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에 거만하게 기대어 앉은 장동민이 앞의 제작진들에게 호기롭게 큰 소리를 친다. 조금 뒤, 조명이 꺼지고 급 정색을 하며 일어난 장동민은 여태까지 큰 소리를 치던 제작진들에게 고개를 깍뜻하게 조아리며 인사를 한다. 이렇게 방송의 겉과 속을 까발리는 듯한 짧은 스폿 광고로 줄기차게 시청자의 시선을 끌어안고자 애썼던 <방송국의 시간을 팝니다(이하 방시팝)>가 12월 10일 첫 회에 이어, 18일 2회까지 마쳤다. 잔뜩 벌려놓았던 광고 덕인지 호기심을 가지고 지켜 보았던 1회가 케이블 프로그램의 성공을 가늠하는 1%의 시청률을 넘었지만(1회 1.189% 닐슨 코리아), 2회만에 0.872%로 떨어짐으로써 갈길이 멀다는 것을 증명하고 말았다. 


내놓고 큰 소리를 친 명목은 그간 지리멸렬했던 각종 예능 프로그램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출연자들에게 프로그램의 제작까지 맡긴다는 취지에서 <방송국의 시간을 팝니다>라고 했지만, 출연자인 장동민, 유세윤, 이상민 등이 각자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프로그램으로 시청률을 가지고 승부를 본다는 기본적인 컨셉에 있어, <마이 리틀 텔레비젼>이 연상된다. 즉, 내놓고 말은 할 수 없어도 <마이 리틀 텔레비젼>이 없으면 등장할 수 없었을 프로그램 중 한 편인 것이다. 그리고 올 한 해 여러 편 등장했던 <마리텔>의 아류들처럼 <방시팝> 역시 청출어람 대신 귤화위지(枳;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가 되었다. 


橘化爲枳

<마리텔>의 청출어람? 
단지 <방시팝>은 그간 주도면밀하게 <마리텔>을 연구한 듯, 그간 <마리텔>이 가지고 있던 단점들을, 그리고 <마리텔>의 모작이라 비교될만한 지점들을 '소거'한 채 신선한 콘텐츠인양, 방송국의 시간을 운운하며 등장했다. 
그간 <마리텔>에서 한 시간 내에 보여주기에 버겁다고 매번 지적되던 많은 출연자들을 <방시팝>은 정리하여, 네 사람, 그것도 첫 번째 회차에는 초짜 출연자인 유재환을 제외한 세 사람만의 콘텐츠로 방송을 꾸렸다. 거기에, 이 방송, 저 방송 보여주느라 한 방송의 내용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다는 <마리텔>의 또 다른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한 사람의 콘텐츠에 충분한 시간을 제공했다. 또한 답답한 마리텔의 카메라와 제작 방식을 벗어나, 출연자 1인의 아이디어로 제작되는 콘텐츠이되 그 공간적 영역에 있어서 제한을 두지 않음으로써 다양한 방식을 구현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렇게 <마리텔>의 청출어람을 지향한 <방시팝>, 그렇다면 그 연구 성과는 어떠했을까? 자칭 cj의 아들이라 자평하는 장동민을 비롯하여, 역시나 cj 계열 케이블 예능 <더 지니어스>, <the bunker>를 비롯한 프로그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이상민, 그리고 유세윤이 합류했다. 그리고 '무도가요제'를 통해 각광을 받기 시작한 유재환이 깜짝 출연자로 합류했다. 

장동민, 그리고 이상민, 유세윤은 그들의 면면에서 부터 '아이디어'가 특출한 연예인으로 특징지어지는 사람들이다. < 더 지니어스; 그랜드 파이널>에서 쟁쟁한 스펙의 출연자들을 쥐락펴락했던 장동민이나, 장동민만큼은 아니지만, 그 빠른 두뇌 회전력으로 호평을 받았던 이상민, 그리고 독특한 아이디어로 뮤지와 음악작업을 하는 등 독자적인 행보를 보이는 유세윤은 이미 그들의 출연만으로도 콘텐츠의 보증서가 된다. 

