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 내려온다. 범 내려온다.
장림깊은 골로 대한 짐승이 내려온다.
몸은 얼숭덜숭 꼬리는 잔뜩 한 발이 넘고 
누에 머리 흔들며 전동같은 앞다리.....'


<수궁가>가 토끼가 별주부 거북이의 꾐에 넘어가 용왕 전에 불려갔다가 꾀를 내어 도망친 이야기를 판소리로 풀어낸 것이라는 건 웬만한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알 터이다. 하지만, 그 <수궁가> 중에 저런 '범 내려온다. 범 내려온다'라는 내용의 판소리 곡이 있던 걸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극장에서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하는 '광고' 시간은 눈에 보이지니 보지만 보고 싶지 않은 강제 영상 시청의 시간이다. 그 15분 여의 시간 동안 눈이 번쩍 띄여지게 만드는 광고 한 편이 등장했다. 갓을 썼지만 한복은 아니고, 한복같은 색감인데 양복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우리 나라의 곳곳을 종횡무진 '춤'바람을 내는데, 거기서 나오는 음악이 귀에 쏙 들어온다. '범 내려온다~, 범 내려온다~.'

 

 

힙한 판소리 
바로 한국 관광 공사의 홍보 영상이다. 35개국의 사람들, 조회수 3억을 돌파했다는 1분여의 짧은 영상에서 춤꾼들의 춤사위에 배경이 되는 음악, <범내려온다>는 얼터너티브 밴드 이날치가 <수궁가>의 한 부분을 재구성한 것이다. 11월 22일 sbs스페셜은 요즘 뜨는 판소리 밴드 이날치를 조명한다. 수궁가의 전편은 재구성하여 원곡과 이날치의 트렌디한 음악을 대비하며 판소리 밴드로서의 이날치의 음악적 성취와 의의를 짚어보고자 한다. 

'1일 1범'이라는 유행어가 만들어 질 정도로 중독성 있는 음악으로 '무한 재생'을 부르는 밴드 이날치의 음악, 그저 판소리라 하기엔 비트가 빠른 가사는 판소리 장단에 맞춰 듣는 이의 어깨를 절로 들썩이게 만든다. 

이런 '이날치'의 힙한 판소리 음악에 대해 전문가들은 미국 힙합과 붙여놔도 전혀 이질감이 없는 '힙한' 음악이라 평가하는가 하면, 중독성 있는 '범 내려온다'의 반복 구는 소녀시대의 gee gee gee gee 만큼이나 트렌드하다 정의내린다. 

이런 대중과 전문가 모두의 '찬사'와 열띤 호응을 받고 있는 이날치, 하지만 그들의 오늘은 그저 어느날 눈을 떠보니 '스타'가 되었다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사람들이 춤출수 있는 재밌는 음악을 해보자고 모인 사람들, 그리고 전통 음악을 통해 대중과 호흡하고 싶었던 이들의 조합 , 베이스 장영규, 정중엽, 드럼 이철희, 보컬 안이호, 권송희, 이나래, 신유진 이들의 음악 경력을 합치면 100년이 넘을 정도의 내공의 산물이 바로 이날치 신드롬의 이유이다. 

 

 

모두 합쳐 100년이 넘는 음악적 내공 
<전우치>, <타짜>, <좋은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그리고 최근 <보건교사 안은영> 등 100 편이 넘는 영화 음악을 비롯하여, 연극, 무용, 광고까지 종횡무진, '소리의 해체와 조립에 능한 전무후무한 뮤지션'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장영규가 바로 이날치의 프로듀서이자 베이시스트이다.

그에게 판소리 밴드는 처음이 아니다. 이미 지난 2017년 미국의 명망있는 음악 프로 타이니 데스크를 통해 소개된 바 있는 <씽씽>을 통해 '판소리와 밴드의 결합을 시도한 바 있는 장영규는 김광석의 드러머였던 이철희와 <장기하와 얼굴들>에서 베이스를 맡았던 정중업과 함께 이날치의 기초 공사와 같은 음악 작업을 하고 있다. 기존에 판소리의 장단을 맡던 '고수'의 역할,  기존 밴드의 기타를 제외하고 두 개의 베이스와 드럼만으로 판소리가 가진 문학적 매력을 한껏 살려내고자 했던 장영규의 시도는 '춤추고 싶게 만드는 세련되고 독특한 리듬'이란 평가를 통해 성공을 거두고 있는 중이다. 

보컬의 면면도 만만치 않다. 이나래 27년, 권송희 27년, 신유진 16년, 안이호 25년, 인생의 반 이상을 소리꾼으로 살아온 사람들이다. 쉴틈 없이 공연을 하는 와중에 판소리의 본향 전주에서 4시간에 이르는 <적벽가> 완창에 도전하는 안이호, 변강쇠 전을 옹녀의 시선으로 해석하여 공연한 바 있는 이나래 등은 수궁가를 바탕으로 한 음악극 <드라곤 킹>을 통해 만나 이날치의 멤버로 거듭나게 되었다. 

소리꾼으로서의 정체성에 있어 한 치도 흔들림이 없는 네 사람의 보컬, 하지만 동시에 예술가로서의 자기 확장과 정체성, 전통 음악의 한계에 도전하고픈 열망이 그들을 얼터너티브 이날치의 멘버가 되게 하였다. 물론 이날치가 처음은 아니다. 이미 전통 음악의 편견을 깨기 위해 전통 악기와 서양 악기의 조합을 시도한 롹밴드 장비나이 등이 두 문화의 콜라보를 시도한 바 있다. 장비나이가 처음 두 문화의 조합을 시도했을 때만 해도 국악계에서 시선이 곱지 않았었지만, 이제 이날치에 대한 열광적인 반응에 보컬 들의 스승들은 기꺼이 이날치의 음악을 통한 판소리에 대한 관심을 반긴다. 

듣는 이들에게는 '힙하디 힙한' 음악이지만, 이날치 밴드는 '판소리 가사도 그대로, 사설도 그대로'의 원형을 지키고자 한다. 단지 리듬를 변화시키고 듣기 좋게 가사를 재구성했을 뿐이라고 자신들의 작업에 겸손을 표한다. 하지만 공연장을 가득찬 팬들, 그들의 음악에 절로 어깨춤을 추는 관객들에, 나아가 알아듣지 못해도 이미 '아름답지만 낯설다'며 특별한 팝으로 해외 음악 팬들에게서도 열광적인 반응을 얻고 있는 중이다. 

by meditator 2020. 11. 23. 0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