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이 단어의 뜻을 아시는가? 그렇다면 '양성', 이나 '음성'은? 
누굴 놀리냐고 기분이 나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코로나 19의 상황 포탈 사이트에 많은 사람들이 '양성'과 '음성'의 뜻을 물었다고 한다. 심지어 '사흘'은 2020년 광복절 연휴 이후 사흘간 연휴라는 정부 발표 이후 실검에 오르고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고 한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이 제일 먼저 배우는 '하루, 이틀, 사흘'의 그 사흘인데 많은 사람들이 4일이라고 알았던 것이다. 심지어 기자들 조차 '4흘'이라고 표기하기도 했단다.  

그 정도야 한다면 이건 어떨까? 
 

 
ktx 홈페이지에 있는 열차표 금액 계산 실례이다. 성인 남녀 880명을 대상으로 '복약 지도서, 주택 임대차 계약서, 직장 휴가일 수 계산' 등과 같은 일상 생활에성 자주 쓰는 문장으로 시험을 봤다. 결과는 평균 54점이 나왔다. 

oecd국가 중 우리나라는 문맹률이 낮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위의 시험 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글을 읽어도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는, 그리고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글을 이용해 생활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문해력'에 있어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이에 ebs는 지난 1년간의 준비를 거쳐 6부작 문해력 프로젝트 <당신의 문해력>을 3월 8일 부터 방영 중이다. 

 

 

문해가 안되서 공부를 포기하는 현실 
딱딱한 다큐만을 보여주는 형식에서 탈피하여 김구라, 이현이, 알베르토 몬디 등과 한양대 조볌영 교수, 한겨레 김진철 기자 등이 패널로 참가하여 문해력의 문제를 집중 파고든다. 

'사흘' 정도는 비웃었지만 막상 열차표 계산으로 가면 막막해질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렇듯 '문해력'은 우리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특히 학교 현장에서는 심각하다. 

영어를 가르치는 고등학교 교실, 그런데 막상 수업을 들여다 보면 학생들이 선생님이 해석해 주는 '한글 단어'를 몰라서 수업이 진행이 안된다. 모르는 뜻에 손을 들고 '몰라요'라고 하라는 선생님의 요구에 아이들은 한 페이지 당  무려 14번 손을 들었다.

'보모', '변호', '피의자', '출납원', '상업 광고', 등


아이들이 모른다고 했던 한국말이다. 아이들은 캐셔는 알아도 캐셔의 뜻인 출납원은 모른다. 사회 수업은 한 술 더 뜬다. 기생충 영화를 통해 우리 사회의 차별 문제를 설명하고자 하는 선생님, 봉준호 감독이 애초에 기생충이라는 제목 대신 가제로 '데칼코마니'라고 했던 설명에서 부터 얹힌다. '가제'가 무엇이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랍스터'라는 답이 나왔기 때문이다. 당연히 다른 동물체의 양분을 빨아먹는다는 '양분'이나, 지배 집단과 피지배 집단 간의 '위화감'을 알 리가 없다. 선생님은 단어를 설명하느라 진도를 나갈 수 없다. 그런데 이 진도를 나갈 수 없는 '반'이 제법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라는 것이다. 

 

 

중학생 2400 명을 대상으로 문해력 테스트를 했다. 27%가 또래의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초등 수준 정도에 머무르는 학생들도  11%나 됐다. 초등 수준의 학생들에게 중학교 교과서는 당연히 '무리', 그러니 공부를 포기하게 된다. 

공부의 문제에서 그치지 않는다. 코로나로 인해 늘어난 비대면 수업, '연말 특별 강화 대책'처럼 글로 전달하는 내용이 많아졌다. 하지만 아이들은 읽었다고 하는데 등교하는 날조차 '인지'하지 못해 일일이 전화해야 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고 한다. 

글을 이해하는 능력도 떨어지지만 이른바 '스압주의'라는 유행어처럼 줄글,  검은 글씨, 긴글 자체를 읽지 않으려는 경향도 '문해력'에 있어 지대한 저해 요소로 작용한다고 한다. 2000년 5.7%에서 2018년 15.1%로 지난 10년 사이 읽기 능력 부진한 학생들의 비율이 3배나 증가했다. 

