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 새삼스럽지도 않은 사회적 문제다. 얼마전 유명을 달리한 두 명의 젊은 여성 연예인들, 그들의 죽음에는 예외없이 '악플'의 책임이 대두됐다. 하지만, 그들에게 쏟아부어진 악플은 무수하되, 정작 그 죽음에 책임감을 느낄 당사자들은 드러나지 않는다. 

악플은 마치 독버섯처럼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나가고 있다. 이가온, 아직 미성년자인 앳된 시골 학교를 다니는 고등학생이다. 하지만, 가온이와 엄마가 보낸 지난 몇 달은 지옥과도 같았다. 시간만 나면 핸드폰을 들여다 보는 가온이, 핸드폰 중독? 아니다. 끊임없이 자신의 이름을 검색해서 혹시나 자신에 대한 악플이 달려있을까 노심초사 찾아보고 있는 중이다. 

그 시작은 한 방송국에서 매주 방영되고 있는 프로그램의 출연에서 부터였다. 작은 시골학교, 골든벨을 울릴것이라고 예측된 3학년 선배를 제치고 1학년 가온이가 124대 골든벨의 주인공이 되었다. 당연히 축하받아야 할 일, 하지만 가온이의 방송 출연분이 캡춰되어 인터넷 공간에서 돌아다니게 되자, 특정 사이트에서는 가온이의 외모를 평가하고, 거기서 더 나아가 성희롱성 댓글이 달리고, 사상 검증까지 이뤄졌다. 결국 가온이 모녀는 이에 대해 법적인 해결을 모색했는데 그 과정에서 수집된 악플만 550여개, 본인이 직접 증거를 수집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악플을 직접 읽을 수 밖에 없었던 가온이와 엄마는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이제 가온이는 밤에 자면서도 자신에게 달린 악플에 시달린다. 엄마는 차라리 시간을 돌려 그 방송에 출연시키지 말 걸 그랬다고 후회한다. 지워져도 자신의 머릿속에 남긴 악플로 인해 괴로울 것이라는 가온이, 이렇게 악플은 그 누구라도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벌금, 구속으로도 악플은 멈춰지지 않았다
베이비복스라는 그룹 시절부터 악플에 시달려 왔던 배우 심은진 씨, 3년전부터는 자신의 sns를 도배하는 한 사람의 지독한 악플로 고통받고 있다. 무려 그 한 사람이 단 악플만 1000 개, 

거듭된 고소로 벌금형은 물론 구속으로 이어진 상황에서도 악플은 멈춰지지 않았다, 심지어 고소 과정에서 심은진씨와 만난 악플러는 마치 아는 언니에게 인사하듯 '언니, 안녕'하며 손을 흔들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고 한다. 어렵게 만난 악플러의 어머니는 외려 구속시켜줘서 고맙다고 할 정도로 강박증이 심해진 상황이라 사과는 언감생심이다. 

원종환 씨의 경우 벌금을 문 악플러가 당당하게 공연 앞자리를 차지하고 그의 공연을 봤다고 한다. 이미 벌금을 물었기에 그동안의 죄가 없어졌다고 생각한다고, 차단을 하면 다시 계정을 만들어 악플을 다는 이들로 인해 당하는 연예인들의 고통은 쉬이 끝나지 않는다. 

한 아이돌 가수에게 지속적으로 악플을 다는 사람을 추적해 보니 40대의 고시생이었다. 사법 고시를 준비하다 겪은 사회적 좌절을 악플을 달아왔던 그는 특정 연예인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에게 자신의 화풀이를 해왔던 것. 

