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택트의 시대이다. 가급적이면 만나지 말고 교류하지 말고 얽히지 말아야 하는 시대이다. 하지만 그럴 수록 '만남'과 '관계'에 대한 갈망은 더해간다. 기약할 수 없는 코로나가 없어질 먼 훗날에 함께 만나 마음껏 가고픈 곳에 가고 어울리기를 소망한다. 만날 수 없어 더욱 '사람'을, '사람이 주는 온기'를 갈구하게 되는 시대, 이 '쉼표'와 같은 시절에 한번쯤 '관계맺음'과 '사랑'에 대해 되돌이켜 보는 건 어떨까? 

 

 

그 되돌이켜 보는 시간, 가장 먼저 떠오르는 드라마가 있다. 바로 노희경 작가의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이다. '우정사'신드롬을 일으켰던 드라마, 1999년 작임에도 그 후로도 오랫동안 이 드라마를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현재형'의 이야기가 되는 드라마, 극중 재호는 눈을 뜨지 않았지만 재호와 신영의 사랑은 오래도록 기억되고 회자되었다. 20년도 더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이 드라마를 떠올리면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가 떠오른다. '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연탄재같은 인생, 강재호 
재호(배용준 분)는 27살 늦깍이 대학생이다. 멋진 스포츠카를 타고 교정을 누비는, 스포츠카보다 더 훨친한 외모의 그는 언뜻 보기에 무엇하나 부러울 것 없어보이는 '난 놈'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난 놈'답게 자부심을 넘어 시건방이 하늘을 찌른다. 

하지만 사람 겉보기만으로 모른다고, 그 '잘남'은 재호가 세상에서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걸친 '갑옷'과도 같은 것이다. 재호가 어릴 적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엄마는 어린 재호와 그 보다 더 어린 재영을 놀이공원에 버렸다. 재영을 데리고 술을 파는 이모를 찾아온 재호, 그 후로부터 쭉 재호는 '가장'이었다. 

스물 일곱, 가장인 재호는 새벽에 노량진 수산 시장의 '게'를 파는 능력있는 경매인이 되었다. 남자한테 돈을 털린 이모에게 뭉칫 돈을 건넬 수 있을 만큼,  재영(이나영 분)을 대학을 보낼 정도의 능력을 갖췄다. 하지만 재호는 거기서 만족할 수 없었다. 자신을 버린 엄마, 아니 세상에게 더 많은 것을 가짐으로써 '복수'하고 싶었다. 그래서 뒤늦게 대학을 갔다. 대학에서 만난 현수(윤손하 분)를 통해 노량진 수산 시장 게 경매인이 가질 수 없는 '신분 상승'을 꿈꾼다. 

 

 

현수도 재호에게 호감을 보이고 이제 그가 이루고자 하는 '고지'가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오로지 자신의 노력만으로 애써 이루어 왔던 그가 도달하려는 했던 고지는 '신기루'처럼 허물어져 간다. '아버지'같은 마음으로 물심양면으로 보살피던 재영, 대학을 나와 그럴 듯한 가정을 이루게 하면 재호의 '임무'는 완수될 것이라고 했는데, 그 재영이 하필이면 재호의 둘도 없는 친구이지만 세상 무능력하다 못해 하는 일마다 문제를 일으키는 석구(박상민 분)와 사랑에 빠졌다.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친구라고 품었던 석구로 인해 밤잠 못자고 애써 얻은 게 경매인 자리마저 놓치게 생겼다. 

아니 어쩌면 더 큰 문제는 재호 자신일 지도 모른다. 엄마가 자신과 동생을 버리고 간 후 오로지 보이는 것을 얻기 위해 줄곧 달려온 인생이었다. 그래서 여전히 사랑에 목매는 이모를 한심하게 여기며 자신은 '사랑'도 '쟁취'의 대상일 뿐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시간 강사로 들어온 신형(김혜수 분), 그녀가 자꾸 재호에게 거슬린다. 

남부러울 것 없는 집안에서 안온하게만 자란 온실 속의 화초라 여겨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자신처럼 잡초처럼 살아온 사람을 신영은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 냉소했다. 그런데 자꾸 마음이 그녀 주변을 맴돈다. 사는 게 재미없다고 말해버리게 만드는 여자, 어쩐지 그녀 앞에서는 '거짓말'을 할 수 없다. 아니 하기 싫어진다. 그건 신형 역시 마찬가지다. 수업 시간에 만난 오만불손한 학생이라 생각했는데 재호가 신경쓰인다. 부러울 것 없어보이는 그가 언뜻언뜻 보이는 황량한 눈빛에 마음이 간다. 

