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하지 않는 사랑'이 있을까? 남자와 여자 사이의 사랑에는 쌍생아처럼 '후회'란 단어가 수반된다. 사랑하기에 함께 하고자 했던 시간들, 하지만 사람과 사람의 관계이기에 늘 생각지도 못한 '운명'의 복병들이 일찌기 '로미오와 줄리엣' 이후 수많은 사랑 이야기들의 발목을 잡는다. 그 운명을 거스르지 못한 이들이 맞아야 하는 '이별'의 파국', 그래서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은 그 '후회'를 막기 위해,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신선한 '장치'들을 고안해 낸다. 

 

 
2004년 개봉하여 '자기 희생'적인 사랑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2017년 재개봉한 <이프 온리>는 죽은 줄 알았던 아내 사만다(제니퍼 러브 휴이트 분)가 잠을 깨보니 다시 남편인 이안(폴 니콜스 분) 옆에 있다는 '기적'으로 시간을 되돌린다. 그런가 하면 많은 이들의 '인생 영화'가 된 <어바웃 타임>에서는 모태 솔로인 팀((도놀 글리슨 분)에게 알고보니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가계'의 비밀이 있었다. 덕분에 그는 옷장을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 엇갈린 연인 메리(레이첼 맥아담스 분)와 인연의 끈을 이어갈 수 있었다. 

기적도 발생했고, 시간을 돌리는 기적도 써먹었고, 이제 더는 사랑의 기적을 위해 써먹을 것이 있는가 싶었는데 <러브 앳>이 '평행 세계 이론'을 들고 나왔다. SF물에서 흔한 설정이 된 '평행 세계'가 이제 '사랑'의 묘약으로 등장한다. 잠을 깬 주인공라파엘(프랑스와 시빌 분)은 하룻밤 사이에 평행 세계의 또 다른 공간에 와있다.

 

   

 

같지만 다른 공간 속으로 떨어진 남자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 전혀 다른 공간, 어젯밤 그는 늦게 들어와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자신의 일과 작업에만 몰두하다 아내 올리비아(조세핀 자피 분)와 싸웠다. 한때는 피아니스트의 꿈을 꿨지만 그 꿈을 접은 채 아이들에게 피아노 교습을 하고 있는, 그래서 싸우기만 하면 남편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다고 하는 그 말을 오늘도 어김없이 끄집어 내는 아내의 말에 화를 내며 물건을 집어 던졌고, 집을 나와 홀로 술을 마셨었다. 그리고 자는 아내 곁에서 잠들었는데 자고 일어나 보니 아내가 없다. 하지만 아내의 부재 대신 오늘 있을 중학교 강연에 온통 신경이 쏠린 그는 학교로 향하고 그곳에서야 자신이 같지만 다른 공간에 와있음을 알게 된다. 

그가 있었던 세계에서 <졸탄과 새도우>라는 SF소설 한 편으로 잘 나가는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되어  인터뷰와 강연으로 이어진 나날을 보내던 라파엘, 작가는 커녕 몰래 카메라인 줄 알았던 중학교가 이곳 세계에서 문학 교사로서 그가 일하는 직장이란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이곳의 그에게는 아내가 없다. 우연히 거리에서 발견한 아내는 저쪽 세계와 달리 꿈을 이뤄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되어있다. 

라파엘은 긴가민가 자신의 말을 믿어주는 오랜 벗이자 같은 학교 선생님이 되어있는 펠빅스(프랑스와 시빌 분)의 도움을 받아 원래 그가 살던 세계로 돌아가고자 갖가지 해프닝을 벌인다. 그가 생각한 방법이란 이곳에서 다시 올리비아의 사랑을 얻는다면 그래서 그들이 서로 사랑하게 된다면 저쪽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인데, 아내의 사랑을 얻기 위해, 아니 우선 무엇보다 아내의 눈에 띄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라파엘의 갖가지 해프닝이 프랑스 영화다운 화법으로 <러브 앳>을 채운다. 

 



당신이 사랑하는 건?
최첨단 과학 이론을 들고 나온 작품답게 영화를 여는 건 가상의 세계 속 치열한 전투 장면이다. 적들의 숨막히는 추격전을 겨우 피하는가 싶은 주인공, 알고보니 그 장면은 아직 다 써지지 않은 라파엘의 습작 노트 속 내용이었다. 대학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인 라파엘, 하지만 오로지 그를 사로잡고 있는 건 가상 세계 속 졸탄의 활약을 그린 SF물, 친구인 펠릭스가 걱정을 하건 말건 그는 좀처럼 풀리지 않는 작품의 다음 장이 고민이다. 

