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에서 방영되어 화제가 되었던 <자본주의> 5부작, 이 다큐는 자본주의는 빚이라고 정의 내린다. 즉 실물과 실물의 교환에서 시작된 거래는, 그것의 규모가 커지고 복잡해지면서, 물물교환대신 그 상징물인 '돈'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경제는 실물이 아닌, 허상의 세계의 '운명적인 장난' 속에 휩싸이게 된다. 그리고 그 운명적인 장난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은행, 그 은행이 발전의 핵심적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 자본주의의 고도화된 형태인 금융자본주의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더 이상 실물 경제와 금융 경제의 구분이란 의미없는 것일 지도 모른다. 크리스티안 마라찌는 [금융자본주의의 폭력]을 통해 이제 금융 경제는 실물 경제에 기생하거나, 비생산적인 위치를 넘어선다고 지적한다. 우리가 슈퍼에서 장을 보고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그 순간부터, 금융은 바로 우리 곁에서 숨쉬고 있으며 우리의 일상에서부터, 거대 산업까지 신용 메커니즘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금융 시장이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불안정하고 불확실하게 움직인다는데 문제가 생긴다. 더구나, 그 불확실하고 불완전한 시스템의 희생자는 언제나 약자라는 사실이 더 심각한 것이다. ebs의 <자본주의>는 금융자본주의의 메카니즘을 의자 놀이에 빗댄다. 노래하고 춤추며 의자를 빙빙 도는 동안, 함께 즐기는 듯 하지만, 노래가 멈춘 순간, 누군가는 탈락해야 하며, 그 탈락자는 대부분, 가진 것이 적거나 없는 사람들이다. 

(사진; OSEN)

하지만 일상의 삶 속에 매몰된 우리들이 자본주의라거나, 금융 자본주의의 폐해를 자각하게 되는 경우는 드물다. <개과천선>에서 보여지듯이 은행에서 적금보다 이윤이 높다하여 CP를 샀는데, 그게 종이쪼가리보다 못하게 되는 바람에 피해를 입게 되는 경우처럼, 내가 직접적으로 희생자가 되어야, 아,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구나 라고 절감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1985년부터 거의 2년 주기로 금융 위기를 되풀이하며, 그 위기를 발판삼아 자신을 키워 온 금융 자본주의는 우리가 잊고 사는 동안, 신문 지상을 화려하게 장식하며 우리 경제를 잠식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우리가 몰랐거나, 무지했던 금융 위기의 민낯을 이제 드라마가 친절하게 '학습'시켜 주는 중이다. 

이제 마지막 2회만을 남김 <골든 크로스>, 강도윤(김강우 분)이 테리영이 되어 나타나는 동안, 대한민국 상위 1%로, 대한민국의 경제를 좌지우지해왔던 골든크로스 멤버들은, 이제 각자 자신의 이익으로 인해 자가분열 중이다. 한민 은행 재매각과 관련된 펀드 조성 과정에서, 각자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고자, 김재갑 전 부총리(이호재 분), 서동하(정보석 분) 경제부총리 내정자, 마이클 장(엄기준 분)은 각자 자신이 새롭게 조성될 펀드의 주재자가 되기를 원한다. 말로는 금융 허브를 지향하며, 대한민국 최초의 펀드를 조성한다고 하지만, 결국 그 이면에 숨겨진 것은, 자신이 불법적으로 돈을 끌어모아, 그것을 좌지우지하며 권력을 행사하겠다는 욕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부도덕한 사건으로 사표를 냈던 서동하가 경제 부총리 청문회를 앞두고 자신있어 하는 것도, 바로 자신이 그 펀드의 주최자가 될 것이라는 야심이다. 

그에 앞서, 강도윤의 아버지가 죽음에 이르게 된 과정에서 보여지듯이, 이미 골든 크로스 멤버들은, 강도윤의 아버지같은 직원들을 무작정 해고해 가면서, 충분히 회생 가능성 있었던 한민 은행을 수치를 조작하면서 부실로 만들어 외국계 사모 펀드인 마이클 장의 손에 안겨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서동하와, 김재갑 등 골든 크로스 멤버들은 개인적으로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이렇게, 정, 재계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춰 은행 하나쯤은 거뜬히 들었다 놨다하면서, 거기에 속한 애먼 직원과 고객들을 희생시키는 과정을 <골든 크로스>는 강도윤 가족의 비극사와 복수를 통해 착실히 설명한다. 

