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종영한 야왕과 관려된 우스개가 있다. 남편 유노윤호를 죽음으로 내몬 수애의 자동차 폭파 장면을 보면서, 수애를 <아이리스2>로 보내 그 능력을 대아이리스 첩보 활동에 쓰이게 해야 한다던가, 남자 주인공 하류의 복수가 늘 수애의 악행에 한끝 차이로 뒤지자, 하류는 <돈의 화신> 이차돈에게 좀 배우고 와야 한다던가 하는 등의 내용이었다. 드라마를 보면서 답답했던 내용을 다른 드라마의 능력자를 통해 풀어보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의 발현이랄까? 하류보고 한 수 배우라는 대상이 되었듯이, <돈의 화신> 이차돈(강지환 분) 변호사는 어린 시절 교통사고를 당한 이래 탁월한 두뇌회전력으로 복수의 상대방 지세광(박상민 분) 일당을 코너에 몰아넣고 은배령을 감옥으로 보내버렸다. 하지만 그도 잠시, 종영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돈의 화신>이차돈은 급기야 교도소살이까지 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복수는 하류였지만, 신분만으로 보면, 교도소 출신임에도 변호사로 승승장구한 하류가 나은 편 아닐까?

 

사진출처; tv리포트

 

최후에 웃는 자가 진짜 웃는 것이다?

다시 <야왕>으로 돌아가서, 종영을 앞둔 이 드라마의 시청률은 이병훈 감독이 심혈을 기울인 50부작 대하사극 <마의>를 앞질러 버렸다. 사람들은 하류의 복수가 시시하다 하면서도 주다해의 '업그레이드'되는 악행을 보는 재미에 채널을 고정시켰다. 대부분 시시한 드라마도 막방이 되면은 시청률이 오르기 마련인데, 천민의 신분에서 어의에 오르는 그것도 휴머니즘의 극강을 보인 백광현(조승우 분)의 성공스토리를 악행 하나로 퍼스트레이디에 오르는 주다해의 또 다른 성공 스토리가 눌러버렸다. 이병훈 감독이 말하고자 한 진솔한 한 인간의 미담식 성공보다는, 무슨 짓을 하던 성공만 하면 돼! 라는 주다해의 악행이 더 사람들에겐 익숙하고 이해가 되었다는 듯이.

왜 욕을 하면서 <야왕>을 보느냐고 하면, 사람들은 악녀 주다해가 어떻게 망하는지 봐야 하겠다고 이구동성이다. 그런데, 망하는 걸 보기에, <야왕> 뿐만이 아니라, <돈의 화신>도 그렇고 대부분의 복수극들은 악행을 저지르는 대상이 망하는 시기는 극이 끝날 때쯤이요, 그때까지는 끊임없이 되풀이되거나 심지어 승화되는 악행의 잔치판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야왕>의 하류는 복수를 하는 과정에서 사랑하는 딸과 형을 잃었고, 그로인해 주다해의 두번째 남편까지 목숨을 잃었다. <돈의 화신>도 이차돈이 제법 복수를 하는 것같은데, 들여다 보면 잃는 건 늘 이차돈 뿐이다. 지세광은 서울시장에 나갈 정도로 승승장구하는데, 이차돈은 횡령에 살인범으로 몰리다, 복수를 위해 스스로 선택했다지만 교도소 행이요, 그가 사랑했던 복재인 일가는 처참하게 무너져버렸다. 마치 복수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하류나, 이차돈처럼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릴 각오가 되어있어야 하는 게 복수다 라고 오히려 두 드라마는 역설적 교훈을 주기라도하는 것처럼.

물론 퍼스트 레이디가 된 주다해가 결국은 몰락하고 말듯이, 지세광도 성공의 정점에 올라갔을 때 처절하게 무너져 내릴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몰락과 함께 드라마도 끝나고. 이른바 복수극의 딜레마, 혹은 클리셰가 바로 이것이다. 내거는 것은 복수극이라고 하지만, 복수를 하기 위한 악행에 드라마가 기대어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드라마가 진행되는 내내, 시청자들이 보아야 하는 것은 오르락내리락하는 악행의 롤러코스터이다. 복수는 짧고 악행은 주구장창이랄까.

 

▲ 야왕 스포일러 사진 공개 /베르디미디어 제공

 

그럼에도 복수극이 보고싶은 것은?

<야왕>과 <돈의 화신>을 보면 재밌는 공통점이 드러난다. 악의 축이 되는 세력들은 경제적 부의 축적을 결코 간과하지 않지만, 그것을 통해, 혹은 그것을 기반으로 퍼스트레이디라던가, 서울시장같은 정치적 권력을 부여잡는다는 것이다.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이 있듯이 실제 대한민국의 권력 지형에 있어 누가 더 힘이 센가를 논하는데 있어서는 이론의 여지가 충분히 있지만, 드라마를 통해, 그리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무리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면을 봤을 때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시청자들이 생각하는 대한민국의 지도층은 바로 그런 방식으로 형성되었다는 것이 아닐까?

드라마는 물론 유독 대한민국에서, 정치 혐오증이 심하고, 정치 엘리트들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치는 건, 드라마 속에서도 형상화 되었듯이, 해방 이래 제대로 된 자정 노력없이 그놈이 그놈임을 실감하게끔 정치 엘리트 층이 형성되었고, 개발 독재 시절에 공공연하게 정경 유착이 이루어졌음을 역사를 통해 충분히 학습된 결과라 하겠다.

그러기에 몇 십년의 세월을 통해 공공히 쌓아올려진 그 권력들의 척결은, 드라마 내내 당하기만 하는 절치부심의 그리고 그것조차도 사실은 환타지인 복수를 통해서만이라는 지점에 사람들은 공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13일 횡령에 살인의 혐의를 받은 이차돈이 검사 지세광에게, '영혼없는 정의, 정의없는 힘'이라며 일갈하듯, 사적 복수로 시작한 주인공의 행로는, 악이 축에 대한 실체를 자각하며 '공적 복수'로써의 정당성을 얻어가고 강력한 추동엔진의 성능을 장착하게 된다. 복수는 복수이되, 정의가 되는 순간이다. 덕분에 시청자들도, 주인공의 미운 놈이, 시청자들에게도 미운 놈이 되면서, 복수를 즐기는 정당성을 얻어가고.

복수극은 애잔하다. 주인공은 모든 것을 잃고 만신창이가 된 마지막에 가서야 웃게 된다. 그리고 그런 복수이나마,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정경 유착의 권력형 비리의 끝을 보려고 기다리는 시청자들은 더 애잔할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드라마 속 나쁜 놈은 착한 놈이 만신창이가 되서라도 물고 늘어지면, 결국은 망한다. 그게 어디인가. 아마도 기다리면 언젠가 망하는 그 나쁜 놈을 보려고, 시청자들은 한 송이 국화 꽃을 기다리듯 복수극을 지켜보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by meditator 2013. 4. 15. 0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