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광복절 특집 방송은 리우 올림픽덕분에 몇몇 다큐를 빼고는 그래도 구색맞추기라도 한 편씩은 있던 특집 드라마조차도 이젠 찾아볼 길 없다. 그나마 다큐도 kbs1이 공영방송으로서의 구색을 맞춰 다각도의 특집 다큐를 마련한 반면, mbc는 한 편으로 면피한 반면, 그나마 sbs는 광복절 경축식 외에는 별도로 마련된 프로그램을 찾아볼 수 없다. 한 연예인의 일본 전범기 관련 논란이 sns로 부터 시작하여 검색어 1위로 '광복절'의 해프닝을 톡톡히 벌인 반면, 정작 <비정상회담>에 출연했던 외국인 타일러도 '노는 날' 이상의 '자주적 권리와 자유를 되찾은' '광복절'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상황에서 정작 리우 올림픽 중계에 열을 올리는 방송은 면피용 다큐 외에는 이렇다 할 '광복'의 경축을 할애하지 않는다. 




광복절의 의미를 되새기는 다양한 다큐들 
그런 가운데에도 다큐는 묵묵히 맡은 바 소임을 다하여, 71주년 광복절에 기릴만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광복절 특집 다큐를 마련한 kbs1은 2부작으로 구한말 항일 운동의 선봉에 섰던 의병과 유학자들을 2부작으로 다루었다. 그 첫 번째 13일 방영된 <발굴 추적>은 106년만에 처음 공개되는 서구 결사록을 통해 서간도로 망명한 유학자들이 주축이 된 독립운동가들을 조명한다. 이어 15일에는 무장 항일 투쟁을 하다 사형당한 병법 전문가이자, 시인인 이강년 의병장의 생애를 다룬다. 그런가 하면, 오전 11시에는 여성 저격수 남지현 등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항일 투쟁의 흔적을 다룬 <독립군의 길을 가다, 1,129km의 기록>를 방영한다. 

이렇게 그간 알려지지 않았거나, 새롭게 조명되는 항일 독립 투쟁을 다룬 다큐들과 함께, 올해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일제에 의해 '경계인'의 삶을 강요받은 재일 동포 등의 삶을 다룬 다큐들이다. mbc는 광복절 특집 다큐로 <아버지와 나, 시베리아, 1945년>를 통해 일제에 의해 강제 징용된 젊은이들이 일본 패망이후 전쟁 포로로 넘겨져 소련 수용소에서 수용되었던 방기된 역사, 하지만 2003년 일본에 의해 보상 청구가 기각된 끝나지 않은 고통의 기록을 다룬다. kbs1은 8월 14일 <자이니치, 김수진 직진하다>를 통해 재일동포 2세의 삶을 다룬데 이어, 15일 당일에는 <kbs스페셜-빼앗긴 날들의 기억-가와사키 도라지 회>를 통해 재일동포 1세들의 현재를 기록한다. 일본의 우경화와 함께, 일본과의 외교적 관계가 경직되어 가는 시점에서, 일본에 의해 여전히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일본이 외면하고 하고 있는 역사의 상흔을 폭로하고자 하는 의도로 보인다. 

그 중에서도 15일 방영된 <kbs스페셜-빼앗긴 날들의 기억-가와사키 도라지회>는 주목할 만하다. <자이니치, 김수진 직진하다>가 경계인의 도전을 그렸다면, <빼앗긴 날들의 기억>은 일본 한 구석에서 조용히 쓸쓸하게 늙어가는 대신, 거리로 나와 자신의 삶에서 우러난 목소리를 높이는 재일동포 1세 할머니들의 삶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재일 동포 1세대 할머니들의 화양연화 
다큐의 시작은 지난 6월 가와사키 공원의 집회이다. 예정되었던 반한 헤이트 스피치(인종 차별 발언), 하지만 일본 각지에서 모여든 뜻있는 사람들의 반 헤이트 스피치로 인해 헤이트 스피치는 무산되었다. 그 반 헤이트 스피치 집회의 스타는 다름아닌, 올해 79살이 되신 조양엽 할머니였다. 노년의 재일동포 할머니가 반 헤이트 스피치 집회까지 나서서 '전쟁 반대'를 외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조양엽 할머니의 '전쟁 반대'는 그녀의 삶이 증명한다. 

