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검사에 임용된 이차돈에게 전화가 한 통 온다. 그간 그를 후원해준 독지가가 그를 만나겠다고. 동료들의 축하도 뒤로 하고 부랴부랴 이차돈이 찾아간 그곳엔 이른바 진고개 신사, 복화술이 있다. 그리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이차돈에게 복화술은 그간 그를 검사로 만들기 위해 들인 비용을 청구한다.

 

sbs 주말 드라마<돈의 화신>을 보는 시청자들은 '클리셰'라고 해야 하나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익숙하게 씌여왔던 모든 설정들이 하나씩 깨져나가는 걸 보면서 과연 이 드라마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나? 혼돈 속에 빠져들게 된다.

 

젊은 검사시보 이차돈(강지환 분)에게 작은 도둑을 잡으려다가 큰 도둑을 놓치게 된다며 단호하게 살인범 이관수를 포기하라고 다그치는 '정의의 화신' 지세광(박상민 분)은 알고보면 이차돈, 아니 이강석의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간 장본인이다. 그런 그가 대통령의 후광을 등에 업고 비자금을 만들고 인사에까지 개입하는 대통령의 측근이자 전 시장을 법의 이름으로 심판하고자 하는데 거칠 것이 없다. 그런데 또 한때는 살인자였어도 이제는 정의로운 검사로 살아가려나 했더니, 정해룡을 제거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이 정해룡이 실질적 대주주였던 신용금고를 인수하는 일이라니! 도무지 <돈의 화신> 속 인간의 실체는 오리무중이다. 그리고 그것이 뻔하지 않은 이야기 속으로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는 <돈의 화신>이라는 드라마의 매력이기도 하다.

 

(사진은 돈의 화신 갤러리에서)

 

큰 도둑을 잡아야 한다는 지세광 검사의 신념에 까마득한 후배 이차돈은 말한다. 자기는 신념 같은 거 없다고, 검사가 된 이유도 정의의 실현은 커녕 후원자가 되라고 해서 된 거라고. 그리고 거기에 걸맞게 이차돈은 아름다운 여자만 보면 넋을 놓고, 속내라고는 백지장으로 된 창문 들여다 보이듯이 얄팍하며 가볍기가 이를데 없는 캐릭터이다. 그런데 이 자칭 천재라고 하지만 수가 뻔한 이차돈이라는 인물이 회를 거듭할 수록 자꾸 매력적으로 보인다. 심지어, 지세광의 신념 앞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런 거 모른다고 할 때는, 마치 정의 사회 건설을 내세우며 자기 잇속을 채우던 세대에게, 솔직담백한 젊은 세대가 한 방 먹이는 거 같은 쾌감까지 느끼게 해준다. 뻔한 젊은이인데, 이관수를 결국 감옥행으로 만들듯이, 그만의 정의 구현 방식이 궁금해 진다. 거창한 목적도 없지만 허위의식도 없는 새로운 인간형의 도래랄까?

 

<돈의 화신>의 사랑 이야기도 만만치 않다. 복재인(황정음 분)과 이강석은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흔히 만나는 어린 시절의 첫사랑 인연이다. 그런데 그 인연이란게, <돈의 화신>에서는 역시나 한번 틀어준다. 그들의 어린 시절은 어느 드라마처럼 뽀얗게 등장하지만, 그 끝은, 이강석의 돼지 공주란 퉁명스런 반응과, 지금처럼 팔딱팔딱 뛰며 분노하는 복재인으로 현실감있게 마무리된다. 마치 언제나 '첫사랑은 아름다워'라는 정의를 비웃기라도 하듯. 하지만 그렇다고, 또 첫사랑의 추억이 윤색되지는 않는다. 그때도 지금도 분노를 해도, 여전히 외톨이인 재인의 곁에는 이강석이, 이차돈이 있으니까. 그러기에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재인의 설레발 끝에 드러나는 설레임이 시청자조차 미소짓게 만드는 것이 <돈의 화신> 식의 사랑 방식이다.

 

(사진은 돈의 화신 갤러리 에서)

 

물론 이런 첫사랑만 있는 것도 아니다. 지세광과 은비령(오윤아 분)의 다시 만난 사랑은 또 다른 사랑의 빛깔이다. 이중만의 죽음의 공모자였던 두 사람이 지세광의 말대로 공모를 한 순간 사랑은 물 건너 가고 '이용' 만이 남게 되었지만, 정해룡의 제거를 위해서, 그의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서, 두 사람은 다시 기꺼이 손을 잡는다. 지세광을 없애기 위해 칼을 갈았던 은비령은 그게 언제였냐는 듯 지세광에게 돌아가고, 다시는 안볼 것 같던 지세광도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다시 그녀를 찾는 식이다.

 

과연 돈 앞에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고, 역으로 돈 앞에선 그 누구와도 손을 잡을 수 있는 <돈의 화신> 식의 인간 관계 속에서 과연 이 드라마가 궁극적으로 그려내고자 하는 주제가 무엇일지 궁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일지? 돈 놓고 돈 먹기가 다인 더러운 세상일지?

by meditator 2013. 2. 25. 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