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고개를 수그린 채 그 어떤 자극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던 요양원의 치매 노인이 있다. 

그 분의 귀에 젊은 시절 그 분이 좋아했던 음악이 흐르자, 기적같은 일이 일어난다. 늘 수그려졌던 그의 고개가 들리고, 게슴츠레하던 그의 눈이 둥그레지고, 촛점없던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노인은 음악을 따라 부르고, 휠체어로 고정된 그의 몸조차, 리듬을 타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바로 <그 노래를 기억하세요?>가 일으킨 기적이다. 

지상파의 채널이 일주일 내내 다큐로만 채워진다? 이 불가사의한 일이 바로 우리나라에서, 2004년부터 벌어지고 있다. 바로 <ebs 국제 다큐 영화제>이다. 이제 열 한 번째를 맞이한 이 영화제에는 82개국 781편의 작품이 출품되었고, 그 중 23개국 50편이 상영된다. 개막 전 '이스라엘 특별전'을 준비했던 이 영화제는,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의 무차별 팔레스타인 공격으로 인해 난항을 겪었지만, 주최측이 특별전을 철회함으로써, 순조롭게 열리게 되었다. 하지만 영화제에 출품된 작품을 보기 이해 굳이 발품을 팔 필요는 없다. 8월 25일부터 31일까지 진행되는 이 영화제의 작품들은, 하루 평균 9시간 동안, ebs 채널을 통해 방영된다. 물론, tv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좀 더 큰 스크린으로 명작을 만나고 싶은 사람들은 ebs 스페이스, 상암 누리꿈 스퀘어, 상명 대학교, 서울 역사 박물관, 인디 스페이스, KU시네마 테크를 찾으면 된다. 

EIDF 2014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사건과 사고로 인해 다수의 사람들이 실의에 젖어있는 이즈음, 2014ebs국제 다큐 영화제는 올해의 주제로 '다큐, 희망을 말하다 hope lies within us'를 내걸었다. 작년의 주제가 진실로, 우리가 사는 세상의 참 모습을 찾아가려 했다면, 올해는 그 진실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힘든 세상에 한 줄기 빛을 전하고자 '희망'으로 주제가 선정되었다. 
그리고, 그 희망의 첫 걸음으로 선정된, 개막작은 2014년 미국 마이클 로사토 베넷의 <그 노래를 기억하세요>이다. 

<그 노래를 기억하세요>는 사회 복지사 댄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요양원에서 노인들을 만나고 다니는 댄은 감독에게 단 하루만 자신에게 시간을 줄 것을 요청한다. 그리고 감독은 그를 따가 라 요양원으로 카메라의 시선을 옮기고, 그 단 하루의 요청은, 결국 3년 여의 시간을 투여한, <그 노래를 기억하세요>로 완성된다.

기적은 말 그대로 기적이다. 하루 종일 그 어떤 반응을 보이지 않는 치매 노인, 침대에 묶인 채 식물인간처럼 천장만 바라보던 노인, 분노를 조절하지 못한 채 폭력적 반응을 보이던 노인, 그리고 알츠하이머를 앓으면서 삶을 상실해가던 노인들에게, 그들이 젊은 시절 즐겨들었던, 혹은 좋아하던 음악을 들려준다. 그러자, 기적처럼, 반응을 보이지 않던 노인들의 눈빛이 밝아지고, 노래를 흥얼거리고, 심지어 리듬을 타며 즐거워한다. 심지어, 회색으로 말라비틀어져 가던 노인들의 기억 속에서, 파릇하던 자신들의 이야기를 길어올린다. 

하지만, <그 노래를 기억하세요>는 사실 기적의 드라마가 아니다. 오히려, 오늘날 미국 사회가, 아니, 산업 사회 이후, 문명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노년의 삶에 대한 진지한 숙고이다. 
노인 빈곤율 세계 수위를 달리고 있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노년을 평온하게 경제적 고통없이 요양원에서 보낼 수 있는 미국 노인들의 삶은, 어쩌면 그 자체로도 환타지같은 이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경제적인 고통이 해소되었다고 그 나라 노년의 삶이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 노래를 기억하세요>는 요양원 체제로 구축된 미국의 노년을 들여다 본다. 산업 사회 이후, 다수의 노인들이, 부랑자와 함께 구빈원 등에서 노년의 삶을 마감하는 것을 막기위해 만들어 진것이 바로 오늘날 미국의 요양원 체제라는 것을 전제로 하며, 결국 오늘날 미국의 요양원 체제는, 당시의 구빈원과, 현재의 병원이 결합된 '삶'이 아니라, 마치 교도소와 같은, 감금과 통제, 투약의 시스템이라는 것을 밝힌다. 
<그 노래를 기억하세요>에 등장한 다수의 노인들은, 하루 아침에 자신이 살아왔던 삶을 상실한 채 요양원에 수용되어 죽을 날까지 주는 약만 받아먹으며 사는 삶에 대해 좌절하고 분노한다. 그리고 그 반응은 때로는 끊임없이 자유를 찾아 탈출구를 찾거나, 분노 조절이 안된 상태가 되거나, 그도 아니면 무반응으로 일관하는 자포자기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들을 '달래기 위해' 다국적 제약 회사를 등에 업은 요양원 체제는 '우울증' 등의 향정신성 약물을 남발한다. 

여기서 사회 복지사 댄이 들고 나온 음악은, 그저 음악이 아니다. 그들이 젊은 시절 즐겨 들었더 음악이어야 한다. 그 음악을 통해, 노인들은 자신들이 버리고 온, 아니 자신들에게 버리도록 강요된 삶의 활기를 되찾는다. 그래서, < 그 노래를 기억하세요>는 기적이 아니다. 오히려 미국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노년의 문제, 사회적으로 시스템화된 복지의 잔혹사, 복지의 이름을 빌린 인간 잔혹사의 고발이다. 그저 요양원에 쳐박아둔 채 죽음을 기다리는 노년을 당신도 원하는가 라는 질문이다. 

댄은 주장한다. 현재 미국 노년 복지 예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항 정신성 약품' 비용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노인들을 치매의 고통에서 구해낼 수 있다고. 하지만, 그런 그의 주장은, 일찌기, 요양원의 노인들에게 아이들과 동물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통해 노년의 행복을 되찾게 해줄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그저 작은 외침에 그치고 말았던 또 다른 노인 복지의 주장처럼, 쉽게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다. 편이를 위한, 혹은 이권을 통한 시스템은 강고하고, 그의 소리는 작다. 

2014 ebs 국제 다큐 영화제의 주제가 '희망'이듯, <그 노래를 기억하세요?>는 고발로, 좌절로 마무리되지 않는다. 댄의 좌절이후, 작은 희망의 움직임들이 시작된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성금으로, 몇몇 요양원에,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기들이 전달된다. 시스템의 변화는 아니지만, 사람들의 작은 희망이, 균열 사이에서 꽃을 피워내기 시작한 것이다. 


by meditator 2014. 8. 26. 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