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5세는 영국인들이 사랑하는 왕이다. 마치 우리가 세종대왕이나 정조 대왕을 현명한 왕의 대명사로 여기는 것처럼. 

'우리는 전우다. 나와 함께 피흘리는 자는 나의 형제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헨리 5세


 

 
국왕이 솔선수범 전장에 나서 함께 피흘리며 뛰면서 우리는 전우고, 형제라는데 이보다 더한 '독려'가 있을까. 물론 그 '독려'는 무수한 국민들의 피와 땀의 헌신을 요구하지만, 어쨌든 비겁하지 않은 이 왕의 행보는 그래서 윌림엄 셰익스피어 이래, 로렌스 올리비에, 케네스 브래너 등 많은 창작자들에게 영국을 대표하는 왕으로서 '헨리 5세'를 그리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일찌기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가족 사이에 던져진 소년의 이야기 <동물의 왕국>을 통해 2010 선댄스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바 있는 데이비드 미쇼 감독이 역시나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신하들 사이에 던져진 역대 가장 '젊은' 헨리 5세를 들고 출정했다. 

영화  <더 킹; 헨리 5세>는 아직 왕이 되기 이전 헨리 4세 치하에서 어떻게든 왕자의 자리를 벗어나 기사 존 폴스타프를 벗삼아 자유분방하게 살아가는 왕자 할(티모시 샬라메 분)로부터 시작된다. 그 자신이 랭카스터 공작의 아들로 귀족들을 이끌고 잉글랜드를 침공 '헨리 3세'의 후손인 점에 내세워 '왕좌'를 차지했던 아버지 헨리 4세, 덕분에 그는 재위 기간 내내 귀족들의 위협에 직면해야 했다. 영화는 바로 이러한 헨리 4세의 위기를 끊임없이 '내우외환'을 불러일으키는 '전쟁광'과도 같은 권력으로 묘사한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에 할은 반기를 든채 할은 저잣거리에 침잠한다. 

하지만 첫 번 째 왕자인 그를 '권력'은 그냥 놔두지 않았다. 아버지는 공공연하게 그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않을 거라 공언하지만, 그를 대신해 핫스퍼의 반란을 진압하러 나간 동생은 그가 나서서 아버지의 부질없는 '정쟁'에 제물이 되지 말라며 핫스퍼를 제거해 줬음에도 불구하고 진격을 거듭하다 죽음에 이르고 만다. 그를 찾아온 대법관 윌리엄이 아버지가 싫다는 이유만으로 나라를 혼란에 빠뜨릴 수 없다며 간곡하지만, 젊은 청년의 영웅심과 의협심, 그리고 책임감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설득을 하자 왕궁을 찾는다. 

그리고 왕이 된 청년, 그는 아버지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정치적 사안에 보다 신중하려 하지만 아직 어린 왕을 둘러싼 정국은 그로 하여금 애초에 아버지와 다른 왕이 되고자 했던,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진 백성을 다시 전쟁터로 내몰지 않고자 했던 그의 신념을 자꾸만 시험에 들게 한다.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었던, 그래서 그가 죽였던 핫스퍼가 반란을 일으켰던 원인이 된 그의 사촌이 풀려날 수 있도록 지불도 하는 등 가급적 국민적 부담을 덜려하지만 정작 복병은 오랫동안 '해원'의 관계였던 프랑스로부터 시작된다. 왕의 즉위식에서 부터 그에 대한 조롱을 일삼던 프랑스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그의 '암살'을 시도하는 등 끊임없이 그의 존재를 위협한다. 아니 시작은 프랑스지만 왕자 시절 방탕하다 하여 귀족들에게 일찌감치 눈 밖에 나버렸던 그의 행보, 즉 신하들의 지지와 지원을 얻지 못한 그의 불안한 '존재론적 정당성'이 그로 하여금 믿을 수 없는 프랑스로부터의 위협에 대한 '선전 포고'를 하기에 이르른다. 

 

 

권력은 죽음을 먹고 자란다
전쟁에 나서기 전 그는 두 가지 일을 한다. 굳이 멀리 덴마크로 시집을 간 동생의 충고가 아니더라도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주변에, 그가 왕자 시절 그의 토한 오물까지 거둬준 오랜 벗 존을 불러들인다. 그리고, 즉위식에서 어린 시절부터 친하다며 자신에게 온 선물까지 나눠줬던, 하지만 그가 자리를 비울 시 왕권에 위협이 되는 사촌 등을 '암살' 사건을 빌미로 처형한다. 측근과 숙청, 그렇게 젊은 왕은 조금씩 권력을 다져나간다. 

프랑스와의 전장에서도 시험을 계속된다. 전쟁이라는 공간에서 군사들이, 그리고 전쟁 비용을 낸 성직자와 귀족들이 바라는 전쟁, 그리고 항복은 커녕 나타나 조롱을 일삼는 적국의 왕자, 그런 유혹 가운데에서 어떻게든 군사적 피해를 줄이려 헨리 5세는 고뇌한다. 

