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격리'가 권장되는 시대, 그래서 외려 답답한 사람들이 너도 나도 마스크를 끼고 '북한산'을 찾아 바람을 쐰다지만, '방콕'할 시간이 늘어나는 건 어쩔 수 없다. 물건이야 홈쇼핑으로 시킨다 하지만 남아도는 시간은 어쩔까, 그럴 때 가장 위안이 되는 건 올드 미디어니 뭐니 해도  'tv'다.

게다가 각 가정에 연결된 '스마트'한 기능을 가진 tv 덕분에 tv로도 다양한 컨텐츠를 즐길 수 있는 시대, 젊은이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넷플릭스' 등을 tv로 즐긴다. '왓챠'나, '웨이브' 등이 고군분투하지만, 아직은 국내 드라마를 비롯 해외 드라마, 영화까지 다양한 작품을 구비한 넷플릭스의 물량 공세를 넘보기는 힘든 상황이다.

일찌기 <프리즌 브레이크>를 시작으로 <블랙 미러>, <기묘한 이야기> <위쳐> 등 다양한 장르와 서사의 작품들이 넷플릭스 유저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꼭 입소문난 작품들만이 재미있을까? 알고보면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작품들이 꽤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시즌2까지 이어진 <블레츨리 써클>이다. 

 

 

1950년대에 여성들은 
<블레츨리 써클>의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이 당시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듯하다. 여성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의견을 당당하게 인정받은 '참정권'을 획득한 건 20세기 초의 일이다. 19세기부터 '한 표'를 통해 정치적 참여를 실현하고자 하는  여성 참정권 운동은 활발했지만 그 실효를 거둔 건 1차 세계 대전 이후부터였다. 하지만 2차 대전이 끝나고서야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한 표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되었고, 1952년에서야 국제 연합(UN) 총회는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조건으로 아무 차별없이 모든 선거에서 선거권을 갖는다'라고 의결했다.

'법'은 여성들의 정치적 권리를 인정했지만, 정작 현실은 '법'을 쉬이 따라가지 못했다. 여성들은 여전히 '남성 중심 사회'에서 누군가의 아내 정도의 역할로 규정되었으며, 사회적 진출에 있어서도 '비서'등 보조적 역할을 뛰어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바로 그런 사회적 분위기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드'가 블레츨리 써클이다. 


2015년작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은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하기 위한 해독기를 발명한 앨런 튜링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블레츨리 써클>은  바로 이 앨런 튜링이 만든 암호 해독기로 '블레츨리 파크'에서 비밀리에 암호를 해독했던 비밀 조직에 속했던 여성 4명, 수잔(안나 맬스웰 마틴 분), 밀리(레이첼 스털링 분), 진(줄리 그레이엄 분), 루시(소피 런들 분)의 활동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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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 해독 전문가 여성들 범죄를 해결하다 
2차 대전 당시 암호 해독 비밀 조직에서 일했던 '엘리트' 여성들이었지만, 그 조직이 '비밀 조직'이었고, 더구나 '여성'들이었기에 종전 후 그들은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로 부터 10년 후, 두 아이의 아내가 된 수잔은 런던 지역에서 발생한 여성 강간 사건이 그냥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자신이 블레츨리 써클에서 일했던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패턴'을 그리며 발생하는 연쇄 살인 사건임을 깨닫고 주변에 도움을 요청한다. 남편의 지인인 경찰청장을 만나는 등 애를 쓰지만 그녀를 누군가의 아내 이상으로 여기지 않는 사회적 시선의 한계는 그녀가 발견한 범인의 정보를 하찮게 무시해 버린다. 

