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기획되었던 18회를 미처 채우지 못한 채 16회로 <개과천선>이 마무리되었다. 16회, 조기 종영을 대놓고 드러내기라도 하듯, 드라마는, 허겁지겁 백두 그룹 사건을 마무리한 채, 어정쩡하게 끝난다. 마치, 시즌제를 거듭하는 미드가 다음 회를 기대할 떡밥을 던져놓고 한 시즌을 마무리하듯, 16회로 종영한 <개과천선>은 굳이 종영이라면 종영이다 싶지만, 다 풀어내지 못한 것들을 따지고 보면 아쉬운 것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골든 타임> 때도 호청자들로 하여금 시즌2를 부르짖게 하더니, 이번에도 역시 최희라 작가는, 애청자들의 입에서 저절로 시즌2가 아니고서야 하는 아쉬움의 단어를 내뱉게 만든다. 하지만, <골든 타임>때도 번번히 문제가 되었던 늦은 쪽대본의 문제가, 이번 <개과천선>에서도 결국 해결되지 않은 채 조기 종영이라는 사태의 한 원인이 되고 보면, <개과천선>의 시즌2를 바라는 것은 이번에도 호청자들의 욕심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개과천선>이라는 제목답게 극중 주인공 김석주(김명민 분)은 완전히 개과천선을 하고 끝냈다. 16회 후반부, 차영우 로펌과 투기 자본 골드 리치 사이의 커넥션에 관련된 녹음 파일을 전달 받은 차영우(김상중 분)는 한 발 물러선다. 하지만 대신, 자신을 협박한 김석주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하고자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아버지와 오랜 갈등을 불러 일으켰던 어린 시절 김석주를 돌변하게 만든 인간에 대한 불신, 바로 그것을 건드리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백두 그룹의 회장을 매수한다. 하지만, 김석주에게 언제 그랬냐는 듯, 노조의 경영 참여에 대해 오리발을 내미는 회장에게 김석주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비자금 문서를 들이민다. '개과천선'을 한 김석주는 더 이상 어린 시절, 아버지를 배신하고 어머니를 다치게 했던 노동자에게 상처를 받던 어린 소년이 아니다. 많이 단단해 졌다는 친구 박상태(오정세 분)의 칭찬에, 김석주는 사람이 다 저마다 다른 것이라고 덤덤하게 대꾸한다. 

<개과천선> 김명민, 아버지와 관계 완전 회복하며 해피엔딩 이미지-1


15회 차영우 로펌의 대표 차영우는 거대 로펌의 변호사가 하는 역할을 '법률적 변호'를 넘어선 '로비스트'라 정의한다. 돈이 흐르는 곳을 앞서 가서, 그 돈의 흐름을 좌지우지하는, 주도적 역할의 직업이다. 그리고 바로 그렇게, 앞장서, 대기업의 세금 포탈을 비롯하여, 사생활 문제, 그리고 불법 투기 자본과의 커넥션까지 마다하지 않고 '설계자'로서 두각을 나타내던 김석주가, 자신을 공격했던 괴한들에 머리를 다치고, 사람이 달라졌다.
사실, 드라마적 개연성으로 따지자면, 사고로 인해 단기 기억 상실에 빠지고, 그로 인해, 과거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며, '개과천선'한다는 식의 이야기 구조는, 허술하다. 왜 하필, 그렇게 파렴치할 정도의 인간이었던 대한민국 상위 1%의 !% 변호사 김석주가, 단지 머리를 다쳤다는 이유만으로, 하루 아침에 양심적으로 변해야 한단 말인가.

<개과천선>은 그렇게 이야기 구조의 허술함을, 드라마가 딛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길어올림으로써, 드라마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달리 보이게 만든다. 
오히려 황당무게한 듯한 김석주의 기억 상실을 통한 자기 반성이란 설정이, 사실 현실의 김석주와 같은 사람들에게서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이기에, 해프닝과 같은 드라마 속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한다. 

그렇게, 김석주가 자기 반성하는 과정을 통해, <개과천선>은 현재 거대 로펌이라고 불리는 세력이, 그저 가진 자들의 법률적 이해 관계에 복무하는 것을 넘어, 그들이 가진 법률적 지식과, 그들이 끌어모은 인적 자원, 자금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대한민국 부의 재창출에 간여하고 있는 모습을 폭로한다. 그리고 그런 부의 재창출 과정이, 처음 현성 그룹 사건에서 부터 시작하여, 중소기업을 상대로한 불법적 환율 상품 매각, 그리고 투기 자본에 의한 백두 그룹 경영권 침탈까지, 불법적이며, 부도덕한 과정으로 일관되어 가는 것을 보여준다. 즉, 현재 '돈이 되는 곳이라면, 결코 마다하지 않는, 아니 '돈'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신보다 덜 가진 사람들의 것을'불법'과 편법을 마다하지 않고  '강탈'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부의 생태계를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그리고, 시청자들은, 바로 그들이 '키코 사태', '동양 증권 사태' 등 신문 지상에서 마주쳤던 사건의 실상을 드라마를 통해 '복습'하면서, 그리고 동시에, 드라마에서 고발하고 있는 우리 사회 실상을 다시 부도덕한 고위직 인사들을 통해 확인하면서, <개과천선>의 진가를 확인하고 감동한다. 차영우가 16회 실토하듯이, 돈을 더 많이 얻고자 하는 목적, 오로지 그 하나를 위해, '전관 예우'라는 명목으로 상식 이상의 돈을 벌었던 사람이 번연히 총리 후보직에 나서는 세상에서, <개과천선>이라는 드라마가 지향하는 ''고발'의 힘은 드라마적 감동이 된다. 

강직했던 아버지가 고난을 겪고, 그 과정에서 어머니가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다치자, 약자들에 대한 연민을 거두었던 김석주는 머리를 다치면서, 오랫동안 닫아왔던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그가 잊었던 '인간에의 연민'을 회복한다. 그저 돈을 좀 더 많이 벌거나, 재판에 이기는 승패의 세계에 있던 그가, 자신이 했던 일들이 누군가에겐 전 생애가 걸린, 혹은 목숨이 달린 절체 절명의 일일수도 있음을 깨닫고 회한에 젖는다. 

오늘 종영! <개과천선> '정의' 김명민 VS '힘' 김상중, 마지막 대결은? 이미지-1

하지만, 그건  '천재일우의 기회로 '개과천선'한 김석주의 경우일 뿐이다. 마지막까지 노회한 눈빛을 늦추지 않은 차영우도, 승부사의 욕망으로 기꺼이 또 하나의 김석주가 되어가는 전지원(진이한 분)도 여전히 그곳에 있다. 오늘날 거대 로펌의 존재가 우리 사회에 드리운 그림자처럼 말이다. 그래서, <개과천선>의 16회는 종전이 아니라, 이제 막 시작하는 싸움의 서막과도 같다. 그래서 이제야 비로소, 한국 사회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고 주무르는 차영우 로펌과, 김석주로 대변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의 연민을 잃지 않는 한 줌의 양심적 변호사 그룹의 싸움이 시작될 거 같은 16회의 엔딩이다. 아직 채 시작되지도 않은 우리 사회의 '법률적' 전쟁을 기대해보면서 말이다. 


by meditator 2014. 6. 27. 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