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 사회라고 하지만 그 단어를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들은 아마도 별로 없을 것이다. 세상 어디를 가도 눈에 보이지 않는 '급'들이 서로 나뉘어져 있다. 학교를 평준화시켜놨더니 학교 내에서 우열반이 생기고, 이제 그 '우'반들이 일반 학교를 벗어나 외고니 과학고니 자사고니 자가발전 하는 걸 보면 '급'을 따지며 무리를 나누는 건  인간 사회의 본원적 속성이 아닐까 라는 생각마저 들게 만든다. 

사랑이라고 예욀까? 일찌기 고전 <춘향전>으로 부터 시작하여 '사랑'은 그 인간 사회의 '급'으로 부터 비극을 잉태한다. 양반집 자제 이몽룡과 기새의 딸 춘향 사이에 던져진, 어떻게 너네가 사랑을 할 수 있어? 라고 하는 고전적 질문이 늘 '러브 스토리'의 주된 갈등이었다. 세월이 바뀌면 좀 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젊은이들은 너와 나 사이에 그어진 보이지 않는 금으로 인해 아프다. '음악'을 배경으로 하여 우리 사회 젊은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실감나게 담아내고 있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속 젊은이들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준영과 송아는 다르다? 
'좋아요, 좋아해요'
송아(박은빈 분)는 자신을 뒤따라 온 준영(김민재 분)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았다. 아침마다 '트로이메라이'를 치며 정경(박지현 분)을 향하던 복잡한 마음을 덜어내던 준영은 이제 더는 '트로이메라이'를 치지 않지만 여전히 정경의 모친으로 부터 시작된 경후 재단과, 그 손녀 정경, 그리고 정경의 연인 현호(김성철 분)과의 얽히고 설킨 관계로 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아니 피아노를 치는 것만으로 만족하며 살기에는 너무도 '현실적'인 그의 주변 관계들이 준영으로 하여금 늘 자신을 뒷전에 두게 만들었고 그렇게 살아왔던 그의 '습관'과도 같은 태도가 송아의 담백한 고백 앞에서 주춤거리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준영은 송아에게 조금씩 다가가고 싶었다. 송아와 함께 밥을 먹고, 처음으로 학교 이곳 저곳을 둘러보며 '안식년'답게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시간이 좋았다. 하지만 그런 준영과 송아의 행보는 좁디 좁은 음대 안의 '스캔들'이 되었다. 

경영학과를 나온 송아를 조교로 써먹고 싶은 교수의 속셈이야 어떻든 졸업을 앞두고 대학원이라는 가능성이 열린 송아는 기쁘다. 졸업 연주회도, 대학원 입시도 잘 해보고 싶은 송아, 그런 송아에게 친구 민성은 준영에게 반주를 부탁해 보라고 한다. 사랑하는 여친이니 작은 별을 연주한다고 해도 해주지 않겠냐며. 

하지만 그 시각 어려운 경제적 처지를 돌파하고자 다시 시작한 콩쿨 레슨에서 유태진 교수는 현실적인 조언을 서슴치 않는다. 쇼팽 콩쿨에서 1등없는 2등으로 한동안 피아노 연주계를 휩쓸었던 준영이지만 얼마전 다른 연주자가 1등을 하며 연주회조차도 만석을 채우기가 쉽지 않은 처지, 어머니 수술비 2000 만원조차 마련하지 못한 자괴감을 떨치고 시작한 레슨에서 유태진 교수는 콩쿨에서 우승하기 위해서는 모든 심사위원에게서 고르게 우수한 점수를 받아야 한다며 준영의 연주법을 에돌아 '비난'한다. 

다시 시작한 콩쿨 레슨의 딜레마와 더불어 유태진 교수는 송아와의 관계를 들먹이며 행여 송아의 반주를 맡는 실수를 범하지 말라며 일침을 박는다. 그게 어떠냐는 준영의 힐난섞인 눈빛에 유태진 교수는 네가 반주를 하면 제 아무리 송아가 잘 해도 준영 덕이라는 이름표를 뗄 수 없을 것이라며 준영과 송아의 처지를 가른다. 

그런가 하면 그동안 경후를 통해 '매니지먼트'를 맡았던 준영에게 해외 매니지먼트 대리인으로 찾아온 박과장은 그가 오랫동안 해왔던 정경과 현호와의 트리오를 들먹이며 다시 한번 준영의 '급'을 운운한다. 경후의 그런 '급'에 안맞는 매니지먼트가 이제 연주회조차 여의치않은 준영의 내리막길을 조장했다며 준영의 현실 인식을 다그친다. 