비록 큰 싸움없이 첫 번째 격전지가 될 곳의 성문을 열었지만 그 이후의 원정은 길고 지리했으며 이렇다할 싸움 한번 없이 계속된 행군은 영국군을 지치게 만든다. 그리고 드디어 마주친 프랑스군, 긴 원정 끝에 수가 줄어든 영국군은 상대로 되지 않을 만큼 장비를 갖춘 대군이다. 당연히 장군들은 '항복'을 권하고, 하지만 여기서 항복은 그저 한번의  싸움을 지는 것이 아니라 헨리 5세라는 젊은 왕의 존재 자체를 흔들 위기다. 

결국 그 유명한 영국군을 승리로 이끈 '아쟁쿠르' 전투는 영화 속에서 할이던 시절의, 그리고 왕이 된 지금도 그의 유일한 벗 존의 기지로 진흙밭같은 전장에서 갑옷을 벗어던진 채 무거운 갑옷을 입고 말을 탄 프랑스 병사를 상대로 백병전을 벌여 승리를 쟁취한다. 

너희 한 명, 한 명이 잉글랜드고, 이 곳이 잉글랜드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잉글랜드를 위해서 싸워라.  너희의 것으로 만들어라. 잉글랜드로 만들어라. 


우리는 모두 전우다, 형제다 라는 셰익스피어의 명대사는 어쩌면 그 자신조차도 믿지 못하는 거짓일 지도 모를 '독려사'로 영국군 앞에서 포효한다. 그리고 그 왕의 말이 끝나자 군인들은 전장으로 쏟아져 들어가고 승리를 얻는다. 왕의 벗 존을 비롯한 많은 군사들의 희생을 안고. 

자신의 왕좌를 위협할 지도 모를 사촌 등을 죽이고 길을 떠난 왕은 이제 자신들의 군대보다도 훨씬 더 많은 프랑스군 포로들을 눈 하나 깜빡하지도 않고 죽인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죽은 자들의 무기를 들고 언제든 다시 영국군의 위협이 될 수도 있다란 명목으로.  그리고 그렇게 가장 아끼던 벗마저 잃은 전쟁터에서 돌아온 왕은 이제야 비로소 신료들을 비롯한 국민적 환호성을 받는다. 하지만 뒤늦게서야 안다. 그가 벌였던 저 환호성을 얻고자 벌인 전쟁이, 수많은 희생이, 애초에 '조작된 위기'에서 비롯되었음을. 

 

 

젊은 왕 헨리 5세의 고뇌 
영화 <더 킹; 헨리 5세> 속 왕이 된 소년은 흡사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라며 고뇌하던 청년 <햄릿>과도 같다. 자신의 아비를 죽이고 권력을 찬탈했을 지도 모를 부정한 권력 숙부 앞에서 한없이 나약한 자신의 영혼에 고뇌했던 청년은 이제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왕궁에서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신념을 관철시키려, 그리고 자신의 왕좌를 지키기 위해 고뇌한다. 

하지만 햄릿이 자신을 던져 '복수'와 '부정한 권력'을 징벌하려 했듯이, 헨리 5세의 왕좌는 '피'를 통해 권위를 얻는다. 영화 속에서는 아쟁쿠르 전투의 엄청난 프랑스인 포로를 다 죽인 걸로 나오지만, 영국인들이 사랑하는 헨리 5세는 프랑스 원정 시 가는 곳곳마다 마을을 불태우고 그곳 사람들을 '학살'한 무자비한 왕이었다. 그리고 백년전쟁의 서막이었던 아쟁쿠르의 영광은 그런 헨리 5세의 잔혹한 정벌은 프랑스인들로 하여금 영국에 대한 복수심을 불러일으켜 이후 '잔댜르크'의 등장을 낳는다. 

영화에서 헨리 5세는 가장 친한 벗 존을 프랑스 원정을 통해 잃는다. 이 '존'은 셰익스피어 원작의 <헨리 5세>에서는 피스톨이란 사내로 그려진다. 왕과 함께 방탕한 시절을 보내던 피스톨은 결혼한 아내를 두고 왕의 전장에 나선다. 전쟁은 승리를 얻었지만 남편이 전쟁에 나간 동안 그만 아내는 병을 얻어 죽고 만다. 승리한 전쟁, 그러나 정작 그 전쟁에 참여한 병사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라고 피스톨을 통해 셰익스피어는 묻는 듯하다. 

<더 킹; 헨리 5세>를 통해 미소년 젊은 왕을 통해 '권력'의 쟁취가 의미하는가가 무엇인가를 묻는다. 이상을 가졌지만 그의 이상은 권력의 놀음 앞에 순진했고, 그가 원하지 않았던 백성들의 피가 강을 이루고서야 신하와 백성들의 신뢰를 얻어야 하는 '권력' 말이다. 그렇게 소년은 아버지같은 벗을 잃고, 그리고 아버지같은 후견인이던 윌리엄을 그 스스로 죽이고, 기꺼이 손에 피를 묻히고서야 왕으로의 인정을 얻는다. 

by meditator 2019. 11. 17. 18: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