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의 드라마 <갑동이>는 일탄시 연쇄 살인을 다룬 드라마이다. 

이 드라마 속 일탄은 <살인의 추억>처럼, 화성 연쇄 살인이 일어난 화성을 그 모티브로 삼고 있다. 현실에서 화성 연쇄 살인범은 결국 잡히지 못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80년대라는 시대가 가진 수사 현실의 한계가 눈 앞에 범인을 두고도 결국 보내주어야 하는 상황으로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그래서, <살인의 추억>의 헤드 카피는 '미치도록 잡고 싶다'이다. 
그렇다면 2014년의 <갑동이>는 어떨까? 드라마 속 2014년의 일탄, 과거의 연쇄 살인을 모방한 범죄자가 그때와 똑같은 살인은 이제 5차까지 저질렀다. 하지만, 여전히 드라마 속의 범인은 잡힐 깜냥이 보이지 않는다. 그때나, 이때나, '미치도록' 잡고 싶을 뿐이지, 잡을 능력이 없는 건 마찬가지다. 

<살인의 추억>속 사건이 일어난 상황은, 80년대 가진 우리 사회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그려내 보이는 것으로 대신한다. 사건이 터지기만 하면 들끓는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빈번하게 바뀌는 책임자들, 그때마다 새로이 꾸려지는 수사반은 일관성있는 수사를 할 수 없고, 당장의 성과를 내기 위해 만만한 사람을 데려다가 강압적 수사를 하게 되는 상황, 과학적이라는 말은 눈을 씻고 찾아볼래야 찾아보기 힘든 관성에 쪄든 수사 현실 등이 당시를 추억하는 내용들이다. 

(사진; 리뷰스타)

그렇다면 2014년의 상황은 좀 달라졌을까?
양철곤(성동일 분)으로 하여금 하무염(윤상현 분)에게 집착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것, DNA, 하지만 하무염의 DNA를 손에 넣었지만, 양철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과학 수사를 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던, 그가 그토록 신봉했던, 범인의 DNA를 경찰이 보유하고 있다는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확인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갑동이>는 그런 상황을 통해, 몇 십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의 수사 상황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또한 그렇다면 수사를 하는 사람들은 좀 달라졌을까?
그것도 마찬가지다. <살인의 추억>의 헤드 카피 '미치도록 잡고 싶다'에서 2014년의 수사진 역시 여전히 그 중 '미치도록'에만 방점이 찍혀 있다. 
양철곤은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가며 무시무시한 표정을 지으면서 살인범에 집착하고, 하무염은 눈이 까뒤집혀 가며 미쳐 날뛰지만, 정작 그들이 8회에 이르도록 <갑동이>에서 범인을 잡기 위해 한 것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마치 드라마는 갑동이와, 갑동이의 카피 캣이 류태오가 주인공인 양, 그들의 합동 작전으로 벌어지는 일탄에서의 연쇄 살인의 재연이 고스란히 벌어진다. 

'미치도록'이란 말에 방점이 찍혀 있는 양철곤과 하무염은 그저 자신의 미망에 사로잡혀 허우적거리느라 사건에 제대로 접근조차 못한다. 양철곤은 혹시나 하무염의 아버지가 범인이었듯이, 하무염이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그 자신의 미혹됨에, 하무염은 그저 범인을 잡고 싶다는 열망뿐으로, 정작 십 여년 세월 동안 그들이 갑동이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 그저 '사로잡힘' 그 자체 뿐이었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카피 팻이 나타나 판을 치는데, 십 여년 세월 동안 오로지 갑동이에 매진했던 그들은 매번 카피캣의 방식에 온전히 당한다. 하다못해 시험을 재수만 해도 쉬운 내용을 줄줄 외는 게 인지상정인데, 십수년을 거기에 매달렸다는 그들이 기억하는 건, 단순 수사 내용을 넘지 못한다. 결코 글짜로 된 그 정황을 넘어서지 못하는 단세포적 반응만을 보인다. 양철곤의 포스와, 하무염의 분노가 무색하게. 

그래서 이즈음엔 <갑동이>란 드라마가 의심스러워 지기 시작한다. 
과연 이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사회적은 물론 각자 개인이 쌓아놓은 자신의 미망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만약에 그것이 이 드라마의 주제 의식이었다면, <갑동이>는 성공적이다. 수사반장과 형사라는 직업적 능력이 무색하게 자신의 집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양철곤과 하무염이란 캐릭터를 아주 실감나게 그려내 주고 있으니까.

하지만 만약에 그게 아니라면, 갑동이와 갑동이의 카피 캣이라는 범죄 자체를 그럴 듯하게 그려내 보이기 위해, 그가 5차에 이르는 범죄 과정을 성공적으로 실행하도록 하기 위해, 다른 캐릭터들을 소모시킨 것이라면? 심지어, 혹시나 작가나, 제작진이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갑동이의 카피 캣 캐릭터에 매료된 것이라면? 이러다, 어이없이 마지막에 가서, 한번에 전세 역전 해놓고 양철곤과 하무염이 이겼어요 할 거라면? 그런데 8회에 이르면서 슬슬 그런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 

(사진; 리뷰스타)

십 수년을 매달린 사람들치고, 양철곤과 하무염은 도무지 수사 과장이나, 형사라기엔 너무 감정적이고, 충동적일 뿐더러, 그에 비해 갑동이나, 갑동이 카피캣 캐릭터는 너무 도드라져 우월하다. 이러다 보니, 정작 이 드라마가 그려내 보이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한다. 과정이라기엔, 양철곤, 하무염의 캐릭터들이, 분위기만 그럴 듯하고, 무능력하니까. 영화 <살인의 추억> 속 우격다짐 형사 박두만(송강호 분)도 사건의 해결을 위해 서태윤(김상경 분)처럼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드라마 속 양철곤과 하무염은 어떤가. 그들이 손을 잡았다지만, 여전히 자신의 편집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사건에 대해서는 지극히 감상적으로 대처할 뿐이다. 그런 것을 그리고 싶다고 하더라도, 8회에 이르기 까지 너무 일관되게, 두 사람의 캐릭터가 성장이 없다. 줄곧 갑동이와 갑동이 카피캣에서 농락당하고, 드라마는 류태오의 사이코패스적 캐릭터와, 그의 범행을 그려내는데 진력한다. 

최근 우리마라 드라마에 이른바 '사이코패스'들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그리고 드라마들은 그들이 왜 그런 것인가에 대해, 혹은 그들의 사이코패스스러움을 공들여 설명하고자 한다. 심지어 그들이 사랑까지 하려 한다. 하지만, 제 아무리 공들여 설명해도, 사연이 있어도 그들은 범죄자일 뿐이다. 달라지지 않는다. 극의 균형추가 그쪽으로 넘어가서는 안된다. 8회에 이른 <갑동이>, 사이코패스 류태오를 이해하고 즐기기 위해 이 드라마를 보는 게 아니다. 


by meditator 2014. 5. 11. 1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