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릴 스트립, 제임스 코든, 니콜 키드먼, 출연 배우들의 면면으로만 봐도 흥미로운 뮤지컬 영화 한 편이 상영관과 넷플릭스를 통해 개봉했다. <더 프롬(The Prom)>이다 .

우리에게는 낯선 프롬(prom)은 미국 청춘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졸업 파티이다. 졸업 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소녀, 아니 그 소녀로 인해 졸업 파티 자체가 무산되어버린 사건을 다룬 <더 프롬>은 이미 2018년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된 동명의 뮤지컬 넘버이다. 흥행은 미진했지만 토니상 7개 부문 후보에 오를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던 작품이다. 이 작품을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감독이자 뮤지컬 영화 <글리>의 제작자인 라이언 머피가 넷플릭스와 손잡고 선보인다. 

학부모위원회가 졸업 파티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오프닝, 그런데 이야기는 졸업 파티가 열리기도 했던 인디애나의 한 고등학교에서 브로드웨이 뮤지컬 공연장으로 옮겨진다. 

무대에 올려진 뮤지컬이 끝나고 주연을 맡은 디디 앨런(메릴 스트립 분)과 배리 글릭먼(제임스 코든 분)은 공연에 대한 흥분을 가라앉히지 않은 채 사람들과 어울려 여흥을 즐긴다. 하지만 그도 잠시 신문에 올려진 디디와 배리가 맡았던 앨리노어 루스벨트와 루스벨트에 대한 혹평은 그들은 차가운 현실로 던진다. 노익장을 과시했지만 이제 더 이상 '셀럽'이 아닌 디디와 루스벨트를 연기했지만 그 진지함이 웃음거리가 되어버린 배리, 그리고 그들만큼이나 저마다의 '딜레마'를 안고 있는 앤지(니콜 키드만 분)와 트렌트(앤드류 라넬스 분)는 자신들이 처한 '명망성'의 위기를 '사회적 이슈'를 통해 돌파하고자 한다. 바로 그때 그들의 눈에 띈 사건, 인디애나 고등학교의 프롬 좌초 사건이다. 

 

 

한 소녀의 커밍 아웃으로 무산된 프롬 
트럼프 대통령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대선의 여진이 쉽게 진화되지 않는 미국의 사태는 우리나라의 정서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을 듯하다. 그렇게 이미 결과가 뻔한 상황에서도 여전히 상식적 시선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미국이라는 다양한 사회문화적 상황이 <더 프롬>의 배경이 된다. 즉 동성애가 자유로운 나라라는 미국에 대한 선입관과 달리 보수적인 문화가 지배적인 미국 남부 인디애나주의 고등학교에서는 졸업 파티에 동성의 연인을 데려가겠다는 한 소녀의 선언이 졸업 파티 자체를 무산시키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리고 자유로운 브로드웨이의 아티스트들은 바로 그런 비상식적인 인디애나 주 고등학교의 '사건'을 자신들의 명망성을 활용해 이슈화시켜 돌파하고자 한다. 

영화는 그렇게 두 가지의 갈래를 가지고 진행된다. 고등학생 에마(조 엘런 펠먼 분)의 커밍아웃 선언으로 인한 졸업 파티 무산 사건을 한 축으로 하면서, 거기에 개입한 브로드웨이 스타들의 해프닝을 얹는다.

애마의 졸업 파티 사건을 계기로 만나게 된 브로드웨이 스타들, 그들은 자신들이 인디애나 고등학교에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명망성으로 인해 어려운 문제가 쉽게 풀릴 것이라 기대한다. 그리고 그 사건을 이슈화시켜 자신들의 위기도 해결될 것이라 믿는다. 그런 기대로 화려한 퍼포먼스로 인디애나에 등장한 '뮤지컬 스타'들 무산될 뻔한 졸업 파티가 다시 '승인'되며 서광이 비치는 듯하다. 

하지만 그건 또 다른 '함정'일 뿐이었다. 여전히 애마는 학부모와 친구들에게 외면당하고, 브로드웨이 스타들의 명망성은 그들의 공연 무대가 몬스터 트럭 대회 막간 공연에서 보여지듯이 그들의 기대와 다르다. 