결국 수잔은 과거 자신의 동료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가장 가까웠던, 전쟁 후 홀로 외국 여행을 다닐 정도로 모험심과 독립심이 강했던 밀리, 블레츨리에서 일하던 여성들을 통솔했던 책임자였기에 두루 발이 넓은 진, 그리고 눈으로 본 모든 것을 기억하는 루시가 그들이다. 저마다의 뛰어난 능력으로 독일군 암호 해독에 있어 혁혁한 전과를 세우던 그들이지만 이제는 가정주부, 비정규직 판매원, 도서관 사서에 매맞는 아내로 사는 처지가 된 그들은 수잔의 요청으로 밀리의 집과 진의 도서관을 아지트로 하여 수잔의 패턴 이론을 근거로 하여 사건을 추적해 나간다. 

이렇게 <블레츨리 써클>은 한때는 암호 해독이라는 군사 분야에서 전문적인 역량을 발휘했던 여성들이 '여성'이라는 사회적 차별의 조건을 뚫고 범죄 수사를 해나가는 시리즈이다. 정부 모처에 일하는 '지인'들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구해다 주는 진, 그게 아니라면 첩보원을 불사할 모험에서 거침없는 밀리, 그렇게 구해진 정보를 통째로 암기해 전해주는 루시, 그리고 취합된 정보를 통해 범죄의 패턴을 읽어내는 수잔은 따로 또 같이 '원팀'으로 끈끈한 동지애를 바탕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2012년에 방영된  시즌 1 3회, 2014년에 방영된  시즌 2 4회로 이루어진 <블레츨리 써클>에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바로 이들 주인공 4명이 힘을 합쳐 해결해 나가는 사건의 성격이다. 시즌 1에서 여성들을 유인하여 살해하는 연쇄 살인 사건, 그것을 추적해 들어가보니 거기엔 전쟁이 만들어 놓은 괴물이 있었다. 필요에 의해 전쟁 중에 상대방 군인들을 대상으로 한 성적인 선전전의 종사자는 전쟁의 참화 속에서 자신의 성적 욕망을 살인을 통해 해결하는 연쇄 살인마가 되어 버린다. 

또한 시즌 2에서 살인의 누명을 쓰고 등장한 또 한 명의 블레츨리 써클의 동료 앨리스, 그녀를 살인죄로 몰아간 범죄 역시 결국은 '전쟁'이 싹틔운 인간을 대상으로 한 '화학전'의 잔재이다. 이들 범죄의 공통 요소는 '전쟁', 그리고 '전쟁' 중에 필요악으로 배태된 범죄, 그리고 전쟁이 끝났음에도 여전히 거기에 집착하다 못해 범죄자가 되어버린 남자 범인이다. 하지만 이런 전쟁이 낳은 괴물에 대해 감히 고려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하는 기존의 경찰 조직은 사건의 그림자조차 밟지 못한다. 그럴 때 과감하게 사건의 진실을 찾아 네 명의 여성이 뛰어든다. 희생자가 된 여성을 위해, 한때 동료였던 여성을 위해. 여성이란 '연대성'의 공감 위에 그녀들의 활동이 펼쳐진다. 

하지만 전쟁 후 10년 다시 자신들의 전문적 영역을 되살려낸 그녀들의 활동은 당시 여성들의 위치만큼 어려움을 겪는다. 두 아이를 둔 가정 주부로 그녀의 실체를 알지 못하는 남편을 속이고 사건 수사를 하다, 자신의 가정을 위협받고, 스스로 목숨마저 위태로웠던 수잔은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또한 릴리 역시 당차고 독립적인 의지와 달리 늘 직업적인 위기에 시달리고, 끝내 그로 인한 어려움을 겪게 된다. 루시는 가부장적인  남편의 가정 폭력으로 인해 고통을 겪게 되고. 드라마는 당시 시대적인 배경으로 한 사건 수사와 함께, 1950년대를 살아가야 하는 여성들의 어려움을 네 주인공의 처지로 고스란히 반영한다. 그래서 드라마는 이들  네 명의 여성이 각자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실존적인 성장 드라마이자, 그들이 자신의 전문적인 역량을 살려 범죄를 해결해 나가는 범죄 수사 드라마의 두 방향에서 감동과 성취감을 느끼도록 해준다. 

by meditator 2020. 3. 11. 17: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