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4일 오마이 뉴스 에는 < 남학생 절반이 일베, 강남 중학생들의 위험한 선택>이란 기사가 실렸다. 그 기사에 따르면 주 7일 직장인이라도 견디기 힘든 공부 스케줄에 시달린 강남의 고등학교 학생들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일베'를 한다고 한다. 부모의 뜻에 따라 '공부 인형'이 된 아이들은 자신들의 꿈이 무엇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고, 그런 억압적인 상황을 일베 등을 통해 풀어나간다는 것이다. 실제 최근 kbs에 공채된 신입 직원이 '일베' 회원이었던 것이 문제가 된 바 있듯이, 아이들은 자신들의 분노를 '병적인' 코드를 통해 풀어나가고자 하고,  이른바 '일베'는 그 상징적 표현 수단으로 우리 사회에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는 것이다. 국사과목조차 입시 과정에서 선택 과목 중 하나가 되는 나라, 심지어 국사 교과서 선정 과정에서조차 왜곡된 교과서가 판을 치는 나라, 입시 교육에 헌신하느라 어릴 때부터 제대로 된 도덕적 규범 따위는 제껴버리는 나라에서, 어쩌면 '질풍노도'의 청소년들이 가장 극단적인 감정 표출 집단인 '일베'에 모여드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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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미 힐미
ⓒ mbc

 


 

 

왜곡된 한국 사회를 상징적으로 그려내는 드라마들

여기서 드러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은 자신들의 기준에 맞춰 아이들을 재단하는 억압적 부모, 그리고 그런 부모 밑에서 거부하지 못한 채 '억압적 기재'를 내재화한 채 '병적'으로 성장하는 아이들이다. 그리고 이런 우리 사회의 현실은, 드라마로 들어와, '정신병적 증후군'에 시달리는 남녀 주인공들로 형상화된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최근 젊은 층에 화제가 되고 있는 mbc수목 드라마 <킬미 힐미>와 tvn의 <하트 투 하트>이다.

이제 중반부를 넘어서 클라이막스를 향해 치닫고 있는 두 작품은 공교롭게도 남녀 주인공의 숨겨진 사연으로 애를 태운다.

 

7가지 인격을 가진, 스스로 '차도현입니다'라고 밝히기 전에는 도무지 누구일까 헷갈리는 남자 주인공, 그리고 졸지에 그의 개인 주치의가 되어버린 여주인공의 '썸'인 듯, 치유인듯 헷갈리는 <킬미 힐미>. 알고보니 그와 그녀가 만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늘 '차도현입니다'라며 자신을 밝혔던 차도현(지성 분)이었지만, 그의 그 선명한 자기 소개가 극의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발목을 잡는다. 과거의 사연이 드러나고 보니, 정작 '차도현'은 남자 주인공이 아니라, 오리진(황정음 분)이라는 이름으로 그와 조우하게 된 그의 개인 주치의였던 것이다. 하나의 '차도현'을 나누어 가지게 된 두 사람의 숨겨진 사연에는, 그들 두 사람을 둘러싼 부모, 조부모들의 탐욕이 숨겨져 있었다.

 

승진 그룹을 살리기 위해, 딴 사람의 자식을 낳아 홀로 키우려던 며느리(명세빈 분)를 아이를 승진가의 떳떳한 후손으로 만들어 주겠다며 꼬인 할아버지 (김용건 분). 그 할아버지의 유혹에 넘어가 남의 자식을 승진가의 핏줄이라 숨기며 다시 승진가로 돌아온 며느리, 그리고 뒤늦게 자신의 아들을 데리고 승진가로 돌아와 그 사실을 알고 분노한 아버지(안내상 분). 아버지는 배신당한 자신의 마음을, 아내가 데리고 들어 온 딸 아이의 학대로 푼다. 심지어 자신의 아들이 잘못을 해도, 딸 아이를 때리는 식의 학대를 고스란히 지켜봐야만 했던 아들은, 결국 자신의 속에 숨겨져 있는 '파괴의 인격'을 불러 올려 불을 낸다.

아버지의 학대, 그리고 그 학대를 용인하는 다른 어른들에 분노한 아이는 다른 인격을 통해 현실의 자신에게서 도피한다. 그리고 학대의 당사자 딸 아이는, 겨우 불길 속에서 목숨은 건졌지만, 공포스러웠던 과거를 잊는 것으로 자신을 보호하고자 한다.

결국 왜곡된 어른들의 피해자였던 아이들은 어른이 돼서, 7가지 인격으로 고통받는 환자와 정신과 의사로 조우하게 되었고, 치료의 과정에서 그들의 봉인되었던 과거가 드러나면서, 극은 정점으로 치닫는다.

