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고현정이 합류했지만, 온전히 '어르신'들이 주인공이 드라마, 그게 가능할까 싶었다. 당연히 시청률 지상주의 '공중파'에서는 그 '어르신'들을 위한 자리는 없었다. 대신 '시청률'과 무관하게 '어른'들의 이야기가 종종 등장하는 tvn이 '어르신'들의 자리가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디어 마이 프렌즈>, <꽃보다 할배>가 할배만큼, 젊은이들에게 열광적인 호응을 얻었듯, <디어 마이 프렌즈>도 '어르신'들보다, 오히려 '어르신'들과 소통하지 못했던 젊은, 혹은 어른신이 될 세대에게 공감을 얻었다. 4%~8%를 오르내리는 tvn 드라마로는 그다지 나쁘지 않은 시청률로는 설명할 길 없는, 어설픈 '로맨스 그레이'가 아닌 '어르신들'의 진솔한 속내만으로 이어간 16부의 이야기는 '꼰대'로 시작하여, 그저 나이가 들었을 뿐, 똑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마음을 울렸다. 




왁자지껄 시끌벅적 어르신들의 적나라한 사연으로 시작하여, 
노희경의 드라마가 그렇듯, 드라마는 가장 적나라한 '어르신'들의 현실적 모습으로 시작된다. 시골 마을 동창인 '어르신들', 그들 각자의 모습은 우리 사회 어디선가 만날 법한 그분들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바람을 핀 남편에 대한 트라우마를 동창에게 푸는 딸에 집착하는 열혈 가장인 엄마(장난희-고두심분), 시골마을 동창으로 만나 70평생 부부로 살았지만, 시부모로 부터 남편까지 이어지는 '구박'과 자식들 뒷바라지로 이골이 난 엄마(문정아-나문희 분), 그리고 남편마저 떠난 빈 집에서 자식들 부담주지 않으려 고독과 싸우는 엄마(조희자-김혜자 분), 이혼한 자식이 남겨놓은 그리고 엄마도 되지 못한 채 한평생 가족들 뒤치닥거리를 하다 처녀로 늙은 여전한 미스(오충남-윤여정 분). 화려한 배우이지만 그 뒤편에 남겨진 것은 고독과 병과의 싸움인 이혼녀(이영원-박원숙 분), 그리고 그들의 딸이라 칭해지는 나이 마흔이 넘도록 시집 못간 늙다리 노처녀(박완-고현정 분). 그들은 노희경 드라마답게 만나자마자 왁자하게 으르렁거리고 시끌벅적하게 자신의 사연을 풀어놓는다. 

그리고 영화에서처럼 길위에서 죽자고 다짐했던 오랜 우정, 정아와 희자가 길을 떠나며 그저 여느 우리네 어르신들의 시끌벅적한 사연은 각도를 달리하기 시작한다. 더 이상 거치적거릴 것이 없다며 기꺼이 친구를 대신하여 감옥으로 가려했던 고운 우정은, 치매로 이어지며 밤마다 성당에 가서 고해성사를 해야 만 했던 가슴 속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희자 이모의 다하지 못한 애닮은 모정의 사연으로 구비구비 전개된다. 그저 늘 말많은 가부장 남편의 그늘에서, 요구많은 딸들의 하루에서 방패막이 처럼 살며, tv를 보며 미련하게 언젠가 훗날 세계 일주를 꿈꾸기만 하던 정아 이모의 일상은 평생 고생만 하다 결국 하루의 여행조차 마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친정 엄마의 죽음으로 자유를 향한 무한한 일탈로 귀결된다. 극성스러웠던 난희 엄마의 열혈 모성은, 암이라는 브레이크 속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만들고 이제 딸을 놓아줄 수 있는 여유를 남긴다. 배우지 못한 한을 가난한 예술가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으로 보상받으려 했던 충남의 무한 예술 사랑은 그녀가 그토록 멀어지려 했던 늙은 벗에대한 돌아봄으로 귀결되고. 

