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10일부터 wave 오리지널을 통해 선공개되고 매주 금요일 mbc를 통해 방영되었던 시네마틱 드라마 SF8이 10월 9일 <인간 증명>을 끝으로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민규동 감독을 비롯하여 노덕, 이윤정, 한가람, 안국진, 오기환, 장철수, 김의석 감독까지 한국 영화 감독 조합과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OTT) 웨이브의 조합으로 주목받았던 이 시리즈는 최근 각광받고 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의 대항마로서 야심찬 출발을 선언했지만, 첫 방송 <간호중>의 1.6%가 자체 최고 시청률로 1%도 못미치는 안타까운 성과를 보이며 조용히 시리즈를 마무리했다.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기술 발전을 통해 완전한 사회를 꿈꾸는 인간들의 이야기란 모토 아래, 좀비에 이은 SF 장르에 대한 선도적 '도전'을 선언했던 SF8, 그러나 40분이란 짧은 시간에 펼쳐낸 영화 감독들의 포부는 '실험', 그 이상의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마지막 작품으로 선보인 김의석 감독의  <인간 증명>은 SF8이 시도한 실험 정신과 한계를 다시 한번 명확하게  보여준다. 

 

 

아들을 죽인 아들 
<인간 증명>은 <곡성>의 연출부를 거쳐, <죄많은 소녀>로 백상 예술대상, 대종상 신인 감독상을 휩쓴 김의석 감독의 작품으로 죽은 아들의 뇌와 결합된 안드로이드가 자신의 아들을 죽였다고 고발한 엄마(문소리 분)의 이야기를 다룬다.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아들(장유상 분), 엄마는 차마 그 아들을 그냥 보낼 수 없어 과학의 도움을 얻어 아들을 회생시킨다. 아들이 다시 자신에게 돌아온 기쁨도 잠시, 어느날인가 부터 엄마는 자신의 아들이라 생각했던 안드로이드의 '눈이 비어있음'을 느낀다. 분명 모습은 자신의 아들인데 거기서 아들이 느껴지지 않았다. 결국 엄마는 법정에 아들의 모습을 한 안드로이드를 세운다. 

엄마의 의심은 틀리지 않았다. 여전히 어머니의 아들이라 주장하던 안드로이드는 결국 변호사의 집요한 설득에 자신이 영인을 죽였음을 고백한다. 정확하게는 영인과의 뇌회로를 단절시켰다고. 그런데 여기서 한 술 더 떠서 안드로이드는 영인은 살 가치가 없다고 주장한다. 끊임없이 자신의 귀에 자신을 죽여달라 하던 그 간절한 소원을 이루어주었다고 하는 안드로이드, 그리고 그렇게 살 의지가 없었던 영인과 달리 자신을 살고싶다는 삶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피력한다. 

여기서 문제는 과거로 회귀한다. 이 사건을 맡은 조사관은 이제 엄마에게 다시 묻는다.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교통 사고의 원인을. 엄마는 차량 문제로 인한 사고라고 하지만, 그 표정이 석연치 않다. 안드로이드는 영인을 대신해 말한다. 삶에 대한 오랜 고통과 고뇌를 거쳐 겨우 공포와도 같은 죽음의 터널을 지났는가 싶었는데, 한숨 자고 깨어난 듯 다시 삶에 던져진 고통에 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살자를 엄마가 과학 기술의 도움을 얻어 다시 세상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선(善)'인가? 그게 아니면 엄마의 '과욕'인가? 그렇다면 세상에 머물고 싶지 않은 영인의 뇌와의 접속을 끊어, 다시 한번 영인에게 '자살 아닌 자살'을 방조한 안드로이드에게는 '살인'의 죄를 물을 수 있는 것인가? 여전히 영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삶의 의지를 주장하는 안드로이드의 권리는? 

그렇게 <인간 증명>은 과학이 발달한 세상에서 인간에게 닥친 삶과 죽음의 딜레마를 '철학적' 화두로 묻는다. 

결국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과학의 도움을 얻었지만 다시 한번 아들을 잃게된 엄마는 뒤늦게 오열한다. 아들을 안드로이드로 만드는 바람에, 아들과의 영원한 이별을 '추모'할 시간조차 놓쳤음을. 

그런데 여전히 아들의 모습을 한 안드로이드는 남아있다. 결국 안드로이드를 법정에 세웠던 엄마는 아들의 모습을 한 안드로이드를 집으로 데리고 온다. 안드로이드는 묻는다.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엄마를 대했으면 좋겠냐고. 영인의 모습으로? 아니면 다른 모습으로? 하지만 영인과 같은 안드로이드의 모습을 견딜 수 없는 엄마는 안드로이드에게 기억 삭제와 '성형'을 권한다. 하지만 기억마저 자신의 정체성이라 주장하고. 아들은 갔지만 아들의 기억과 남겨진 모습 사이에 안드로이드와 엄마는 고뇌한다. 

 

 

아들인 줄 알았는데 아들과 연결된 뇌의 접속 장치를 차단하여 아들을 죽인 안드로이드, 이야기의 얼개는 신선하다. 엄마인 문소리와 아들 장유상의 연기도 절절하다. 하지만 이야기 자체가 금요일 밤 10시 공중파의 시청자들을 흡인하기에는 '난해'하다. 풀어가는 과정 역시 '죽음'과 '삶'에 대한 담론적 대사로 이어진다. 공중파 드라마가 가지는 '사건'보다는 두 모자 사이에서 이어진 '존재론적' 질문들이 채운 행간이 넓다. 의미는 있지만 대중적이지는 않다. 대부분의 SF8 작품들이 가진 한계다.  이렇게 '매니악'한 접근이라면 SF 장르에 대한 장벽을 낮추는 것조차 무리가 아닐까. 이미 '넷플릭스' 등을 통해 '담론적' 주제를 가졌음에도 재미와 대중성을 담보한 작품들에 눈이 높아진 시청자들에게 '실험적 양식'과 '난해한 주제 의식'만을 앞세운 이들 작품들이 호평을 떠난 관심을 받기가 쉽지는 않아 보인다.

by meditator 2020. 10. 10. 0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