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 미렌과 이안 맥켈런, 이 노익장 배우 두 사람이 주연으로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굿 라이어>는 봐야할 가치가 있다. 그런데 이 두 배우를 '조련'하는 사람이 다름 아닌 빌 콘돈이라면?

빌 콘돈 감독과 함께 한 헬렌 미렌과 이안 맥켈런, 과연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도무지 예측이 안된다. 그도 그럴 것이 그에게 골든 라즈베리 최악의 작품상을 안긴 <브레이킹 던(2012)>에서부터 골든 글로부 작품상을 안긴 <드림걸즈(2007)>, 그리고 <미녀와 야수(2017)>까지 그의 작품 세계는 종횡무진하다. 그 중에는 이안 맥켈런과 함께 한 노년의 홈즈를 그려낸 <미스터 홈즈(2016)>도 있다. 아마도 <굿 라이어>의 실마리를 찾는다면 <미스터 홈즈> 속 30년전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미궁 속 사건의 진실이 가장 근접하겠다. 바로 그 과거의 사건으로 부터 오늘의 '굿 라이어'는 탄생되었으니까. 

 

 
'라이어'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한 사람이 평생에 걸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게 되는 건 어떤 일일까? 아니 그 반대로 한 사람이 평생에 걸쳐 포기할 수 없는 복수란? 80대 노익장 두 배우의 깊이있는 열연이 담긴 영화 <굿 라이어>를 보고 나면 도달하게 되는 질문이다. 그리고 그 질문은 이제는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들이 아직 세상을 모르던 10대의 시절로 관객을 이끈다. 

<굿 라이어>가 주목할 만한 지점은 흔히 2차 대전 시기의 독일을 배경으로 한다면 '나치'와 '홀로코스트'에 대하 '주제'를 길어내는 것과 달리, 전쟁에 휩쓸린 독일에서 살아갔던 10대의 소년과 소녀의 비극적 삶을 조명해 낸다. 

<폭풍의 언덕>으로 온 히드클리프는 그를 '모멸'하는 주인의 아들 힌들리에 대해 2대에 걸친 처절한 보복을 한다.  이제 막 '자아'를 형성해 가는 성장기의 청소년에게 '인격적 모욕'은 평생의 '트라우마'와도 같다. <폭풍의 언덕>만이 아니라 많은 소설들이 그런 '소년'의 엇나간 자존심을 문학적 주제로 삼았다. 그리고 여기, 또 한 명의 소년이 있다. 

한스, 겨우 15살 나이에 부유한 사업가 집안의 딸에게 영어를 가르칠 만큼 똑똑했지만 그는 가진 것이 없다. 전쟁 통에 이쁜 옷을 입어도 갈 무도회가 없는 사업가의 딸들은 자신들의 눈에 띈 한스를 상대하여 춤판을 벌이지만 '하인'같은 한스의 도발적인 키스는 감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상처받은 소년의 치기는 자신을 흠모하는 제자인 막내 딸 릴리에 대한 '잊을 수 없는' 상흔를 결과한다. 그리고 그날로 소년의 밥줄은 끊겼다. 

그게 시작이었다. 자신의 영어 선생님이었던 소년을 흠모했지만, 그 흠모의 대가로 씻을 수 없는 성폭력과 그에 이은 상처입은 자존심을 끝내 참지못한 소년의 '밀고'로 인해 부유했던 가정이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리며 한 소녀의 삶이 땅바닥에 쳐박히게 된 것은. 그래서 온통 흰 머리가 된 2009년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을 용서할 수 없게 된 것이. 소녀는 내가 먼저 나가서 선생님을 맞이했다면 어땠을까 라고 오랜 시간동안 되물었지만, 더는 하얀 백합과 같은 소녀의 순결함도, 고결함도 지켜낼 수 없었다. 

동시에, 그건 흔히 영어에서 '상습적인 거짓말쟁이'를 지칭하는 'liar'의 시작이기도 하였다.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것을 어떻게 무너뜨려야 하는 지를 배운 소년은 다시 자라서, 이제는 부모조차 없는 처지의 자신을 영국인으로 거뜬히 '위조'했고, 15살 소년이 영국인 '로이'가 되어가며 살아왔던 방식은 해를 거듭할 수록 '업그레이드' 되어 이제 노년에 이르러서 30억이 넘는 재산을 모은 '프로페셔널한 라이어'가 되어 있었다. 영화는 명확하게 그려내지는 않았지만 한스라는 인물이 사기꾼 로이로 살아내기 위해 그의 고국 독일에서 '전범'의 역할 마다하지 않았음을 드러내 보인다. 굳이 '홀로코스트'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전쟁'을 통해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생존과 편의를 위해 '악'과 손을 잡게 되는가를 설득력있게 그려낸다. 