함부로 차버릴 수 없는 사랑을 향한 용기 
서른의 시간 강사와 스물 일곱의 학생, 남보기에 행복하고 평범해 보이는 중산층 가정에서 순탄하게 자란 외동딸과 오로지 스스로의 힘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려온, 여전히  그의 주변 사람들 모두가 그에게 주렁주렁 매달린 스물 일곱의 가장, 
아니 무엇보다 곧이곧대로의 세상과 사람을 믿는 선한 세계관과 자신에게 너그럽지 않는 세상을 향해 위선과 위악으로 똘똘 뭉친 뒤틀린 마음의 간극이 가장 컸다. 
두 사람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신형은 물론, 재호 주변까지 그 누구라도 말리려고 했던 관계였다. 

하지만 사랑은 둘 사이의 불가능할 것같은 것들을 자꾸 넘어서게 만들었다. 서른과 스물 일곱, 안온한 삶과 들풀 같은 인생, 무엇보다 재호가 신형에게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다가서게 되는 건, 어머니가 그를 버린 이래 자신이 본래 가지고 있었던 선한 심성에 입혔던 위악의 갑옷들이었다. 어거지로 자신을 버텨왔던 그 뒤틀린 삶에 대한 복수와도 같은 '성취'들이 재호에게는 차츰 무의미해져 갔다. 

 

 

그러나 삶을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의 44회 동안 보는 시청자들의 가슴이 미어지도록 재호의 삶은 강팍하다. '가장'의 맘으로 돌보는 동생은 그의 뜻에 늘 어긋나고, 그가 겨우 이룬 것들은 그가 믿었던 사람들로 인해 허물어져 간다.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하늘도 무심하게 겨우 스물 일곱 재호에게 '뇌종양'이란 병마가 찾아든다. 그가 홀로 버텨왔던 삶이 여린 그에게는 너무 버거웠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드디어 재호가 신형에게 갔을 때 재호에게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었다. 1999년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를 보는 당시 아픈 몸임에도 재호가 드디어 신영에게 마음을 열었을 때 그 사랑에 울컥하면서도 한편에서는 과연 저런 상황에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제 그로 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 이제야 알겠다. 그건 바로 '용기'다. 그리고 '진정한 사랑'이다. 

재호가 뇌종양을 앓게 된 이후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는 재호에 대한 신영의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채워지는 듯 보인다. 살고싶다는 재호는 부여안고 괜찮다며 울고 싶으면 맘껏 울라며 보다듬어 준다. 하지만 그뿐일까. 사랑은 누가 누구에게 일방적으로 주는 것이 아니다. 재호가 자신의 병을 저어하여 신영에게 끝내 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드라마의 마지막 신영은 그 어느 때보다도 차분하게 자신의 품에서 영원히 잠든 재호를 깨우지 않았다고 나레이션을 한다. 시청자들은 재호의 죽음을 보며 대성통곡했지만, 아마도 신영은 재호와의 '완성'된 사랑으로 오래오래 충만하며 살아갔을 것이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누가 누구에게 '주기만' 하는 그런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재호가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신영에게 다가가는 용기를 내주었기에 신영 역시 '사랑'을 이루었다. 사랑은 덧셈 뺄셈으로 계산될 수 없는 '관계'이다. 그러기에 아픈 재호로 인해 신영 역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삶의 마지막 고비에서 재호는 용기를 내주었다. 그는 죽어갔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삶을 긍정했고 삶을 향해 열렬한 구애를 한 것이다. 사랑을 인정했고, 어거지로 욕심부렸던 것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가 잃었던 것들이 그를 찾아왔다. 사랑이 왔고, 그에게 빼앗아가기만 하던 사람들이 다시 그의 곁으로 왔다. 그리고 오랫동안 미움이라 생각했던, 그러나 그리워했던 어머니도. 어쩌면 그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들이 비로소 왔다. 너무 늦은 것같지만 늦은 것은 없었다. 살면서 애써보지만 스물 일곱 해의 재호가 얻은 것이 그리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임을 이제 우리는 안다. 그래서 재호는 고단했던 스물 일곱 해, 그 어느 때보다도 평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었다. 

천형처럼 다가온 '코로나 시대',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다. 20년도 더 지난 옛날 이야기지만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는 잃은 것이 많다고 통탄하게 되는 이 시대에 사랑과 관계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그간 우리가 '갑옷'처럼 두르고 살았던 것은 무엇일까? 이제 우리가 정말 용기내어 한 걸음 내딛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지금까지 나는 연탄재가 되도록 뜨거운 사람이었는가? 그리고 용기를 내보라 전한다. 늦었다고 생각한 지금이야말로 가장 뜨거울 수 있는 때라고. 

by meditator 2020. 9. 8. 1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