그리고 그들 자신이 콘텐츠의 보증서가 된 세 사람은 야심만만하게 그간 자신들의 머릿 속에서만 꿈틀거렸던 아이디어를 <방시팝>을 통해 펼친다. 장동민은 거창하게 나폴레옹에서부터, 고릴라, 낙타 등 동물까지 들먹이며 거창한 이름을 붙였지만, '인간적인 예능'을 승부욕이 강한 연예인들을 출연시켜 풀어간다. 그저 팔 굽혀 펴기 경쟁에, 오줌참기, 침 삼키지 않기, 심지어 잠자기 않기까지, 가장 인간적인 욕구들을 가지고, 승부욕에 불탄 출연자들이 투혼을 불사르는 장면은, 그 자체로 '웃음의 코드'가 된다. 장동민에 이어 등장한 유세윤은 이미 사전에 홍보가 되었던 '쿠세 스타'의 판을 벌인다. 노래를 잘 하는 것과 상관없이, 자기 자신만의 독특한 노래 부르는 습관 등을 통해 '합격' 판정을 받는 묘한 경연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상민은, 보고 싶었지만 볼 수 없었던 <더 지니어스>의 승부를 재연한다. 그가 회심의 첫 카드로 보여준 것은 바로 임요한; 홍진호의 임진록의 결판 승부이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장동민, 유세윤, 이상민이 준비한 콘텐츠들은 각자 수긍이 갈만한 웃음의 코드들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세 코너 모두, 안타깝게도 화제성은 있었지만, 지긋이 프로그램을 시청으로 끌고가기엔 지구력이 딸리는 듯 보였다. 인간 본연의 욕구를 승부욕으로 불사리는 장동민의 경기들은 초반에 팔굽혀 펴기를 할 때만 해도 역동적인 듯 보였지만, 이후 오줌참기, 침 삼키는 것 참기를 넘어서 쏟아지는 잠을 참기로 가서는 지루해졌다. 마찬가지로, 유세윤의 쿠세스타는 그가 준비한 아이디어는 야심찼으나, 막상 방송 분에서 보여지듯이, 그의 야심찬 쿠세스타의 화제성을 뒷받침 해줄 스타가 드물었다. 심사위원들이 합격, 불합격을 선정하는데, 시청자들의 고개가 함께 끄덕여 질 쿠세의 '공감'이 아쉬웠다. 이어진 이상민이 야심차게 준비한 '임진록', 하지만 2회에 걸쳐 장황하게 진행된 게임은, 홍진호, 임요한의 결승이라는 화제성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만다. 무엇보다, 두 사람의 게임이 화제가 되었던 것은, 홍진호, 임요한이 스타크래프트 게이머로서 각자의 전략과 전술이 걸출하게 맞붙은 그 지점인데, 그것을 그저 심리전과 요행에 치중한 포카로 대치한 다는 것은 여러모로 아쉬운 지점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제 2회를 보여준 <방시팝>은 그들이 그간 연구해, 스스로 청출어람이라 자평하고 내보였지만 역으로 <마리텔>의 장점을 증거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어수선하지 않게 한 출연자당 충분한 방송 시간은 '충분하지만' 동시에 그 출연자의 프로그램에 호응을 하지 않는 시청자가 리모컨을 들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즉, <마리텔>은 예을 들어 백종원 방송을 띄엄띄엄 배치함으로써 오히려 그외의 콘텐츠마저 강제 시청하는 효과를 낳지만, 서로 호응하는 시청층이 다른 <방시팝>은 시청자가 자기가 좋아하는 프로그램만 골라보는 선택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무엇보다, <방시팝>이 증명한 것은, 콘텐츠가 '아이디어'만으로 제작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방시팝> 예고 방송에서 장동민이 '그까이꺼'를 외쳤지만, 막상 장동민도, 유세윤도, 그리고 이상민도 각자의 아이디어는 신선한 것들이었지만, 그 진행 과정은 늘어지거나, 웃음의 포인트를 제대로 잡지 못했다. 즉,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진리를 다시 한번 증명하고 만 것이다. 거기에, 최근 새로인 출범하는 예능마다 모습을 보이고 있는 장동민, 이상민 등에 대한 권태감도 슬슬 밀려들기 시작한 점 또한 <방시팝>의 생각지 못한 복병이다. 
by meditator 2015. 12. 18. 1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