<개과천선>은 좀 더 전문적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변호법인 모처를 연상케 하는 ,차영우(김상중 분) 펌의 김석주(김명민 분) 변호사의 기억 상실과 그로 인한 개과 천선의 과정을 다룬, 이 드라마는, 기억을 잃은 김석주가 얽혀진 사건을 풀어나가며, 현재 대한민국을 난맥상으로 만든 금융 자본의 실체를 낱낱이 까발린다. 

김석주의 약혼자라는 유정선이 법정 구속 당한다. 그리고 김석주는 유정선이 법정 구속까지 당하는 과정에, 과거의 김석주가 설계자로서 개입했다는 것을 알게되고, 유정선을 돕기 위해 법원을 드나들면서, 자신의 설계에 따라 유림이 발행한 불법적인 CP를 사들이는 바람에 애꿏은 피해자가 된 수많은 시민을 목격하게 된다. 여기서 연상되는 것은 바로 얼마전 신문 지상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모 그룹의 사태다. CP를 샀던 애먼 시민들이 떼로 몰려들어 통곡을 하고, 그것을 정확히 모른 채 팔았던 담당자가 스스로 목숨을 거두었던 경제 사회면 기사를 통해 얻어 들었던 모 그룹의 사태가, <개과천선>이라는 드라마를 통해 착실히 복습된다. 즉, 드라마 속 유림 기업은, 갚을 능력이 없으면서도, 자기 기업의 부실을 막기 위해, 불법적으로 대량으로 CP를 팔았고, 그로 인해 다수의 사람들이 피해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드라마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우리는 신문 지상을 통해 망해버린 줄 알고 있는 이 기업이, 사실은 외국계 은행이라는 자금 도피처를 통해, 그리고 그룹의 또 다른 계열사에 대한 순진한 사람들의 탄원서 등으로 인한 구제로 인해, 결국은 자신의 피해는 최소화한 채, 모든 피해를 아무 것도 모른채, CP를 샀던 사람들에게 돌린 채, 자신들의 기업은 온전히 지켜내는 과정을, 김석주의 약혼자가 구속되는 유림 사건을 통해 알게 해준다. 즉, 신문이 보도해 준 기사 이면의 진실을 김석주가 과거의 김석주와 대면하고, 대결하는 과정을 통해, 사건의 실체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학습시켜 주는 것이다. 



<개과천선>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들었다 놨다 했던, 파생 금융 상품 사건에 대한 실체를 설명하기 위해, 김석주 아버지에게 찾아온 중소기업 대표들의 억울한 사정을 끌고 들어온다. 즉, 중소기업들의 환투기 사건으로 시작된 이 사건이, 사실은 은행 측에서, 순진한 중소 기업을 상대로 한 환율 변동과 관련된 사기 사건이라는 것을 드라마는 설명하는 중이다. 즉, 환율의 등락에 시달리던 기업들이, 은행의 말만 믿고, 결국은 자신들에게 절대 불린한 금융 파생 상품을, 자신들에게 유리해 보이던 환율이 낮은 시기에 샀다가, 결국은 환율이 오르면서, 중소 기업이 감당할 수 없는 빚을 떠안게 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까발린다. 

덕분에, <골든 크로스>이든, <개과천선>이든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현학적으로 등장하는 경제 관련 용어들과, 전문적 대사들에 다보고 난 후에도, 내가 과연 제대로 이해를 한 것인지 헷갈릴 정도다. 하지만, 그간 신문 지상에서 조차, 다 알 수 없었던 경제 관련 사건들의 진실을 어렴풋하게나마라도 이해 할 수 있게 해준다. <개과천선>의 김석주 말대로 얼마나 사람들이, 그리고 내가 순진한 것인지를 절감하게 해준다. 
드라마로 공부하는 경제라, 뭐 그렇게 드라마에서 조차 골치 아프게 경제 어쩌고 해야 하게냐고 하지만, 드라마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멀쩡한 은행이 수치 조작 몇 개로 넘어가고 애먼 직원들과 돈을 맡긴 사람들만 희생이 되는 세상, 은행 말만 믿고 샀던 증권이 하루 아침에 휴지 조각이 되어버리는 세상, 안정적으로 기업을 유지하려다가, 오히려 덤태기를 쓰는 세상에서, 오죽 갑갑했으면, 드라마까지 나서서 진실은 이렇다고 설명해 내고 있겠는가 말이다. 드라마라도 나서서 진실을 '학습'시켜줘야 하는 세상, 이것이 바로 현재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그래도, 개과천선한 김석주처럼, 진실을 알리고자 애쓰는 드라마라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말이다. 전국민을 상대로 한 무차별적 학습(물론 시청률의 장벽은 있지만), 이보다 더 좋은 무료 동영상 강의가 어디 있겠는가. 


by meditator 2014. 6. 13. 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