가와사키는 한인들이 많이 모여사는 곳이다. 그중에서도 사쿠라모토는 대표적인 재일 한인촌이다. 그곳의 복지법인 세이큐사에는 매주 화요일 재일 한국인 할머니들이 모여든다. 일명 '도라지 회', 할머니들은 이곳에 모여 음식을 나누고, 함께 춤을 배우고, 글을 배우며 친목을 다져왔다. 한인들이 모여사는 곳에는 그들의 끈끈한 정에 기반한 여러 단체들이 있었지만, 이제 재일동포 1세들이 태반 세상을 뜨고, 그 2세들이 일본 사회에 '귀화'하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단체들이 사라졌다. 가와사키에 남아있는 건, 도라지 회가 거의 유일할 정도로. 도라지 회의 할머니들은 이제사 이곳에서 글을 배운다. 일본어도 배우고, 한글도 배우고, 그  어렵게 배운 글로, 할머니들은, 자신들이 살아오며 뼈저리게 느낀 바대로, '전쟁 반대' 피켓을 만들어 들고 거리로 나선다. 

할머니들의 삶은, 나라를 빼앗긴 자의 삶에, 가부장제 그늘에 갇힌 여성의 삶, 그리고 가난한 자의 고통이라는 삼중고로 점철된 생애였다. 낡을대로 낡은 저고리 뒤에 교통편을 적은 채, 홀홀단신 아버지를 찾아 일본으로 온 열 댓살 먹었던 아이, 아버지는 딸을 만난다는 기쁨에 항구로 나갔지만, 정작 거지꼴인 딸을 보고 통곡을 했다고 한다. 그런 식이다. 일본에 돈벌러 가서 소식없는 아버지를 찾아 어머니와 온 다섯살 배기 딸이라거나, 오빠 손에 이끌러 돈 벌러 온 열 두살 먹은 아이라던가, 할머니들의 일본 생활의 시작은 그랬다. 



그리고, 아버지가 새로 옷을 사입힌 소녀의 삶은 그렇다고 그 전과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남자들도 들어가기 꺼리는 탄광 일에서부터, 할머니들의 지난 세월은 가족을 지키고,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키우기 위해 안해보지 않은 일이 없을 정도였다. 아버지는 상급 학교를 진학하라 했지만 가난한 가정 형편에 꿈도 꾸기 힘들었던 소녀, 아니 일찌감치 돈을 벌러 나가다 보니, 일본어도, 한국어도 배우지 못했던 소녀들, 그녀들은 자식조차 떠나보내고, 홀로남은 이제서야 글을 배운다. 패망하기전 한인들을 그토록 혹독하게 일을 시켰던 일제는 정작, 패망 이후 한인들을 그들이 하던 일로부터 방출한다. 다니던 공장에서, 탄광에서 밀려난 한인들, 결국 가족들을 위해 일본인들이 안먹는 내장을 구워팔고, 밀주는 만들어 팔기 시작한 건, 역시나 여인들. 그렇게 할머니들은 '몇 번을 지더라도 녹슬지 않'는 저력으로 한인 사회의 견인차가 되어왔다. 

하지만, '녹슬지 않았지만' 자신들의 삶은 없었다. 누군가의 딸로, 누군가의 아내로, 누군가의 어미로, 정작 자신은 피어볼 새도 없이, 어느덧 허리가 굽었다. 다큐는, 도라지회의 활동을 통해 이제서야 '자신'의 이름을 쓰고, 자신을 찾아가며, 반헤이트 스피치에 나서서 자신의 살아온 삶의 이력에서 우러난 소신으로 '전쟁 반대'를 외치는 자기 주관을 가진 할머니들의 활동과 함께, 할머니들 각자의 인생 역정을 들려줌으로써, 할머니들의 삶과 그 주장의 울림을 깊게 한다. 그저, 살아온 이력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그녀들이 거리에 선 이유가 충분히 공감될 만큼. 쟁동포 2세가 경계인이라면, 1세대 할머니들은 몇 십년을 일본에서 살아, 이젠 한국말조차 서툴지만, 한글을 배워 자신을 확인하는 여전한 '고향'을 그리워하는 한국인들이었다. 

by meditator 2016. 8. 16. 06: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