 

 

영상시대 문해력은 필요할까? 
물론 문해력에 대한 우려에 대응하여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영상의 시대 과연 굳이 글을 읽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카드 뉴스'나 '포스터', 나아가 '영상'처럼 보다 쉬운 방식을 통해 전달하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런 최근의 경향성에 대해 프로그램은 공기업에 근무하는 염기철 씨의 사례를 예로 든다.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신의 직장에 입사한 기철 씨, 직장 내 진급 등을 위해 정보 관련 자격증 준비를 하는데 쉽지 않다. 같은 페이지를 몇 번이나 읽는데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그간 도전했지만 번번히 고배를 마신 상황이다. 제작진이 준비한 문해력 테스트, 11문제 중 겨우 5문제를 맞혔다. 그래서일까 직장에서 기철 씨가 작성한 문서가 자주 반려된다고 한다. 32살, 남들이 보기엔 좋은 대학 나오고, 좋은 직장 들어갔으니 다 끝이라고 하겠지만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많은 기철 씨에게 '문해력'은 인생의  걸림돌이 된다. 

실제 기업 10곳 중 6곳에서 젊은 세대의 국어 능력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보고서나 기획안 등 문서 작성 능력이 부족하고, 구두 보고나 이해 능력이 떨어진다는 평가이다. 가장 간단하게 '수신, 발신, 참조'라는 단어도 모르는 젊은 세대,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신입사원을 뽑아놓고 다시 대학 국어학과 교수를 초빙하여 공부를 시키는 기업도 등장한다.

oecd조사에 따르면 언어 4.5등급과 1등급 사이에 연봉 2.7배, 취업률 2.2배, 그리고 건강 마저도 2배의 차이가 난다고 한다.  왜 그럴까? 뇌의 상태를 조사해보았다. 평균 1년에 20권 정도를 읽는 사람들과 한 권이나 읽을까 하는 사람들과 전전두엽 활성화 정도를 검사한 결과 활성화 기능에 있어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똑같은 책을 읽어도 글의미를 파악하는 인지적 능력에 있어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활성화가 떨어지는 사람들이 '글'만 읽고 있을 때, 인지적 능력이 높은 사람은 뇌를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의미를 파악하는데까지 이른다는 것이다. 

물론 읽기 능력은 후천적인 것이다. 하지만 이탈리아 등이 문해력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문해력 시험을 보는 등 국가적 대응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문해력 격차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쳐왔던 기자는 <당신의 문해력>이 제기한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매우 공감한다. 프로그램은 그저 '단어' 파악을 못한다고 했지만,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서 '입말' 중심의 초등 교육 과정에서 '문어체'가 교과서의 주를 이루는 중등 교육 과정으로 넘어가면서 다수의 학생들이 '문해력'에 있어서 '장애'를 느낀다.

특히 우리나라는 '한글' 체계라고는 하지만 '한자 문화권'에 포함되어 있기에 '한글'만으로 뜻을 해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지금의 한글 교육은 이런 문제점을 그저 '사교육'에 맡긴 채 방기한다. 거기에 신세대를 중심으로 한 인터넷 언어 문화는 또 하나의 '언어' 체계의 등장처럼 우리 사회 언어 체계에 혼란을 가져온다. 

결국 교육 과정 근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지점이다. 하지만 다큐는 4부 <내 아이를 바꾸는 소리의 비밀>처럼 문제 해결을 다시 '가정', '사교육'으로 환원하는 듯한 해결책을 모색한다. 회사에서 돌아온 엄마가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아이와 책을 읽고 말놀이를 하는게 '해결책'이어서는 우리 사회 '문해력' 문제 해결은 요원하다. 공교육이 해야 할 과제를 개인이 떠안아서는 문해력의 격차는 나날이 심해져만 갈 것이다. 저런 식의 해법이라면 조만간 '문해력' 학원이 등장할 것이다. 현재 심각한 '문해력'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당신의 문해력>은 유의미했지만 해결책 모색 과정에 있어서는 여전히 아쉬운 점을 남긴다. 



by meditator 2021. 3. 17. 1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