결국 준영은 송아의 간절한 눈빛에도 불구하고 송아의 반주에 대해 외면한다. 그리고 송아와 사귀냐는 질문에 단호하게 아니라고 못을 박는다. 송아가 자신 앞에서 가리던 오케스트라 자리 배치도처럼, 혹시나 자신으로 인해 송아가 상처를 받게될까하는 준영의 '너무도 깊은 배려'였지만 결국 준영은 자신을 둘러싼 사회가 나누어 놓은 '급'다른 처지를 인정한 셈이 된 것이다. 

 

 

사랑에도 급이 있나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네 남녀의 사랑이라는 멜로적 테마를 씨줄로 하여, 거기에 서령대 음대를 배경으로 하는 우리 나라 음악계의 풍조를 날줄로 '갈등'을 더한다. 좁디 좁은 음악계 서로의 출신과 인맥에 따라 나뉘고 갈라지는 이합집산의 무리들, 그들은 서로 더 좋은 인맥을 잡기 위해 애쓰고, 자신의 인맥을 기르고 가르고, 그 무리에 들지 못하는 사람들을 밀쳐내며 그들만의 '리그'를 만든다.

거기에 주인공 네 사람은 저 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그 리그에 던져진다. 쇼팽 콩쿨에서 우승한 준영이야 그 '리그'의 vip인 셈이다. 경후 그룹의 외동딸이자, 경후 재단의 손녀인 정경 역시 유리한 위치를 점한다. 그에 반해 실기 1등에 외국 유학 경력을 가졌지만 평범한 부모님의 편의점 일을 도우며 레슨을 전전하는 현호의 처지는 그간 늘 애인 정경에 걸맞지 않는 파트너라는 자격지심을 가지게 했다. 경영학과를 다니다 뒤늦게 음대에 진학하여 잘 나가는 동기들 사이에서 실기 꼴찌의 성적을 받아든 송아의 처지는 준영과 사귄다는 사실만으로 스캔들이 되듯 '언감생심'의 처지이다. 

하지만, 세상이 나눈 급과 달리 정작 당사자들의 처지는 저마다의 짊어진 무게가 더하고 덜할 것이 없다. 박준영이라는 이름 석자만으로도 '환호'를 받는 처지이지만 경후의 지원이 없이는 불가능했으리라는 처지가 늘 준영의 어깨를 짖누른다. 경제적 배경은 든든하지만 서령대 교수 자리에 연연해야 하는 정경 역시 마음이 조급하다. 

세상의 잣대와 저 마다의 딜레마 속에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속 청춘들은 고뇌하고 그 고뇌는 음악이라는 배경만 다를 뿐 이 시대 젊은이들의 그것과 일치하기에 드라마는 공감을 낳는다. 

조금씩 다가오겠다는 준영, 하지만 함께 하는 시간에도 저마다 짊어진 삶의 무게로 인해 준영과 송아의 데이트는 무겁다. 사랑은 나누고 싶지만, 함께 나눌 수 없는 각자의 고민이 함께 하는 시간에도 함께 마음을 나눌 수 없도록 만든다. 이들이 짊어진 삶의 무게와 사랑을 소통할 그 무엇이 있을까? 

결국 세상이 그어놓은 선을 넘어설 사랑에의 용기가 아닐까. '과연 내가 준영을? '하던 복잡했던 자신의 마음을 담백하게 좋아요 라고 전했던 송아처럼, 그리고 그런 송아에게 송아와 자신의 사이에 수많은 금을 그어대는 사람들의 무리에서 뛰쳐나와 송아에게 '좋아요'라고 다가선 준영의 화답처럼 말이다. '상처받고 또 상처받으면서도 어찌할 수 없는 사랑말이다. 

우리의 심금을 울리던 수많은 '러브 스토리'는 그들을 가른 수많은 역경을 '사랑'의 힘으로 넘어선 커플들의 아름다운 그리고 용기있는 도전의 역사였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속 준영과 송아란 캐릭터가 울림을 주는 건 자신이 짊어진 무게를 온전히 스스로 감싸안으며 거기에 더해 자신에게 온 사랑에 뒤걸음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좋아요'가 더욱 감동을 더한다. 과연 이 '용기있는 젊은이들이 어떤 선택을 해갈지 그 뒷이야기가 궁금해진다. 

by meditator 2020. 9. 23. 15: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