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브라질 헤시피에 위치한 아레나 페르남부쿠에서 열린 2014브라질 월드컵 c조 조별 예선 1차전에서 코트디브아르가 일본에 2;1로 역전승을 했다. 이날 경기를 중계했던 mbc는 경기가 끝난 후, 축구는 [        ]이다 라며 관행적으로 내보내던 자막의 [  ]안에 '그분의  뜻'이라는 단어를 넣고, 코트디브아르의 선수 드록바를 보여주었다. 이른바, 이 경기가  '드록신'이라 불리우는 선수, 드록바의 공이라는 의미였다. 그렇게 오글거리는 자막이 무리도 아닌게, 분명 일방적으로 일본에 선취점을 내주고 끌려가던 코트디브아르 선수들은, 드록바가 들어오자, 귀신이라도 씌인 듯, 대번에 골을 넣었다. 드록바가 넣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 그 골은 그라운드의 감독이라 칭해지는 드록바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라는데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대단한 선수 드록바를 드록신이라 높여 부르는데는, 비단 그의 경기 능력만이 이유가 아니다. 아프리카 서부 내륙의 가난한 나라 코트디브아르의 축구 영웅 드록바가 가지는 위대함이, 그가 신이라 불리우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드록바가 귀국을 하는 날이면, 코트디브아르 국민들은 마치 아이돌을 기다리는 소녀들처럼 공항으로 몰려간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유럽 구단에서 받은 천문학적인 연봉을 자기 나라를 위해 아낌없이 쏟아붓고 있기 때문이다. 드록바는 3천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무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을 55억을 들여 수도 아비잔에 짓고 있는 중이며, 매달 15만 유로를 자국 어린이들의 예방 접종을 위해 쓰고 있다. 우리가 광고를 통해 월드컵 기간 동안 내전을 멈추게 해달라고 하자, 정부군과 반군이 진짜 내전을 멈추었다는 그 기적을 만든 선수가 바로 드록바인 것이다. 우리 역시 드록바가 아니라면, 코트디브아르 라는 나라를 알지 못할 것이다. 

(사진; 코리아 데일리)

이렇게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의 축구 선수가 가진 의미는 남다르다. 러시아의 소수 민족으로 살아가는 고려인도 마찬가지다. <다큐 공감>은 월드컵 특집으로, 고려인의 축구 영웅 미하일 이바노비치 안을 조명했다. 우리나라의 월드컵 진출, 혹은 월드컵 스타에 집중하는 그 어떤 월드컵 특집보다, 가장 세계인들의 화합의 축제, 월드컵의 본연의 정신을 살린 기획이다.

우리는 그 이름도 생소한 미하일 이바노비치 안은, 1979년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를 떠나 벨라루스로 향하던 중 다른 비행기와 충돌해 승객 178명이 죽은 사고로 사망했다. 하지만 그가 죽은 후 35년이 지났지만, 그의 전기가 씌여지고, 그의 인생이 담긴 다큐멘터리 영화가 제작되는가 하면, 그의 이름을 딴 '미하일 안' 거리가 만들어 지는 등 여전히 사람들은 그를 축구 영웅으로 기억해 내고 있다. 

미하일 안은 고려인 3세이다. 러시아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연해주에서, 우즈베키스탄으로의 긴 여정을 견뎌내고, 척박한 우즈베키스탄에 자리잡은 고려인의 후손이다. 1952년에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축구에 대한 재능이 뛰어나, 1968년 축구 유망주들이 가는 디토프 스포츠 전문학교에 들어갔고, 17세에 소련 청소년 대표팀 선수로 뽑혔다. 재일 교포 3세 정대세 선수가  재일 교포임에도 북한 국적을 갇는 등, 어려움을 겪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러시아 사회에서, 우즈베키스탄 출신이, 그것도 소수 민족 고려인 출신의 어린 소년이 국가 대표가 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성취이다. 심지어 76년에는 U-23 소련 청소년 대표팀의 주장으로 발탁되었다. 하지만 미하일 안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이후 미하일 안은 소련의 명문 팀 우즈벡 FC 파흐타코르에 입단했고, 1974년과, 78년에 소련 연방 축구 영웅 33인에 선정되었다. 

키가 작고 왜소해 축구 학교에 들어갈 때만 해도 체력적으로 뒤처지던 소년은 타고난 재능과 노력으로, 신체적 열세를 극복하고 발군의 선수가 되었다. 그가 어린 시절 살았던 집의 주인은 그가 좋아하던 나무를 베지 않고 놔두고, 그의 이름을 딴 거리에서, 그를 즐겨 추억할 만큼, 그가 죽은 지 35년이 지난 이후에도 사람들은 고려인의 축구 영웅 미하일 안을 잊지 않으며, 그를 기억에서 불러낸다. 그리고 그것은, 러시아( 구 소련), 그리고 이제는 우즈베키스탄 사회에서 인정받기 힘든 소수 민족 고려인의 삶을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쩌면 계속 그가 살아있었다면, 우즈베키스탄 고려인의 드록바가 되었을 지도 모를, 축구 영웅 미하일 안, 우르베키스탄의 고려인들은, 불운의 축구 영웅을 추억하며, 고려인으로써의 자존감을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by meditator 2014. 6. 18. 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