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 개론>으로 시작되었던 90년대 열풍이, <응답하라> 시리즈로 만개하더니, <무한도전 토요일토요일은 즐거워9이하 토토즐)>로 대미를 장식하였다. 그 시대를 살아왔던 사람들은 <무한도전>에 등장한 그 시대의 가수들을 보며 함께 웃고 노래 부르고 춤을 추며, 그 시대를 추억하였다. 그리고 그 추억의 잔향은 깊었다. <무한도전 토토즐>이후 많은 사람들이, 그날의 충격을 되새김질했고, 짚어보려고 하였다. 4월20일 방영된 <mbc다큐스페셜-90년대와의 인터뷰> 역시 그 일환이다. 




X세대라 칭해졌던 90년대의 문화 
시작은 역시 <무한도전 토토즐>이다. 방송에 등장하지 않았던 90년대의 대표적 가수 김원준을 시작으로, 90년대에 청춘이었던 만화가 김풍, 영화감독 장항준, 주부 박모아, 치킨집 사장 등을 통해 그 열풍의 근원을 추적해 본다. 
자신이 출연하지 않았음에도 몇 번을 돌려보았던 김원준, 방송을 보고 함께 춤을 추다, 공부만 하지 않았던 엄마의 과거를 들켜 무안했던 주부 박모아씨, 그리고 결국 관객석을 보고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는 김풍까지, <무한도전 토토즐>은 그들에게 '청춘'의 시절을 되살려 준다. 마치 영화<건축학 개론>에서 배우 이제훈이 귀에 이어폰을 꽂고 김동률의 '이제~'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노래를 듣는 순간, 함께 90년대의 그 시절의 감성으로 회귀하듯이, 그렇게 <무한도전 토토즐>에 등장한 이제는 나이든 가수들이 한참 활동하던 자신들의 젊은 시절에 대해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를 한다. 

그렇다면 이들이 열광했던 90년대의 그 시대는 어떤 것이었을까? 90년대 열풍에서 한 발 더나아가, 다큐는 그 시대를 규명한다. 
이른바 'X세대'라 불리웠던, 최초로 세대명을 부여받았던 , 하지만 그 다양성과 자유분방함으로 정의내릴 수 없는 정체성을 가진 X세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가방을 사도 'X제너레이션'이라고 새겨져 있던 시대, 90년대의 청춘들은 그들이 원하는 삶을 살고자 분출했다. 이에 대해, 그 세대 김풍은, 즐겁고 재밌는 것을 위해 심취하고 파고들었던, 그래서 가볍지만은 않았던 세대'라고 정의내리고, 우석훈 교수는 '자기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았던 현대적 세대'라 정의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 있었던 X세대는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을까? 그 시대적 배경을 짚어본다. 바로 거기에는 IMF이전까지 마지막 황금기를 누리던 한국 경제가 있었다. 장항준의 말대로, 꿈을 꾸기 위해 살았던, 대학을 나와도 어떻게든 취직이 되든, 다른 것을 하든, 먹고 살 걱정은 하지 않았던 경제적 풍요를 자신의 꿈과 즐거움으로 환원할 수 있었던 세대의 경제적 배경을 짚어본다. 또한 그 꿈은 당시 '벤처 사업' 등으로 구체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 '삐삐'에서 'PC통신'을 거친, 아나로그와 디지털의 두 문화 사이에서, 90년대의 X세대들은 급격하게 변화하는 문화 지형에서, 각자의 꿈을 현실화시켜 나가고자 하였고, 그것이 가능한 시대였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면에, 우리가 간과한 역사의 비극도 있다는 사실을 다큐는 놓치지 않는다. 진압하는 경찰에 의해 죽임을 당한 강경대 군의 치사 사건이 있었고, 그에 대한 극렬한 시위 과정에서, 학생 운동의 고립화도 함께 진행되고 있었다. 개성을 중시하고, 자아를 존중하는 X세대에게 더 이상 공동의 적을 향해 일사불란하게 싸워나가자는 구호는 공허했다. 광장에서 함께 어깨를 겯고 노래를 부르는 대신, 화려한 조명이 켜진 노래방에서 절규하듯 독창을 했고, 사회적 메시지가 담긴 노래 운동패의 노래를 '음악'으로 환호했다. 