 

여기 또 다른 '불'의 현장이 있다. 늘 싸우기만 하는 부모, 그 날도 아버지와 엄마는 소리 높여 싸우면서, 아이들에게 나가 놀라고 했다. 평소에 어른들의 사랑을 독차지 하던 형이 미웠던 소년은 창고 안 드럼통 안에 숨은 형이 미뭐 형이 나오지 못하게 무거운 것으로 눌러 버린다. 그런데 그만 불이 나고 미처 창고 밖으로 나오지 못한 형은 죽고 만다. 화재의 원인은 가정부로 일하는 할머니의 손녀가 붙인 성냥불이란다. 그 다섯 살 밖에 안된 소녀는 화재를 일으킨 범인으로 경찰에 잡혀갔지만, 소년은 안다. 자신이 형의 죽음에 피할 수 없는 책임이 있다는 것을. 겨우 경찰에서 나온 소녀(최강희 분)는 할머니와 함께 차홍도로  이름을 바꾼 채 살아가지만 얼굴이 빨개지는 대인기피증에 시달려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형을 대신하여 형의 부재에 고통스러워하는 엄마를 거두며 착실하게 성장한 동생 고이석(천정면 분)은 알콜 의존증에 헤매인다. <킬미힐미>와 정반대로, 홍조증에 시달리는 여주인공은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정신과 의사인 남주인공을 찾아간다. 하지만 역시나 사랑과 치료가 뒤범벅이 된 두 사람의 관계는 뜻밖에도 숨겨진 과거의 사연을 만나 고통받게 된다.

 

기사 관련 사진
하트 투 하트
ⓒ tvn

 


 

 

번듯해 보이지만 고통받는 그들, 과거의 인연에 엮이다

<킬미 힐미>의 남자 주인공 차도현은 승진 그룹의 유일한 후계자인 재벌 3세이고, <하트 투 하트>의 고이석은 잘 나가던 정신과 의사이지만 역시나 자전거 사업으로 자수성가한 기업가 고상규(주현 분)의 손자이다. 그들의 집은 화려하고, 그들이 가진 물적 조건은 풍족하기 이를 데 없지만, 하지만 그들은 그곳에서 행복하지 않다. 아버지를 죽일 뻔한 인면수심의 존재로 자신을 바라보는 할머니, 그리고 오로지 후계자의 자리만 노리는 어머니, 그 두 사람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차도현을 이용할 뿐이다. 고이석의 집안도 콩가루이긴 마찬가지다. 형의 죽음 이후 밖으로만 떠도는 아버지, 자책감에 시달려 자살을 밥먹듯이 하는 어머니, 그런 가족 속에서 역시나 죄책감에 시달리면서도 어떻게든 착한 아들 노릇을 해야 하는 처지인 것이다. 착한 손주, 아들 노릇에는 차도현 역시 저리가라이다.

 

그런 그들에게 '사랑'이 찾아왔다. 7개의 인격에 시달리는 차도현에게는 정신과 의사라는 존재로, 반대로 정신과 의사인 고이석에게는 골치아픈 환자의 존재로 그녀가 왔다. 누가 의사인든, 환자이든, 그렇게 가족으로 인해 억압적 상황에서 고통받던 그들은, 자신을 찾아 온 그녀에게서, 사랑도 얻고, 치유도 받는 중이었다. 하지만 사랑이 깊어지고, 치유에 한 발 다가가면서, 그들의 봉인된 과거가 풀려지고, 거기엔 치유자가 아닌,  그들과 마찬가지로 또 다른 희생자였던 그녀들이 떠오른다.

 

공교롭게도 <킬미힐미>와 <하트 투 하트>에서는 어린 시절 아이들의 처지를 폭발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으로 '불'이 등장한다. 신화 속에서 불은, '파멸'이자, 동시에 '정화'를 뜻한다. 어린 시절 왜곡된 삶을 살던 아이들은, '불'을 통해 자신의 관계들을 파멸로 이끌어 간다. 동시에, 그

불'은 그들의 왜곡된 삶을 풀어낸 계기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그들은 이렇게 다시 환자와 주치의의 관계로 만나졌고, 남자와 여자로 교감하게 되면서, 과거 자신의 상처를 바라 볼 용기를 얻는다. 그리고 이제 그 힘으로 자신들을 왜곡시켰던 어른들의 역사를 거두어 내고, 자신들의 삶을 살아갈 힘을 얻을 것이다.

 

이렇게 <킬미 힐미>와 <하트 투 하트>가 그려내는 우리 시대의 젊은이들은 공통적으로 정신적으로 고통받는다. 그들은 재벌가 라는 풍족하다 못해 넘치는 물적 조건과, 그룹 내 중진에, 정신과 의사라는 번듯한 직업을 가졌지만 공허하다. 자신을 견뎌내지 못하고 7개의 인격으로 파열음을 내거나, 알코올에 의존한다. 풍족한 사회 속에서 방향을 잃고, 정신적으로 의지가지없는 현실의 젊은이들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그리고 그런 현실의 젊은이들을 초래한 것이, 그들올 오로지 '공부 인형'으로만 키운 욕심많은 부모 세대이듯, 드라마 속 젊은이들은 부모들의 탐욕으로 인해 고통받는 것으로 그려진다. 그래서, 이들 두 드라마는 중장년층이 리모컨의 향배를 쥔 tv 문화에서 '대박'은 되지 못하지만 젊은 층의 호응을 얻는다. 아마도 그들이 차도현의 7가지 인격의 파열에 공감하며, 작가가 그려내고자 하는 치유의 과정에 호응하는 것은, 차도현을 통해, 상처받은 자신들을 구원하고자 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고이석과 장두수 사이에서 헤매이던 차홍도의 이야기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힘을 가지는 것은 여전히 젊은 그들의 치유를 끝내 놓치지 않고 있는 점때문인 것처럼. 그래서 그나마 젊은이들이 관심을 두고 찾아보는 tv 프로그램 중 하나가 되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5. 3. 5. 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