때로는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손바닥을 마주치게 만들고, 그러면서도 환타지인듯한 늙은 그녀들의 행보는, 그저 완이만 만나면 1.4 후퇴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자신의 '한'을 풀어놓지 못해 입에 모타를 다는 기자(남능미 분) 이모의 한풀이가 아니다. 치매가 걸린 희자 이모가 회귀하듯 죽은 아이로 여겨지는 베개를 등에 업고 한없이 젊은 시절의 그 길을 찾아 가듯, 그래서 뒤늦게 그 자리를 헐레벌떡 찾아간 친구 정아의 머리 끄댕이를 잡고, 그 시절 못다했던 설움을 폭발하듯, 그저 이제는 '어르신'이던 그들도, 지나온 인생 구비구비에서,  지금을 사는 젊은 사람들처럼, 똑같은 '사람'이었음을 드라마는 밝힌다. 똑같이 상처받고, 그 상처를 부등켜 안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나이가 들어버린, 늙은 '사람'.



늙은 사람일 뿐, 친구가 된 어르신들
그러기에, 그들은 그저 나이가 들었을 뿐, 거침없이 딸 완이 엄마 난희에게 '우리 이제 친구하자'라고 말할 수 있듯이, 그리고 엄마의 늙다리 친구들을, 기꺼이 '나의 늙은 친구들'이라고 말할 수 있듯이, '어르신'들은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의 '친구'로 다가온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저 그들에게 '친구'의 이해만을 바라지는 않는다. '친구'가 되었지만, 이제 그들에게는 '나이든' 사람의 자리가 있다는 것을 놓치지 않는다. 16회, 암에 걸려 수술을 받은 난희는 그토록 집착했던 딸을 놓아준다. 자신의 동생으로 인해 가족들이 겪었던 고통때문에 장애인은 안된다고 했던 '고집'에서 벗어나 딸 완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떠날 수 있는 자유를 준다. 치매에 걸린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던 희자 이모도 마찬가지다. 자신으로 인해 고통받을 자식 대신 기꺼이 요양원을 택한다. 자신의 평생을 '희생'이라 정의내린 완에게 완강하게 저항했던 희자 이모였지만, 끝까지 엄마의 자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가장 현실적인 어르신들의 모습으로 시작하여, 15회까지 <디어 마이 프렌즈>는 줄곧 우리가 외면했던 늙은 사람들의 모습을 진솔하게 전하려 애썼다. 15회, 암에 걸린 엄마 앞에 눈물을 흘릴 자격이 없다 스스로 자신의 뺨을 후려치는 완의 모습은, 곧 늙은 사람들, 어르신의 삶에 냉정했던 우리들에 대한 단죄였다. 그렇게 15회까지 '이해'를 위해 달려왔던 드라마는, 16회, 이제 이해를 받은 '어른들'에 대한 당부로 끝을 낸다. 젊은 사람들에게 당신들의 삶을 이해받으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들은 '어른'으로서의 자리를 지켜내야 한다고 말한다. 자식이라 집착하지 말고, 기대려 해서는 안된다고. 품위있는 난희와 희자 이모의 선택은 그래서 사실은 단호한 작가의 어른들에 대한 당부의 말씀이 된다. 물론 그 '슬픈' 당부에 '에필로그'도 있다. 이제, 당신들이 살아온 평생의 그 '짐'에서 내려와, 자유롭게 살라고, 아직 인생은 끝나지 않았다는 추신. 그래서, 늙고 병들어 함께 살 수 조차 없는 늙은 벗들은 함께 여행을 떠난다. 비록 정아 이모가 원하던 세계 일주는 아니지만, 기꺼이 그들이 힘닿는 그곳으로. 



늙음에 대한 이해와 당부로 깔끔하게 마무리된 <디어 마이 프렌즈>가 가능했던 것은 노희경이라는 작가가 전제가 되지만, 그것의 완결 조건은 결국 '프렌즈'를 설득했던 어르신 배우들이었다. 진짜 희자인지, 정아인지 헷갈릴 정도로, 희자와 정아와, 난희와 충남, 영원, 그리고 석균과 성재, 오쌍분 여사로 열연했던 어르신 배우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늙은 꼰대들을 '친구'로 다가오게 만들어 주신 그저 나이가 들었을 뿐 여전한 열정의 그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by meditator 2016. 7. 3. 1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