화려한 시절 이후 X세대의 삶은?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우리 사회를 강타한 IMF와 함께 한국 사회의 풍요도, 90년대의 화려한 문화도, 그리고 X세대의 자유도 함께 마무리되었다.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삼풍 백화점이 주저앉듯이 잘 나가던 한국 경제가 브레이크가 걸리고, 그 경제의 융성을 즐기던 세대도 함께 무너져갔다. 90년대의 대표적 가수였던 김원준은 자신의 쇠퇴기와 함께 하던 한국 사회의 몰락을 지켜보았고, 한때 잘 나가던 벤처 사업가는 이제 치킨집 사장이 되었다. 

그래서 <90년대와의 인터뷰>는 말한다. 성수대교가 무너지듯 스스로 주저앉아버린 IMF이후의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90년대 세대에 대해, 그들은 그 이전 6,70년대를 경제 성장을 위해 희생한 어른들에, 7,80년대를 정치적 민주화를 위해 싸워왔던 선배들에, 그들에 비해 풍요로운 삶을 누렸지만, 그저 물질적 문화에 탐닉한 측면이 있었다고. 부식되어가는 한국 사회에 눈을 돌리지 않고, 자신들에게 던져진 풍요를 즐기다, 함께 직격탄을 맞았다고 아쉬워한다. 

그렇다면, 이제 와 다시 언급되고 복기되고 있는 X세대가 현재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저 <무한도전 토토즐>을 함께 즐기는 것으로, 그리고 이후 그 명칭에서부터 말썽을 빚은 <토토즐> 콘서트를 보러 가면 되는 것일까?



<90년대와의 인터뷰>는 단지 그 시대를 진단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았다. 현재를 사는 그 세대와, 그 가능성, 한계를 짚어보고자 하는데서, 이 기획의 의미가 있다. 
그러기 위해 마흔 줄이 된 X세대는 어떻게 살아가는 가를 살펴본다. <무한도전 토토즐>을 즐겁게 본 엄마는, 엄마도 공부만 하지 않았다는 것을 어린 아들에게 커밍아웃을 하고, 그녀가 다니는 댄스 동호회 사람들과 90년대 댄스 이벤트를 마련한다. 보고 즐기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스스로 SES가 돠어 몸을 흔든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불고 있는 이른바 '키덜트' 열풍의 주인공도 바로 나이든 'X세대'이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찾아서 즐겼던 그 X세대'의 정체성이, 나이가 들어서도 밤을 세워 레고를 조립하는 열정으로 유지된다.

그렇다면 이렇게 숨길 수 없는 그들의 X세대의 열정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에 대한 판단에서 의견이 갈린다. 회사를 그만 두고 아이들과 함께 제주로 내려가 집을 짓는 한 가족의 모습에서 보여지듯이, 장항준 감독은, 그 시대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을 위해 치달았던 열정이, 먹고 살기 위해 달려왔던 우리 사회에 먹고 사는 것만이 아닌 다른 의미를 생각해 보는 여유있는 삶을 생각해 볼 여지를 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반대의 의견도 있다. 90년대의 정치적 안정, 경제적 풍요를 누렸던 세대였기에, IMF이후 가장 큰 좌절감과, 무기력감, 그리고 그런 현실에 저항하는 세대가 바로 X세대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그들이, 풍요를 물질적으로 만끽하였기에, 또한 지극히 개인적으로 소비하였기에 그 한계를 뛰어넘기 힘들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역시나 동전의 양면과도 같이, 같은 현상을 보고 우석훈 교수는, 그들이 가졌던 문화적 다양성, 그리고 개성이, 획일화된 한국 사회를, 경제적 동물이 되어 뛰어 온 한국 사회의 유일한 가능성이라고 짚기도 한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90년대와의 인터뷰>는 그저 문화적 신드롬으로 등장한 우리 사회의 90년대 열풍을, 한 세대의 특성과, 삶으로 서사적으로 풀어가고 하는 성취를 보였다. 또한 그들이 가진 시대적 한계를 짚었고, 그 시대적 한계가 또 다른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저 90년대 자신만의 문화를 즐겼던 사람들이 아닌, 이제는 어엿한 한국 사회를 이끌어 갈 주역으로 자리매김한 90년대의 X세대에 대해 규명한 점, 그 역사적 사회적 존재를 드러내고자 한 점이 이 다큐의 가장 큰 성과다. 
by meditator 2015. 4. 21. 13: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