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거리에서 외로 돌아들어가야 한다. 집앞에는 센서가 켜지지만 그 센서가 켜질 때까지 다만 몇 미터의 거리는 늘 어둡다. 늦은 밤 집으로 들어가는 길목, 그날따라 방심했던 나는 어두운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있던 '남자'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남자'도 나를 보고 놀란 듯 계면쩍은 미소를 지었지만, 그 '미소'는 언제라도 다른 의미로 변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후론 늦은 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언제나 핸드폰의 손전등을 밝히고, 시끄러운 벨소리가 울리는 앱을 준비하곤 한다. '성적 정체성'을 운운하기에도 민망한 나이가 된 이즈음도 여전히 이런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약자'의 본능이 드러난다. 왜냐하면 지난 세월동안 '여성'으로서 학습되어온 '본능적 두려움' 때문이다.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분출된 여성들의 분노, 그 이유는?
6월 7일 <pd 수첩>은 5월 19일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 수면 위로 올라온 '여성 혐오' 문제를 다룬다. 살인 사건을 계기로 '강남역'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를 조명한 다큐는 강남역 10번 출구를 가득 메운 포스트 잇에 드러난 '여성들의 공포'를 통해, 이 일련의 현상이 '여성 혐오'냐 아니냐가 아니라, 왜 이런 사건을 계기로 여성들이 집단적으로 반응을 보이는가의 문제에 집중하고자 한다. 즉, 강남역에서 죽어간 그 여성이 특별한 '그녀'가 아니라, 우리 사회 여성 그 '모두'가 될 수 있다는데서 오는 '공포'와 '분노'라는 점에 촛점을 맞춘다. 



최근 우리 사회에는 페미사이드(femicide; 여성 살해) 유형의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고 다큐는 밝힌다. 그리고 그 전형적인 예로 부산 도심에서 벌어진 묻지마 폭행을 전형적인 예로 제시한다. 조현병으로 인한 장애 3급의 남성 부산 도심에서 거리의 가로수 지지대를 뽑아 거리를 가는 노년의 여성과 20대 여성을 무차별 폭행한 사건이다. 실제 범죄자 분포수를 보면 정신 장애를 가진 범죄자는 2.6%에 불과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은 병으로 인해 자아가 취약하고 그로 인해 사회적 편견이나 관습에 취약, 쉽게 그런 인식들을 내재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즉, '당연히 맞을 짓을 한거지', '자업자득'이라는 부산 도심 폭행범이나, '여성들이 자신의 삶에 장애가 되었다'는 강남역 살인 사건 가해자의 의식은 우리 사회가 가진 여성에 대한 차별적 인식을 내재화한 전형적 예로, 이들의 망상은 '사회적 맥락'을 가진다고 밝힌다. 

우리 나라는 세계적으로 치안이 잘 구비되어 있는 국가에 속한다. 하지만 여성의 입장이 되면 그 양상은 달라진다. 강력 범죄를 저지르는 95%이상이 남성인 반면, 피해자의 84.7%가 여성이라는 통계는 여성이 얼마나 범죄에 취약한가를 드러낸다. 더구나 최근 해를 거듭할 수록 여성 범죄에 대한 불안감은 늘어나, 2014년에 이르면 70%에 육박한다. 그리고 그 불안감은 일상적이다. 여성 폭력 범죄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락산' 등산로에서 발생산 살인사건처럼 범죄가 발생되는 장소가 삶의 근거지나, 길거리, 그리고 일상적으로 방문하는 장소등이어서 여성들의 공포는 커진다. 

범죄심리학자들은 말한다. 남성들이 공감할 수 없는 여성들이 느끼는 공포의 근원은 남성과 여성이 일대일로 맞섰을 때 여성이 느끼는 신체적 불리함에 근본적으로 기인한다고. 또한 성폭행이라는 또 하나의 요소가 여성들을 수세적으로 만든다고 덧붙인다. 

하지만 이런 신체적 불리함을 넘어, 우리 사회에서 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여성에게 폭력을 가해도 우리나라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이수정 경기대 범죄 심리학과 교수)라는 문화라는 것을 다큐는 짚는다. 즉, '한 남자가 아내를 죽이면 살인이라고 부르지만, 충분히 많은 수가 같은 행동을 하면 생활 방식이라고 부른다'(단편<체체파리의 비법 > 중)는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표현처럼. 

