라마'가 아니예요 라고 말하는 것처럼. 

 

 

결국은 선함이 슬기로운 것이다? 
무시무시한 재단 이상장의 아내일 것같은 어머니도, 그런 어머니를 상대로 재단을 넘볼 것 같던 모 기업의 전무도 알고보니 둘도 없는 우정을 나눈 어릴 적 친구였던 것처럼, 그렇게 신원호 사단의 <슬기로운 의사 생활>은 <슬기로운 감빵 생활>에 이어 다시 한번 무지막지하게 '선한 사람들의 월드'를 불러온다. 아마도 신원호 사단에게 이 세상을 사는 '슬기로운 방식'은 '성선설', '착하게 살자'인 듯 싶다. 감빵이라는 가장 열악한 인간의 현실 속에서도 '휴머니즘'을 길어내더니, 첫 회를 선보인 <슬기로운 의사 생활>에서도 다르지 않다. 

친구들에게 재벌가 막내 아들임을 숨겼다고 다그침을 당하던 안정원에게 중요한 건 '키다리 아저씨'로 하여금 가난한 환자들을 돌보게 하는 일이다. 어쩌면 그건 그가 형과 누나들에 이어 종교의 부름을 받지 않은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가 굳이 재단 이사장을 마다하면서도 vip 병실의 이권을 놓지 않은 이유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그런 그의 '선한 의도'와 같지 않다. 어린 환자는 그가 출퇴근을 마다하고 병상을 지켰지만 결국 세상을 떠난다. 어머니는 끝까지 어린 딸의 손을 쉽게 놓지 못한다. 환자의 곁을 지키던 간호사와 의사들, 그들 모두의 책임을 안정원은 스스로 짊어지고자 한다. 하지만 그토록 의료진을 다그치던 어린 딸의 엄마는 이제 고개를 조아린다. 감사하다고. 고마웠다고. 이런 식의 '인간적인 반전'이 바로 신원호 사단이 말하는 바 '사람 사는 모습'이요, 슬기로운 삶인 듯 싶다.

이익준이 수술을 들어간 동안 당연한 듯 그의 아이를 채송화가 돌보고, 채송화가 일어서자 맞은 편에 앉았던 두 친구 준환과 석형이 자신의 웃도리를 벗는다. 그 양복 웃도리를 구겨지는 거 상관없이 둘둘 말아 채송화의 다리가 비껴선 아이의 머리에 베어주고 다른 한 명의 옷으로 덮어주는 장면, 이들의 사소하면서도 익숙한 우정의 장면은 20년지기 이들의 사람 냄새 나는 우정을 보여주는 단적인 장면이다. 

어머니는 뇌종양으로, 아들은 간이식을 받아야 하는 처지의 엄마는 세상에 나보다 더 재수가 없는 사람은 없을 거라 절규한다. 하지만, 채송화의 기지로 응급으로 이루어진 이익준(조정석 분)의 수술과 기대 이상으로 좋은 어머니의 결과는 단박에 한 여인을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으로 만든다. 마치 상황이 때론 '인간을 시험에 들게 만들지만 결국 인간의 '슬기로움'은 그 상황을 이겨내고 본래의 '선함'으로 귀결될 것이다'라고 드라마는 첫 회부터 선언한다. 

그리고 그걸 설득해 내기 위해 응답하라 99년의 그로부터 20년 후를 설정한다. 이제는 마흔 줄이 된 친구들이 다시 모였다. 저마다 싱글인 그들은 예의 <응답하라> 시리즈처럼 다시 남편 찾기를 할 지도 모른다. 심지어 저마다 내로라하는 의사가 되었다. 그러나 제작진은 단호하게 말한다. 그저 사람사는 이야기라고. 얽히고 설킬 다섯 의사들의 인연 그 서사를 넘어 '병원'을 배경으로 한 '사람들이 사는', 사람 냄새 풀풀나는 이야기라고. 2020년 유난히도 각박한 이 봄에 과연 이번에도 신원호 사단은 그들의 '슬기롭게' 라고 쓰고 '착하게'라고 읽혀지는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대중을 설득할 수 있을지 그 '성선설'의 마법을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20. 3. 13. 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