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아이러니의 예술(이하 이창동)>이 EIDF2022 '클로즈업 아이콘' 편으로 방영되었다. '한 시대의 혹은 사회의 아이콘이 된 거장들을 마치 카메라로 클로즈업하듯 들여다보며, 이들이 어떠한 삶을 살았고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어떻게 기억하는지 주목하는' 클로즈업 아이콘, 알랭 마자르 감독은 이창동 감독의 최신작 <버닝>에서 시작하여 <시>, <밀양>, <오아시스>, <박하 사탕>, <초록 물고기>까지 그의 작품을 공간과 시간을 거슬러 오른다. 또한 거기서 더 나아가 영화 감독 이전 문학을 하던 이창동과 문학을 하기도 이전 어린 이창동의 시간을 주유하며 우리가 아는 이창동의 세계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최근 자신의 작품들을 리마스터링 하고 있다는 이창동 감독, 그와 함께 그의 지난 작품들을 복기하니 말 그대로 감회가 새롭다. 윤정희 배우가 알츠하이머에 걸린 할머니로 등장하는 2010년 작 <시>, 사춘기에 접어 든 손자와 함께 고단한 삶을 버텨가는 할머니는 '시'를 쓰고 싶어한다. 시창작 교실 선생님은 '일상 속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는 것이 시라 정의하시고, 하지만 할머니가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으려 애쓸수록 할머니의 손에 잡히는 건 '부조리한 삶'이다. 손주의 부도덕한 행위와 마주하게 된 할머니, 결국 할머니는 자신의 온몸을 던져 '시'를 완성한다. 

시를 쓰려다 '현실'의 암흑을 발견하고 자신을 던져 '진정성'을 구하려 했던  할머니의 모습에 문득 세월호 이후 분노하며 거리에 섰던  평범한 이웃들이 떠올랐다. 그렇듯 이창동 감독의 영화는 우리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화두를 담아낸다. 시를 쓰는 할머니를 통해 감독은 고통스럽고 부도덕한 현실에 대한 우리의 '자세'를 물었다.  2010년에 감독이 우리 사회에 던진 던진 질문에 2017년 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화답했다.  영화 <시>뿐만이 아니다. <초록 물고기>에서 <버닝>까지 그대로 우리의 지나온 시간이자, 삶이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그가 문화관광부 장관을 역임한 건 그런 시대 정신의 대변인으로써의 그의 역할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현대사의 대변인 이창동 
기자가 처음 이창동 감독을, 아니 이창동이란 사람을 알게 된 건 '문학 전집'을 통해서이다. 70년대 대표 작가들을 모아놓은 전집에서 이제는 기억조차 아련한 소설가 이창동의 작품을 만났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내내 감독이었지만 그의 영화는 '소설'처럼 읽힌다.  감독 이창동의 작품은 '문학작품'처럼 분명한 '플롯'과 '전개'를 가지고 관객에게 '열독'을 권한다. <밀양> 속 하늘도, 햇빛도 그 자체가 하나의 문장 속 지문처럼 읽혔다. 하루끼와 윌리엄 포크너의 만남같다는 <버닝>속 종수와 M을 감독의 설명이 그래서 대번에 이해되기도 한다. 

다큐는 이창동 감독과 함께 관객들을  작품의 배경이 된 그곳으로 다시 여행하게 만든다. 아이들이 다리 아래서 무심하게 놀고, 그 다리 아래 강물을 따라 내려오는 여학생의 시신, 느닷없이 보여진 범죄라는 감독의 설명을 배경으로 다시 한번 소환된 <시>속 소도시, <버닝> 속 답답하던 그 후암동 빌라, 빽빽하기도 하고, 비밀스럽기도 한 밀양이라는 특별한 하지만, 그 어디서도 만날 수 있는 세속적인 지방 소도시, 코끼리가 등장하는 환타지의 공간이 된 오래된 임대 아파트, 그때만 해도 참 시골스러웠던 <초록 물고기>의 배경 일산과 '암흑가'의 정의가 된 영등포 까지 우리 현대사의 '현장'을 '답사'하게 된다. 그리고 그 시간은 감독 이창동의 시간이지만, 그의 작품과 함께 시대를 읽고 고뇌했던 관객의 시간이기도 하다. 

 

 

'나 돌아갈래'라고 외치던 그 철교 위의 '영호', 그의 삶을 통해 우리는 1980년대를 '시인'했다. <초록물고기>를 통해 '자본주의화'되어온 사회의 그림자를 체감했다. 이창동 감독은 <밀양>을 빌어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밀양>이라는 작품 주제가 된 '용서'는 시내의 사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일본 제국주의, 6.25 전쟁, 군사 독재의 고통을 겪어낸 우리 현대사, 그 고통을 어떻게 용서해야 하는가라는 화두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고. 이 처럼 작품 속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 던져진 개인을 통해 우리 현대사가 짊어진 숙제를 직시한다. 

또한 다큐를 통해, 감독이기 이전 개인 이창동의 역사를 더듬어 간다. 최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화제가 되었지만, 이미 2002년 감독은 <오아시스>를 통해 '도전이자 실험'을 시도했다. 집 밖을 나가지 못하는 1급 뇌성마비 장애인인 여주인공, 영하 20도에 반팔을 입고 갓 출소한 종수라는 한 눈에 보기에도 전혀 믿음직스럽지 않은 남주인공을 만나 '소통'하고 '사랑'한다는 설정은 '화제'를 넘어 사회적 쟁의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사회적 담론을 넘어 다큐는 우리가 몰랐던 뇌성마비 누나를 둔, 그래서 그 누나를 지키려 애썼던 가난하고 말수적은 소년을 찾아낸다. 그의 고향 대구, 그리고 다니던 초등학교를 주유하며 장애인이었지만 똑똑하고 용감했던 한공주의 '의연함'의 근원을 헤아리게 된다. 그리고 그건 이창동의 개인사이지만, 그와 같은 또래의 가난하고 의지할 곳없이 그래서 잡초처럼 세상과 싸우며 시대를 헤쳐온 이들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명장'이라는 수식어를 넘어 현대사의 '산증인'이자, '증언자'로서 이창동을 발견하는 시간이다. 

또한 다큐는 그의 작품을 빛냈던 배우들을 소환한다. 어떤 여배우가 이 캐릭터를 맡을 수 있을까 '숙제'였다던 <오아시스>의 한공주, 하지만 문소리를 감독이 기대했던 이상의 한공주의 모습을 보여줘서 감탄했다는 감독의 후일담에 문소리의 소회가 얹힌다. 아이를 잃고, 신에 의탁하고 다시 신과 싸우는 버거운 임무에 도전하는 <밀양> 역의 시내를 맡은 전도연에게는 배우 스스로 느끼며 발현할 수 있도록 애썼다는 '설득'의 디렉션을 제시한다. 

이렇듯 이창동 감독의 작품은 작품 자체로도 뛰어나기도 하지만, <초록 물고기>의 한석규, <박하 사탕>의 설경구처럼 캐릭터로 우리에게 각인된 스타의 등용문이기도 하다. 다큐는 그런 그의 작품들을 통해 그 캐릭터로 기억된 배우들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로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듣는 귀중한 시간이 된다. 

다큐 <이창동>은 그래서 묘한 경험이 된다. 감독의 작품이 곧 '내가 살아온 시간', '우리가 살아온 시간'을 복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초록 물고기>로부터 <버닝>까지, 새삼 그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왔나 돌아보게 된다.  

by meditator 2022. 8. 30. 14: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