그는 그렇게 살아왔다. 15살 자신에게 '모멸감'을 안겨주었던 '릴리'네 집안을 '파멸'시키듯이 노인이 되어서도 자신이 하는 일에 걸림돌이 된다면 그 누구라도 손을 짖이겨 버리고, 머리통을 나꿔채 달려오는 지하철로 던져버리며 장애물을 없애며 살아왔다. 그리고 이제 우연히 데이트 상대를 만나기 위해 드나들던 데이트 사이트에서 만난 부유한 미망인 베티를 통해 겨우 1억 나부랭이나 사기치던 사업의 '40억 짜리 마지막 큰 한 판'을 용의주도하게 준비한다. 

 

   

 

누가 굿 라이어인가? 
노년의 사랑을 '로맨틱'하게 다뤘던 영화 <북클럽>에서 오랫동안 독신 생활을 해왔던 연방 판사 샤론(캔디스 버겐 분)이 뒤늦게 '연인'을 만나게 되는 창구였던 인터넷 만남 사이트는 이제 <굿 라이어>에서는 자신의 본명을 숨기는 등 조금은 거짓말을 했다는 '로이(이안 맥컬런 분)'와 '베티(헬렌 미렌 분)'가 만나는 계기가 된다. 같은 사이트가 매개하는 '사랑'과 '복수', 현대 문명의 아이러니한 몰가치성이다. 

영화를 내내 이끌어 가는 건 부유한 미망인에 전직 옥스포드 교수였다는 베티를 상대로 한 로이의 사기 한 판이다. 동시에 로이는 부동산 사기 한 판을 벌이고 있다. 베티의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무릎이 안좋다며 절둑이던 로이가 거의 <유주얼 서스펙트>의 '카이저 소제'급으로 멀쩡하다 못해 달리다시피 찾아간 바에서 만난 동료 사기꾼들, 로이와 함께 했던 베스트와 함께 새로이 합류한 2명, 이렇게 총 4명의 사기꾼들은  러시아 투자자를 상대로 한 '투자 사기'를 준비한다.

어수룩한 동료의 썰렁한 한 마디로 엎어져 버릴 뻔한 판이 우여곡절 끝에 로이 측의 투자금을 올려 겨우 러시아 측의 12억의 배팅이 순조롭게 끝난 순간, 반가워 덥석 안은 러시아 투자자 등에서 도청 장치가 발견된다. 그와 함께 들이닥친 경찰, 그때 로이는 심장마비가 온 듯 자리에 쓰러지고 만다. 그러나 동료들은 우선 급한 마음에 로이를 놔둔 채 자리를 뜬다.

이렇게 주인공의 심장마비로 끝나버리는가 싶은데 그 상황을 깬건 뜻밖에도 쓰러진 줄 알았던 로이의 호쾌한 웃음이다. 알고보니 '사기'의 대상은 '러시아 투자자'가 아니라, 그를 속아넘기려 했던 '로이'와 짜고 쳤다 생각한 두 명의 동료였던 것던 것. 이 장황하게 전개된 로이의 사기극은 <굿 라이어>의 결정적 '스포'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속고 다시 속이는, 그래서 '사기'의 주체인 줄 알았던 사람들이 알고보니 '사기'를 당하는 측이 되는 이 사건은 이후 로이와 베티의 관계에서도 고스란히 되풀이된다. 단지 그 '설계자'가 '로이'가 아니라는 것만 빼면. 

아니 애초에 가장 결정적인 '스포'는 제목 <굿 라이어>이다. '라이어'라는 말이 그냥 우리나라의 '거짓말쟁이' 정도가 아니라 queen의 노래 'liar' 가사  내용처럼 밥먹듯이 거짓말을 하는 욕에 가까운 명칭이다. 그런데 그런 'liar'가 Good하다니, 언뜻보면 노회한 사기꾼인 로이를 지칭하는 단어같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오면 여주인공인 '베티'의 평생에 걸친 숙원을 '상징적'으로 뜻하는 단어임을 알게 된다. 영화는 마치 게임처럼 두 주인공의 '거짓말'을 둘러싼 치명적인 스릴러같지만, 그 '거짓말' 게임의 궁극에서 만나게 되는 건 '전쟁' 속에서 피폐해지고 상흔에 너덜너덜해진 '인간성 말살'의 표상들이다. 두 배우의 무게감만큼 이야기가 전해주는 역사적 울림이 깊다. 

by meditator 2019. 12. 7. 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