그런 그가 우연히 들려온 피아노 소리에 이끌려 학교 구석의 창고같은 방에 발을 들여놓은 라파엘은 그곳에 숨어 피아노 연습을 하고 있는 올리비아(조세핀 자피 분)에게 첫 눈에 반한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연주를 남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다는 올리비아의 수줍은 고백은 바로 습작을 들켜 왈칵 화를 내버리며 교실을 뛰쳐나왔던 라파엘의 심정, 그렇게 피아니스트와 작가의 꿈을 가진 소녀 올리비아와 소년 라파엘은 첫 만남의 긴장으로 '졸도'하며 사랑의 레이스에 돌입한다. 

영화는 소년과 소녀로 만났던 이들의 10년 후, 그리고 평행 세계 속 공간에서의 조우를 그린다. 로맨틱 코미디답게 그곳에 있던 아내가 지금은 없다는 이유만으로 다짜고짜 다시 아내와의 사랑 만들기가 이전의 공간으로 돌아가기 위한 해법이라 결론을 내린 라파엘의 구애는 맹목적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다보면 문득 의문이 생긴다. 과연 라파엘이 얻고 싶은 건 이곳에서 자신을 남처럼 여기는 아내의 사랑을 얻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저쪽 세계에서 베스트 셀러 작가로 이름을 날리게 된 후 벽을 때려 부숴 집을 넓히고 TV에도 출연하고 여기저기 싸인을 하고 다녔던 그 '명망'의 시간이 그리운 것일까? 이곳에서 라파엘에게 인기란 학교 문학 교사로서의 그것뿐이고, 친구의 썰렁한 농담을 들으며 함께 탁구를 치며 벽을 넓히지 않은 좁은 집에서 홀로 살아가고 있다. 이것을 못견디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러브 앳>은 같은 공간, 다른 차원의 설정을 통해 로맨틱 코미디의 설정을 풀어나가지만, 뜻밖에도 그 '사랑'의 해프닝을 통해 관객은 다른 질문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그건 맹목적인 라파엘만이 아니라, '사랑'의 이름으로 진통을 겪는 많은 남녀의 관계들 사이에 숨겨진 '퍼즐'일 지도. 우리 역시 사랑이라 쓰지만 다른 것들을 그 속에서 찾아 헤매다 갈등을 일으키니 말이다. 

하지만 라파엘은 자신이 '사랑'하는 게 아내인지, 과거의 삶인지에 대한 고민, 고뇌 없이 저쪽 공간으로 돌아가기 위해 올리비아에게 다시 저돌적으로 다가선다. 그리고 운명처럼 팬이었다가, 스토커였다가, 할머니를 도와드리는 자원봉사자였다가, 올리비아 전기의 유령작가로 신출귀몰한 라파엘은 드디어 그녀에게 '남자'로 다가서게 된다. 

그러나 그녀의 사랑을 얻기만 하면 되는 것같던 '평행 세계'의 퍼즐은 수업 시간 학생들이 나누는 대화를 통해 진짜 실마리를 얻게 되고, 그녀의 연주회에 간 라파엘은 마지막 열쇠를 그녀에게 넘긴다. 그리고 그녀의 배려 덕분에 마지막 연주회라 생각하며 입장한 그곳에서 라파엘은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에 맞춰 비로소 자신이 놓쳤던 '사랑'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뒤늦었지만 비로소 사랑을 깨닫게 된 라파엘은 <이프 온리>의 이안에 버금가는 결단을 내린다. 

그리고 라파엘의 결단은 훈훈한 로맨틱 코미디로서의 영화가 엔딩을 맞이한 후 돌아가는 길의 관객에게 여운으로 남는다. 과연 사랑을 위해 나는 무엇을 포기할 수 있을까라며. <러브 앳>은 로맨틱 코미디로서의 화법에 충실한다. 하지만 그저 '사랑'의 기승전결만이 영화의 전부는 아니다. 영화는 외려 그 '사랑'의 질감을 묻는다. 당신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꿈조차 사랑할 수 있습니까? 아니 그 사람의 꿈을, 삶을 존중하고 있나요?  그 사랑하는 이를 위해 당신의 꿈을, 당신의 명망을 포기할 수 있나요?라고. 

by meditator 2019. 12. 1. 20: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