여전히 당대 최고의 여배우인 메릴 스트립이 연기하는 디디가 호텔 프런트에 자신의 토니상 트로피를 올려 놓으며 자신을 과시하는 장면 등에서 보여지듯 <더 프롬> 곳곳에서 보여지는 '셀프 디스'의 여유가 양념처럼 등장한다. 하지만 그런 디스가 무색하게 노익장의 메릴 스트립은 그녀가 등장했던 또 다른 뮤지컬 영화 <맘마미아> 보다 훨씬 역동적인 뮤지컬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로맨스도 빼놓지 않고. 
외려 기대에 비해 아쉬웠던 건 <시카고>의 니콜 키드만을 기대했던 모습을 애마와의 단 한 씬으로 만족해야 했다는 점이다. 아쉬움을 차치하고 보면 <더 프롬>은 대번에 귀를 사로잡는 뮤지컬 넘버는 아쉽지만 대체적으로 흥겨운 뮤지컬 영화의 흐름을 놓치지 않는다. 

 

 

흥겨운 뮤지컬 영화에 얹힌 LGBQ 교과서 
영화는 전형적인 헐리웃 영화의 궤도를 따라간다. 명망성에 기대어 인디애나 고등학교로 납신 브로드웨이 스타들은 애마를 돕겠다는 허울좋은 해프닝을 통해 외려 각자가 가졌던 '문제'를 발견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좋은 어른으로 애마의 '동지'가 되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애마는 어설픈 브로드웨이 스타들의 등장으로 고무되기도 하지만 결국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모색하여 해결한다. 영화 내내 고뇌하는 애마의 주옥같은 테마는 결국 여전히 성적으로 자유로운 나라라는 미국이라는 사회에서도 '성적인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인가를 드러낸다. 그럼에도 애마는 '나답게'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기 않겠다고 용기를 낸다. 그리고 이전 헐리웃 성장 영화에서 '성장의 모티브'가 <더 프롬>에서는 '성적 정체성'으로 변주되어 한 소녀의 내적, 외적 갈등으로 등장한다. 

전형적인 헐리웃 뮤지컬 영화의 궤도를 따르지만 그 과정에서 <더 프롬>이 일관되게 지향하고 있는 건 바로 '성적 다양성'에 대한 '계몽'이다. 줄리어드를 나왔다는 사실만 입에 달고 살던 트렌트(앤드류 라넬스 분)가 애마의 친구들을 상대로 보수적인 남부 사람들이 신앙처럼 믿고 있는 성경의 문구들이 얼마나 자의적인가, 결국 당신들이 신봉하는 성격이 말하고자 하는 단 한 가지는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내용의 뮤지컬 넘버는 그런 계몽주의적 <더 프롬>의 성격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어 보여준다. 

왁자지껄했던 프롬의 소동은 결국 등장인물 각자가 가졌던 문제들을 직시하고 그것들을 과감히 받아들이는 것으로 해결된다. 여전히 '셀럽'이라는 미련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디디 앨런은 그 '셀럽'의 허울좋은 명예와 재력을 내던지고 '사랑'을 얻는다. 16살 졸업파티에서 자신의 성적 정체성으로 인해 부모도, 고향도 버려야 했던 베리는 뒤늦은 '화해'를 한다. 그렇게 애마를 빌어 자신들의 명성을 되찾으려던 한물 간 셀럽들은 애마를 통해 저마다의 고민을 풀어낸다. 애마 역시 자신처럼 용기를 내지 않는 연인의 소극적인 태도에 실망하지는 거기에 주저안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는 결단을 통해 사랑도 얻고 자신감도 회복한다. 모두가 한데 어울려 춤추고 노래하는 집단 군무의 휘날레를 통해 화해하고 행복해진다. 

 

 

네임드한 배우들의 다수 출연만큼 가지가 많았던 <더 프롬>, 여전히 편견과 차별의 횡행하는 미국 사회에 대해 메릴 스트립 등의 배우가 기꺼이 출연하여 소리 높여 '성적인 자유'를 주창하는 작품이 만들어 진다는 사실이 바로 이 작품의 의의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전세계적인 콘텐츠 플랫폼 넷플릭스를 통해 퍼져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 어수선한 스토리 라인에도 불구하고 수려한 뮤지컬 넘버들은 여전히 보는 이의 흥을 돋는다. 학교 현장에서 이 <더 프롬>을 틀어준다면 어떨까? 구구절절 설득보다 자기 자신은 물론, 세상에 용기를 낸 소녀 애마를 통해 LGBQ에 대한 인식의 담을 허무는데 조금 더 도움이 될 듯하다. 

by meditator 2020. 12. 12. 1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