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의 월화 드라마 <광고 천재 이태백>은 실존 인물 이제석을 모티브로 삼아 방영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이제석이 누구인가? 지방대 출신에, 동네 간판 가게에서 일을 하다, 미국으로 유학, 그 이후 국제 광고제에서 수상을 거듭하며, 획기적인 공익 광고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바로 그 화제의 인물아닌가. 그런 당대의 '히어로'를 주인공으로 삼는다 하는데........그런데 웬걸, 실제 드라마 <광고 천재 이태백>에서 만난 인물은 80년대 드라마에서 종종 조우하던 좌충우돌 열혈 청년, 그 사람이다.

 

 

 

얼마전 조용히 종영을 한 <드라마의 제왕>이란 드라마가 있었다. 연기에 있어 '본좌'라 칭해지던 김명민의 모처럼 드라마 복귀작으로 기대를 받았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연 <드라마의 제왕>은 세간의 이목을 끌기에는 부족했었다. 그 이유는 아직까지 사람들에게 '드라마'라는 건 보기엔 익숙해도, 그 뒷이야기까지 관심을 가지기에는 익숙치 않은 장르이기 때문이었다. 그러기에 줄곧 '드라마'를 만드는 '자신'들의 고뇌와 고통을 논한 <드라마의 제왕>을 사람들은 '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이지 못한 채 '그들만의 리그'로 끝을 맺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광고 천재 이태백>이 가지고 있는 딜레마도 마찬가지이다. 제 아무리 이제석이란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도입한다 하더라도 눈만 뜨면 만나는 것이지만 '광고' 역시 '드라마' 만큼이나 사람들에게는 낯선 이야기일 수 있으니, 그 딜레마를 <광고 천재 이태백>의 제작진은 이른바, '이십대의 태반이 백수'라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공통적 고민에서 부터 풀어가고자 한다. 즉, 가진 것 없고, 지방대 출신의 낮은 스펙으로 면접도 보기 전에 떨어지지만 세상을 향한 패기 하나는 그 누구보다도 거칠 것 없고, 정의로움 또한 따를 자 없는 젊은이의 이야기로.

그런데 그러다 보니, 보편적 고민에서 출발하는 건 좋은데, 이 드라마가 다루고자 하는 '광고 천재'라는 측면에서는 역으로 영 부실한 내용을 담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자동차 광고판을 세로로 붙이느냐, 가로로 붙이느냐, 혹은 아이들의 게임기로부터 모티브를 얻어 광고 컨셉을 만드느냐 라는 지엽적인 소재를 차치하고는, 이 드라마가 진짜 '광고'를 다루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심하게는 이 드라마의 구도를 그대로 가져다가, 2012년에 '패션'을 다룬다 하여 화제를 끌었던 '패션왕'이나, 혹은 거기서 더 거슬러 올라가, 1998년도의 <미스터 Q>에 가져다 놓는다 해도 크게 이물감이 없다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게다가 과거의 사랑했던 한 여인(고아리; 한채영 분)을 둘러싼 주인공(이태백; 진구 분)과 서브남9에디 강; 조현재 분)의 대립 구도에, 대기업 본부장인 서브남은 언제나 그렇듯 야심만만에, 이제 주인공과 사랑에 빠질 여자(백지윤; 박하선 분), 그것도 전형적으로 회장님의 딸을 자신의 야망을 위해 이용하려까지 하니, 이보다 더 전형적일 수 없는 인물 구도이다. 더구나, 주인공은 할머니와 여동생을 거느린 가장에 마음은 따스하기가 이를데 없으며, 서브남은 직설적인데다가, 아버지와도 서먹서먹한 냉혈한에 가까운 인물이라니(물론 거기에 또 사연이 있겠지만), 1회부터 대놓고, 주인공은 좋은 편, 서브남측은 나쁜 편하고 편을 먹고 시작하는 이 방식은 전형적이어도 너무도 전형적이다. 이렇게 구도가 만들어져 버리면 결국 드라마를 끌고 가는 건, 또 역시나 주인공의 선한 의지와, 그 반대 측의 이기주의, 혹은 그것을 지속하기 위한 악행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심지어, 동네 간판을 싹쓸이 하는 간판 가게 사장님이 알고보니, 한때 광고계를 주름잡았던 전설의 광고쟁이라는 설정에 그를 찾아가 이태백이 무릎을 끓는 엔딩에서는, 전설의 타짜를 찾아가 '한 수 가르쳐 주십시오'하는 '타짜'의 한 장면이 오버랩된다. (또 마침 그 장면에서 전설의 광고쟁이는 화투를 치며 말한다. 광고는 낙장 불입이라고 !)

 

정작 이 드라마를 보면서 사람들이 궁금해 할, 왜 이태백은 광고를 하게 되었을까?란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여주인공과의 술자리 대화로 단번에 해결해 버린다. 그리고 그냥 처음부터 이태백은 '천재'다. 그가 책상에서 끄적거린 광고 아이디어는 광고 전문 기업 금산 에드 기획팀과 본부자의 머리를 단번에 뛰어넘을 정도로. 그리고 아마도 이 다듬어지지 않은 천재는 무림의 고수 마사장을 만나 '사사'하면서 더더욱 <타짜>의 '고니'같은 '천재'로 거듭나 안그래도 무능력해 보이는 금산 에드 광고팀들을 날려버릴 것이다.

 

과연 이런 천재 이태백을 보면서, 이 시대의 진짜 이태백들은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일단 사람은 잘 나고 봐야해, 이런 거?

21세기의 꽃인 광고, 그리고 21세기의 영웅 이제석이란 인물을 그저 뻔한 성공 스토리에 차용하기에 앞서, 이 시대에 광고가 무엇인지, 이제석이란 인물이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고민이 좀 더 앞서야 하지 않을까? '타고난' 히어로가 아니라, 갈고 닦여 성장하는 맛이라도 있어야, 시청률은 차치하고,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이라도 주지 않겠나.

by meditator 2013. 2. 6. 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