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라는 종을 탄생시킨, 생물체들의 그 엄청난 뒤얽힘은 이동성, 미끄러짐, 이주, 도약, 여행으로 이루어졌다. 인간의 역사가 노마드적인 것이 되기 훨씬 전에, 아메바에서 꽃으로, 생선에서 새로, 말에서 원숭이로 진화된 생명의 역사 자체가 이미 노마드적이었다'


자크 아탈리는 그의 책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유목하는 인간이라고 정의내린다. 심지어, 우리가 인류 문명의 근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바, 농업을 통한 정주조차도, 결국, 노마드적 삶의 결과물이었다고 단정을 내린다. 그의 이론은 차치하고라도,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인류의 삶이 이제 지구의 전 대륙 심지어 남극에까지 그 손을 뻗치는 영역만 보더라도 노마드적 경향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제 사람들은, 현실의 땅을 취하는데 만족하지 않고, 디지털 유목이라 하여, 오늘도 하염없이 인터넷의 바다를 유랑하고 있는 중이다. 실상이 이럴진대, 우리가 어찌 노마드적 성향을 부인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리고 그런 인간의 본성(?) 혹은 경향성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오늘날의 인간들은, 휴식의 영역에서 조차도 노마드적 성향을 보인다. 즉, 정주해 있는 동안 자신의 삶에서 배태되었던 노마드적 본능에의 억누름을 휴식을 통해 발산하는 것이다. 바로 여행이 그것이다. 휴식이라면 그저 편하게 쉬면 될 것인 것을, 인간들은 시간을 쪼개 산으로, 바다로, 그리고 우리네 영토도 모자라 고생고생을 하며 해외로 나간다. 1월 10일 방영된 <나 혼자 산다>에서 로마에서 나폴리까지 5시간이 넘는 지난한 여정 끝에 도착한 나폴리 항구나 부산항이나 별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으면서도, 막상 돌아올 시간이 되자, 그곳을 떠나는 걸 아쉬워 하는 김광규처럼, 떠나고 고생하고 후회하면서도 다시 떠나는 여행의 딜레마를 반복한다. 그러니 이걸 노마드적 본능이라고 설명할 밖에.

(사진; 리뷰스타)

공교롭게도 소위 말하는 불금의 밤, 나란히 tvn과 mbc, 그리고 sbs는 어딘가로 떠나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정글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살아남기와 시골집 부모님을 모셔야 하는 미션을 중심으로 한 <정글의 법칙>과 <사남일녀>를 빼고서도, <꽃보다 누나>와 <나혼자 산다> 김광규, 김민준 편은 온전히 여행 그 자체다. 

물론, 여행이라고 다같은 여행은 아니다. <꽃보다 누나>가 터키에서 경유를 해야만 갈 수 있는 지중해의 아름다운 나라 크로아티아로의 9박10일의 장정이었다면, <나 혼자 산다> 김광규의 이탈리아 여행이나, 김민준의 한라산 등반은 그 반에, 그 반에 반에도 못미치는 일정에 불과하다.
하지만, 일정의 길고 짧음보다는 두 여행 과정의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는, 홀로냐, 함께 하냐이다.

<꽃보다 누나>는 그토록 고된 일정에도 김희애가 밤잠을 못이룰 만큼 낯선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야 하는, 그래서 작가 김수현의 한 마디에 그 스트레스가 눈물이 되어 쏟아지는 부담을 얹는 일정이었다. 하지만 그 사람으로 인한 부담만큼 어울려 지내는 시간이 되돌려 주는 선물도 만만치 않다. 데뷔한 이래 한번도 누군가에게 책잡혀본 일이 없는 바른 생활 사나이 이승기가 원점에 서서 자기 자신을 되돌아 보는 기회가 되었고, 덕분에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연예인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멋진 남자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우연히 만난 관광객이 손을 꼭 잡고 이제는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한 마디에 쏟아지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던 처지의 이미연에게, 한참 위의 선배들은 아홉 째 날이 넘을 즈음에야 진심어린 조언을 들려 줄 수 있었다. 아마도 그 따스한 위로의, 그리고 진지한 조언들이 서울의 어느 거리 한 곳에서 였다면, 보는 사람마저 뭉클해지는 진심으로 다가갈 수 없었을 것이다. 고된 여행의 일정을 함께 해낸 동료애 위에 보태진 말이기에, 정말 이미연에게 절실하게 다가갈 수 있었을 것이다. 

(사진; OSEN)

함께 하는 여행은 결국 함께 해서 힘들기도 하지만, 그럼으로써 덕분에 얻어지고 쌓이는 것들이 있다. 반면 홀로 하는 여행은 온전히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새해를 맞이하여 새벽부터 시작된 한라산 백록담을 향한 김민준의 강행군은 그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영어 한 마디 변변히 못하는 김광규가 정말 홀홀단신 이탈리아 여행의 과정에서 빚어내는 해프닝도 다르지 않다. 그는 말 한 마디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발버둥치며 외로워하지만, 덕분에 곳곳에서 그에게 도움을 주는 외국인들과, 여행을 떠난 한국인 동료와의 뜻하지 않는 만남이란 행복을 얻을 수 있었다. 마중 나온 매니저가 밀어주려는 가방 카트를 자신만만하게 끌고가려는 김광규의 모습에서, 홀로 여행의 성과가 단적으로 드러난다. 

홀로 떠나건, 함께 하건, 자신이 머무르던 일상을 떠난 그 새로운 공간과 시간은 떠난 자에게 원컨 원치 않건 뜻밖의 선물을 건넨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노마디즘의 정신이다. 노마디즘이 그저 정처없이 떠도는 것이 아니다. 

프랑스 철학자인 질 들뢰즈(Gilles Deleuze)와 프랑스 정신분석학자인 펠릭스 가타리(Felix Guattari)가 공통 집필한『천개의 고원(Mille plateux)』(혹은 '천의 고원'으로 번역)에서, 들뢰즈, 가타리가 주목한 유목적 삶은 그냥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것이 아니라 버려진 불모지에 달라붙어 새로운 생성(生成)의 땅으로 바꿔가는 것이다. 즉, 노마디즘은 제자리에 앉아서도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붙박히지 않고 끊임없이 탈주선(脫走線)을 그리며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사유의 여행을 뜻하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사진; 뉴스엔)

떠남이 지금 머무름과 다르지 않다면 무에 그리 고생을 감수하면서 떠나겠는가. 인간은 묘하다. 머무를 수 있는데도, 구태여 또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하여 떠난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자신을 새롭게 바꾸고, 지금 자신이 사는 자리를 벗어나 비약한다. 결국 노마디즘의 현존, 여행은 현존 삶의 노마디즘을 위한 또 하나의 자원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여행을 하는 사람들을 텔레지젼을 통해서라도 바라보며 대리 만족을 느끼는 시청자들, 그런 노마디즘의 간접 체험자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행을 통해 성장한 이승기에, 여행을 통해 서로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는 누나들, 그리고 말 한 마디 통하지 않는 외국 여행을 홀로 해낸 김광규, 자신의 목표인 백록담에 닿은 김민준에게 매료되어 그걸 지켜보게 되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4. 1. 11. 1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