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죽었다. 

남편이 죽은 1주기, 남편이 하던 블로그의 이웃들과 함께 남편의 죽음을 추모한다. 그 자리에 남편의 후배라는 여자가 나타난다. 그런데, 후배라는 여자, 이 여자에게서 남편의 향기가 느껴진다.'

보통 우리나라 드라마의 스토리가 여기까지 진행되면, 대체적으로 그 이후에 나오는 스토리의 진행 방향은 '복수'일 경우가 많다. 나를 속이고, 나를 배신하고 딴 '년'을 사랑해? 용서할 수 없어. 죽은 너도, 그리고 너의 사랑을 받은 그 '년'도. 이렇게 되는 것이 비일비재하다. 속담에서도 그러지 않나, 씨앗에게는 부처님도 돌아앉을 거라고. 

그런데 <드라마 스페셜- 그렇고 그런 사이>는 이런 통념의 궤를 벗어난다. 아니, 통념은 통념이되, 그 통념을 좀 더 마음을 열고 들여다 본달까?


오랫동안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았던 예지원은 <그렇고 그런 사이>의 시나리오를 보고 출연을 결정했다고 한다. 드라마를 보니, 예지원이 출연을 결정했다고 하는 그 마음이 십분 이해가 간다. 

<그렇고 그런 사이>는 서울의 오래된 낡은 동네, 그 중에서도 주인공들의 집은 한옥이다. 중2가 되는 딸 유정이(이영유 )가 아토피가 심하자, 남편 태수(조연우 분)가 이곳으로 이사오기로 결정을 했다고 한다. 

화면에서 보여지는 한옥은 지난 여름의 더위가 분명한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더위에 흐트러짐이 보여지지 않는다. 
서로 가로지른 창살들이 규칙적으로 배열된 창호지 문이 둘러싼 마당은 좁지만 답답해 보이지 않고, 그 한 가운데 덩그머니 놓여진 수도와, 그 위에 드리워진 빨랫줄, 그리고 그 옆의 평상은 느긋한 한 폭의 수채화로 그린 풍경화같다. 마당 뿐만이 아니다. 꽉 짜여진 네모 칸에 갇힌 아파트와 달리, 뒷마당하며, 대문 간까지, 사람과 사람이 서로 부대끼지 않고 숨돌릴 공간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건축'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한옥은 애물단지란다.
조상들이 살던 그 모습은 정갈하고 아름다우나, 이미 문명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이 살기에는 너무도 불편한 것 투성이이기 때문이다. 한 여름 날 수돗가와 빨랫줄은 아름답지만, 계절이 바뀌면, 그건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야 하는 대상이 된다. 그래서 늘 푸근한 한옥이 좋아서 이사를 한 사람들은 그곳에서 버틸 것인가, 그 한옥의 정체성을 편의에 맞춰 변형시켜 살아낼 것인가라는 딜레마에 빠지곤 한다. 보기엔 아름답지만, 품고 살아내기엔 고통이 따르는, 그게 한옥이다.

그래서, <그렇고 그런 사이>에서 한옥은 마치 죽은 남편의 은유와도 같은 공간이다. 
딸의 병을 고치지 위해 고집을 부려 한옥으로 이사오도록 했지만, 사회적 성취가 바쁜 그는 한옥에 머무를 시간이 없다. 심지어 중2짜리 딸이, 아버지를 기억할 꺼리조차 남기지 않은 채. 그런 한옥을 지켜가는 사람은 아내 은하(예지원)다. 

은하가 지켜가고 있는 것은 비단 한옥만이 아니다. 죽은지 1년이나 지나서도 그의 블로그 이웃을 불러모아 추도식을 할 정도로, 남편의 삶을, 그리고 남편에 대한 사랑을 지켜내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사랑이, 이쁘장하고 젊은 후배의 등장으로 흔들린다. 


남편의 블로그에 남겼던 뜻모를 사진과 메시지, 아니, 지금껏 편의적으로 미화시켰던 그 모든 것들의 의미가 그녀의 등장으로 재해석되기 시작한다. 잊지못했던 남편이, 잊을 수 없는 나쁜 놈이 되어간다. 중2 딸조차 이젠 지겨워 하던 그에 대한 추모의 감정은 배신으로 돌변한다. 아름답게 '집착'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견디기 힘든 고통이 되었다. 

하지만 정갈한 한옥을 카메라를 통해 한껏 음미하듯, 드라마는 '질풍노도'와 같은 은하의 감정을 그저 지나가는 여름날 소나기처럼 다룬다. 
그리고 다른 드라마가 하지 않았던 것들을 들여다 본다. 남편이 나를 배신했다는 사실 뒤에 숨겨진 진실들을. 나 혼자만 좋아하려고 했다는 후배 준희(송하윤)의 다짐처럼, 후배를 주기 위해 샀던 꽃을 아내에게 돌리고, 오래된 한옥처럼 변함없이 살아가려고 다짐한 남편의 마음을 짚어본다. 그녀로 인해 죽음에 까지 이르렀지만, 그의 감정을 그저 불손한 것만이 아니라, 그의 감정이 닿으려고 노력했던 또 다른 지점을 염두에 두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덕분에, 소나기가 휩쓸고 지나가 다시 맑아진 한옥의 여름처럼, 남편에게서 헤어나지 못하던 은하는 남편을 보낼 수 있게 된다. 

한옥은 불편하지만, 한옥이라 가능한 것들이 있다고 한다. 기와를 다시 얹고, 벽을 다시 바르고, 기우뚱한 기둥을 잇대어 지탱하고, 사람의 손이 가면, 한옥은 오래오래 사람과 함께 그 수명을 연장해 간다고 한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불행해 지는 경우가, 나의 사랑은 완벽해야 하고, 완성형이 되어야 한다는 집착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고 그런 사이>의 은하를 힘들게 했던 것도, 잊을 수 없는 남편이 가졌던 완벽한 남편이라는 아우라가, 어느 날 나타난 후배로 인해 흐트러뜨려 지는 것이었을 것이다. 이제는 존재하지도 않지만, 그래도 온전한 나의 소유였어야 하는 그의 마음이 헤매던 그 어느 지점, 그래서 그를 죽음으로 까지 몰고간 그것을 은하는 감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남편이 없는 한옥을 지키듯, 은하는, 인간으로서의 남편을 받아들인다. 그것은 흔한 바람핀 남편에 대한 용서가 아니다. 사랑 앞에 고뇌했던 인간으로서의 남편을 이해해 주는 것이다. 오래된 한옥을 고쳐 살듯, 일그러진 남편을 그 사람대로 받아들인다. <그렇고 그런 사이>의 미덕은 바로 여기에 있다. 남편과 아내라는 사회적 관계를 넘어, 인간으로서의 연민과 이해까지 확장된 지점. 
모처럼 드라마를 보며 마음이 넉넉해 진다. 


by meditator 2013. 10. 17. 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