이렇게 한 사람, 혹은 특정의 몇몇에게 '강박증'처럼 댓글을 다는 병적인 악플러들도 문제이지만, 자신이 댓글을 단 것조차 기억을 못하는 다수의 악플러들이 있다는 존재한다는 것이다. 막상 인터넷 상에서 악플을 달던 악플러를 찾아 연락을 하면 대부분 자신이 그런 댓글을 단 것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멀쩡한 목소리로, '제가 쓴 건가요?'라고 반문하는 사람들, '개그로 적은 건데, 별 의도가 없었어요', 라던가, ' 그 글이 문제가 되는 건가요?'라며 문제 의식조차 느끼지 못한 채 댓글을 다는 다수의 악플러가 현재의 '악플 사회'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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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플러를 초대합니다
그래서 sbs스페셜은 악플러에 대해 보다 잘 알기 위해 '악플러를 초대'했다. 하지만, 제작진의 거듭된 청에도 불구하고 매번 악플러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드디어 세 번째 어렵사리 마련된 '악플러의 밤', 악플로 인해 고통을 받아왔던 김정민과 김장훈이 호스트가 되어 세 명의 악플러를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 

자신들이 이상 심리를 가진 사람이나 악마 본성을 가진 사람이 아니며, 그저 너무도 평화로운 세상 무료할 때 배설하는 기분으로 악플을 단다고 하는 최민지(가명), 자신의 악플에 수 백명이 추천을 할 때 희열을 느낀다는, 그래서 당연히 선플도 달아왔다는 레이용(가명), 연예인의 가식적인 모습을 못견뎌 악플을 단다는 니즈(가명)까지 다양한 악플의 이유가 등장했다. 

인간의 사냥 본능에서 부터 친구에세 카톡을 보내는 식이라던가, 재미라는 식으로 자신들의 악플을 설명하는 악플러들에게는 공통적으로 자신들의 행동이 범죄라는 인식이 없다. 전문가들은 이상 심리를 가지거나 강박증적으로 악플을 다는 몇몇 집요한 악플러도 문제지만 바로 이렇게 그 누군가의 악플에 감정적으로 휩쓸려 자신들의 공격성을 토해놓는 80%의 악플러가 오늘의 악플 세상을 만든다고 진단한다. 

그렇다면 어렵사리 악플러를 초대한 '악플러의 밤'의 결말은 어땠을까?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호스트 김정민과 김장훈, 김정민에게 악플을 달던 니즈는 알고보니 김정민이 가식적인 연예인이 아니라 여리고 상처받기 쉬운 사람인 줄 알았다며 화해의 포옹까지 나누며 화기애애한 마무리를 했다. 

악플러와의 포옹, 그러면 됐을까? 이야기 과정에서도 나왔지만 겨우 세 명, 그것도 몇 번의 초대가 무산된 가운데 등장한 세 명의 악플러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자화자찬할 수 있을까? 

악플러들조차도 코웃음치는 '선플 달기' 캠페인보다는, 대화 중간 지속적으로 김장훈이 언급한 '시스템'의 문제이야말로 사실은 프로그램이 간과한 결론이 아니었을까? 똑같은 '인간'이라는 종을 놓고 어떤 철학자는 '성선설'을 또 다른 철학자는 '성악설'을 놓한 건, 결국 인간이 본래 어떤 존재인 것이 아니라, 어떤 시스템과 어떤 조건에 놓여 있는가에 따라 '인간성이 다르게 발현될 수 있는 존재란 의미이다. 

그런 의미에서 악플러의 밤에서도 등장했지만, 마치 악플을 도발하는 듯한 기사들은 그 자체가 '만인 대 만인의 투쟁'판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제기되고 있는 것처럼 아예 '댓글'을 쓰지 않는 것이야 말로 '답정너'아닐까. 추천이나 좋아요가 없다면 어떨까? 어쩌면 답은 나와있을 지도 모른다. 그 답을 굳이 겉훑기 식으로 한번 언급하고, 김정민과 악플러의 급 화해 모드로 마무리된 <악플러의 밤>은 그저 이슈가 되니 한번 다뤄보자는 요식 행위를 넘어서기가 힘들어 보인다. 악플은 나날이 심해지지만 한편에서 조장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방기하는 현재의 시스템에서 악플은 결코 종식될 수 없을 것이다. 



by meditator 2019. 12. 16. 1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