거기엔 사회가 불안해지면 사회적 약자가 더 약자에게 불안을 투사하는 사회적 심리가 현재 한국 사회에서 이런 범죄로 야기된다고 덧붙인다. 즉 우리 사회는 여전히, 아니 오히려 이 사건을 통해 드러났을 뿐 성별이 불평등하고, 인종차별적이며, 성소수자에게 '관용'이라고는 없는 '차별 사회'라는 것이다. 

여성 혐오 범죄? 사회적 가치를 도발한 테러로 간주해야 
이에 범죄학자는 여성을 대상으로 백주대낮에 벌어지는 이러한 일련의 '여성 혐오성' 범죄들을 그저 대상이 '여성'이라는 특수한 범죄로 국한시킬 것이 아니라, 공동의 가치관을 가진 우리 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도발한 '테러'로 여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강력하게 일벌백계를 해야할 뿐만 아니라, 사회로 부터 완전격리를 시키는 등 범죄에 대한 경고를 확실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같은 성범죄에 대해 미국에 비해 우리나라의 처벌은 너무 가볍다는 것이다. 이는 그저 범죄의 처벌 방식이 아니라, 그 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다큐는 짚는다. 뿐만 아니라, 훈방 등으로 풀려난 가벼운 경범죄자에 대한 사회 복귀, 융화 프로그램도 철저히 실행하여 재범을 방지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최근 벌어진 신안군 성폭력 사건의 범인이 알고보니 대전에서 같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었듯이, '사후 약방문'의 현 범죄 예방 프로그램의 허상을 놓치지 않는다. 



그에 따라 수요자 중심의 치안 활동이라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요망된다고 다큐는 나아간다. 2013년부터 실시된 여성 안심 귀가길 프로젝트는 실제 위기 대응에 있어 취약한 점을 밝히고, 그저 cctv 설치나, 남녀 화장실 분리 등 물리적 해결만으로 이런 구조적 성차별이 해결될 수 없음을 주장한다. 다큐가 결론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 뿌리깊은 성차별을 해소할 '차별 금지법'이다. 이미 선진 각국에서 통과된 이 차별 금지법이 번번히 국회라는 문턱을 넘지 못한 채 보수 기독교 단체의 반대에 따라 2013년 또 다시 철회된 현실은 곧 우리 사회 차별적 문화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성폭력으로 죽어간 여성을 위해 이탈리아 사람들은 붉은 천 달기 운동을 벌였지만, 자신들이 느끼는 공포를 드러낸 대한민국의 강남역 추모 물결은 '여혐'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괴리는 곧 한국 양성 평등의 위치를 드러낸다. 

그래서 여성은 물론, 사회적 약자 전반을 보호할 수 있는 '합리적인 이유없는 차별을 금지, 예방하고 불합리한 차별로 인한 피해를 구제하기 위한' 기본법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한 채 계류중인 이 법안의 통과는 우리 사회 양성 평등 문화의 제도적 안착을 위한 첫 삽이 된다고 다큐는 말한다. 또한 계류 중인 스토킹 방지법 역시 서둘러 통과되어야 한다고 덧붙인다.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숱한 미디어는 저마다 목소리를 높여 이 사건과 관련된 입장을 밝히고 그 맥락을 분석하고자 한다. 6월 7일 <pd수첩>이 주목할 만한 것은 이런 일련의 흐름을 시의적절하게 반영하고, 그런 현상을 그저 '여혐이냐 아니냐' 논란을 넘어, 우리 사회에 잠재된 불평등 문화와 제도라는 관점에서 접근했다는 점에서 신선했다. '차별 금지법'과 스토킹 방지법'이라는 충분히 제도적으로 불평등을 보완할 수 있는 법에 대한 제고를 결론으로 냈다는 점에서 백가쟁명식의 토론에서 한 발 나선 모습으로 보인다. 또한,언제나 사건이 일어나면 가쉽성으로 사건을 부풀리는  '만취녀, 부킹녀' 등 언론들의 피해자 귀책 프레임에 대한 언론의 자기 반성도 놓치지 않는다. 

by meditator 2016. 6. 8. 1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