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9일부터 30일까지, 그리고 4일 저녁에 거쳐 재방영된 <ebs다큐 프라임- 행복한 건축 3부작>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4일밤 방영된 <sbs스페셜-아파트 혼란의 시장>으로 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맞겠다. 대한민국의 주거비율, 단독 27.3%, 연립 12.6%. 아파트 59.6%이 시대, '집'에 사는 과반수 이상의 사람들이 '아파트'라는 곳에 사는 세상, 하지만 그런 '집'을 사는데 한 푼도 안 쓰고 평균 9년 5개월을 모아야 집을 살수 있는 세상, 그런 대한민국에서 '아파트'란 대명사로 지칭되는 '집'이란 <sbs스페셜>에서 보여지듯이 지금 아파트를 살 것인가 말 것인가로 귀결되는, 부동산의 물건으로 귀결되어 버린다. 즉, '집'을 소유한다는 것은 더 이상 우리 사회의 문화적 형태, 혹은 가족의 정체성을 짓뭉개버린 채 오로지 '돈'으로의 가치가 있느냐 여부가 그 모든 것을 짚어 삼켜버리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경제적 부'의 상징인 혹은 '부'의 뻥튀기가 되는 '집'을 소유하지 못하는 사람은 곧 '루저'가 되는 시대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런 시대에, '행복한 건축'이란 무엇일까? 총선 전에 건설사들이 어떻게든 사둔 땅을 털어버리려 마구잡이로 분양을 하고, 정부는 앞장 서서 그걸 부추키는 세상에, 건축을 통해 '행복'을 추구하다니, 그건 어떻게 사놓은 아파트 한 채가 일확천금이 되었던 우리 한강의 기적 세대 이후엔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행복한 건축이란 무엇일까?
그렇게 '건축'=환금성이 되는 세상에서, <행복한 건축>은 뭉근히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다. 1960년대 서울 시민 아파트가 건립되어, 1970년대 한강이 개발되어 건축이 돈이 되었던 세상에서 아파트 풀숲을 헤치고서야 겨우 찾아들어갈 수 있는 '학소도'로부터 다큐는 시작된다. 공무원이었던 아버지가 월급을 모아 하나둘씩 벽돌을 올렸던 집, 하지만 세월과 함께 버려지다시피 하여 외딴 범죄의 소굴이 될 뻔한 집, 그 집을 공부다 여행이다 하며 외국을 떠돌던 아들이 되찾는다. 그리고 아버지의 글씨로 쓴 '학소도(학이 머무는 섬)'이란 현판을 올리고, 어린 시절 추억을 고스란히 벽에 걸어놓고 그 멈춘 시간과 함께 아들이 아버지처럼 나이들어 간다. 그런가 하면 충남 공주에 역시나 버려질 뻔한 돌아가신 교우 할머니의 집이 할머니가 쓰시던 세간살이가 그대로 자리를 지킨 채 '루치아의 뜰'이란 찻집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오하이오 페리스버그에는 200여년이 된 집들이 그 자리를 지킨다. 그리고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 추억을 상실하지 않은 채 그 자리를 지키는 '건축물'들을 통해, 다큐는 '건축'의 의미를 묻는다. 그것이 1부, 집을 기억하다의 화두이다. 

그렇게 가족과 함께 살아온 시간의 가치를 존중하는 건축은 결국 함께 살아온 삶에 대한 존중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건축은 그렇게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 소통하고 나아가 치유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2부, 소통을 넘어 치유로는 바로 그렇게 건축을 통해 소통과 치유를 논한다. 

소통의 건축을 위해 다큐는 일본의 고즈넉한 도시 고치현을 찾아간다. 일본의 작은 도시, 하지만 건축을 하는 사람들은 이곳을 꼭 찾는다. 그 이유는 겨우 초등학교만 졸업한 사다와씨가 만든 '소통'의 아파트 때문이다. 1971년부터 시작하여 세번에 걸쳐 건축된 아파트, 계단 대신 건물을 삥 둘러싼 비탈길로 에워싸여진 아파트는, 그거 건축물을 넘어 '소통'의 공간을 지향하는 대표적 건축물로 유명하다. 또한 거주하는 세대가 너나없이 살아가는 풋콩집 또한 소통의 공간이 된다. 

소통을 넘어 '치유'가 되는 건축물도 있다. 세지마 가즈요가 지은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은 거창한 미술관 대신 고풍스런 도시와 조화를 이루며 도시민들을 향해 열린 나즈막한 열린 건축물로 도시의 숨통을 틔운다. 그런가 하면 루이스 칸에 의해 지어진 소크 생물학 연구소나 라 투레트 수도원은 애초에 '치유'가 건축물의 목적이 된다.



'행복한 건축'을 통한, 아파트 대한민국에 대한 반성
하지만 다큐가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한 것은, 멋들어지게 지어진 건축물이 아니다. 마음이 답답할 때면 골목을 걸어보라는, 그래서 스스로 그 골목을 잃지 않기 위해 자신의 병원 건물을 동네의 헐릴 한옥으로 재단장한 대구의 한 의사처럼, 그리고 그리니치 빌리지를 뉴욕의 명물로 생존시킨 제인 제이콥스처럼, 젠트리피케이션을 통해 사라져가는 도시 속 소통과 치유의 공간의 가치를 다큐는 역설한다. 부수고, 짓는 것이 아니라, 건축을 통해 우리가 도달하는 소통과 치유는, 우리가 머물렀던 공간을 소중하게 지키고 그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2부는 결론짓는다. 

그래서 다큐의 3부는 '기억의 유산'으로 귀결된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애초에 호텔로 지어졌지만 역사의 흐름에 따라 감옥과 수용소를 오갔던 건물이 그 흔적을 고스란히 담은 채 '문화적 대사관'의 역할을 하듯이, 건축은 그것이 흘러온 시간을 새로운 시대 속에 흩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지키고 가꿈으로서, 사랑하면 알게되고, 그 앎은 이전과 다른 가치는 지니듯, '기억의 유산'은 오늘을 사는 주거 유목민들의 삶은 안정화시킬 유일한 수단이라 주장한다. 

세계의, 그리고 우리나라의 '행복한 건축물'들을 통해 3부의 다큐가 도돌이표처럼 되새기는 것은, '기억'의 흔적을 쉽게 놓치지 말자는 것이다. '기억'의 흔적을 놓친 그곳에 남는 것은 결국 '자본'의 잔인한 파고만이 휩쓸고 지나갈 터이니. 그리고 오히려 그 흔적이,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한 가치를 부여하며 그곳을 오히려 더 가치있는 명소로 만들 수도 있다고 말한다. 낙산의 사람 냄새 나는 고즈넉한 골목, 그리고 동사무소에 목욕탕을 만들었던 정기용의 '인간적 건축'이 '행복한 건축'의 숨겨진 진짜 주제 의식이다. 굳이 소리 높여 '건축 자본주의'를 비난하거나, 아파트 대한민국을 비판하지 않지만, 오히려 '행복'이란 주제로 조감한 3부의 건축 속에서, '환금성'을 통해 도달할 수 없는  '주거'를 통한 '행복'의 가치는 강건해진다. 

집은 유년시절을 보낸 기억의 집, 현재 사는 집, 살아 보고 싶은 꿈 속의 집이 있다. 이 세 가지가 겹친 집에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정기용


by meditator 2015. 10. 5. 1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