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느 때보다도 투표에 대한 회의가 팽배해진 선거를 앞두고 있다. 60대 이상이 선거인의 60%를 넘는 이번 선거는 어쩌면 이미 그 결과가 불을 보듯 빤히 보인다는 느낌이 들어서 더 그렇다. 선거를 해야 하지만 막상 '뽑을 놈'이 없다는게 대다수 투표에 회의적인 사람들의 입장이다. 혹은 해봤자 세상은 그리 달라지지 않는다고도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당신의 한 표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은 어쩐지 설득력이 떨어진다. 하다못해 선거라도 해야 욕할 자격이 생기지 않겠냐고 우겨보기도 하지만 그 역시 낯부끄럽다. 그렇다면 이런 방식은 어떨까? 4월 9일과 10일 오후 4시 45분에 방영된 ebs특별 기회 <THE VOTE- 투표(이하 투표)>는 굳이 우리의 상황을 들이밀지 않는다. 하지만 이 2부작 다큐를 보고 나면, 비로소 우리가 선거를 해야 하는 의미를 제대로 배운 듯하다. 많은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선거를 하고 싶기보다, 정치와 정치인이 싫어지게 만드는 종편의 시사 프로그램을 제외하고, 이렇다 할 선거 기획이 없는 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시점, 그래서 EBS의 <투표>는 더욱 소중하다. 




1부 인간의 권리, 당신의 한표 
우리가 지난 학창 시절에 배운 선거는 그저 달달 외어야 하는 사회 과목 중 한 부분에 불과했다. 보통 선거 universal suffrage 재산, 신분, 성별, 교육 등의 제한을 두지 않고 일정한 연령에 달하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선거권의 의미는 그저 틀리면 안되는 시험 문제였을 뿐이다. 하지만, 이 평범한 단어에 숨겨져 있는 핏빛의 역사를 다큐는 밝힌다. 

다큐는 1913년 영국 엣섭 더비 경마장에서 시작된다. 말들이 결승점을 향해 달려오는 오래된 필름, 그곳에 한 여인이 질주하는 말들 사이로 뛰어든다. 당연히 여인은 말들에 짓밟혔고 그로 부터 며칠이 지나지 않아 숨을 거두었다. 
그녀의 이름은 에밀리 데이비스, 당시 영국은 여성에게 투표권은 물론 법적 권리도 보장되지 않는 사회였다. 여성들은 일할 기회가 부여되지 않아 기껏 할 수 있는 일이 하녀였고, 결혼하면 재산조차 남편에게 귀속되어야 하는 이등 시민이었다. 당연히 교육의 기회는 제공되지 않았다. 그래서 당시 여성들은 자신들의 법적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여성 투표권 운동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9차례나 투옥되고 고문을 당했던 에밀리 데이비스는 최후의 수단으로 왕가의 말들이 참가하는 경주에 자신을 던졌다. 그녀의 장례식엔 수만 명의 여성들이 동참했으며 그로부터 5년 뒤 영국 정부는 30세 이상의 여성들에게 투표를 허용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간 제약되었던 여성들의 권리는 보장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우리가 당연하다 여기는 한 표는 처절한 투쟁의 역사라는 걸 다큐는 보여준다. 그 당연한 보통 선거가 세계적으로 시행된 건 20세기 초중반, 에밀리 데이비스와 같은 여성들의 투쟁을 거쳐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투표가 여성에게도 열렸다. 그리고 여성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법적으로 낼 수 있게 되었다. 

여성만이 아니다. 미국에서 여성들이 투표권을 얻은 것은 1920년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여성은 백인 여성에 국한된 것이다. 흑인들은 투표권을 얻기 위해 그로부터 40여년의 세월을 싸워야 했다. 1863년 노예 해방과 함께 투표권이 부여되기는 했었다. 하지만 흑인의 지적 능력이나 판단력이 부족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교묘하게 차별적으로 만들어진 문맹 시험 등이 흑인들의 투표권을 제한했다. 이는 곧 흑인들의 정치적 법적 권리의 제한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1950년부터 흑인들은 투표권을 쟁취하기 위한 운동을 벌여나갔다. 1965년 600여 명의 시민들로 부터 시작된 셀마 행진은 그 과정에서 무장 경찰의 폭력 진압으로 피로 얼룩졌다, 하지만 행진은 멈추지 않았고 마틴 루터 킹도 합류한 2차, 3차 행진을 통해 결국 흑인들은 투표권을 되찾았다. 그렇게 투표권을 얻은 이후 흑인들은 자신들을 대변해 줄 흑인 정치인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차별에 금지하는 법안을 제정할 수 있었다. 

다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명확하다. 당신이 쉽게 포기하는 그 한 표을 위해 지난 역사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피흘리며 싸운 결과 '보통'의 당신에게 투표권이 주어졌다는 것, 그리고 그 투표권은 곧 인간의 권리이며, 지난 인간의 역사가 마련해준 당신의 자리라는 것이다. 

2부 표의 주인, 누구를 위한 투표인가? 
1부가 당연한 권리 투표에 대한 역사적 접근이었다면, 2부는 투표의 당위성에 대한 각론이다. 그리고 그걸 위해 다큐는 대통령 선거 중에 있는 미국 퀸시의 한 초등학교로 시선을 옮긴다. 불과 9살에 불과한 아이들, 그 아이들은 '선거'와 관련된 내용을 선생님에게 듣고 문제를 푸는 대신 실제 대통령 선거 과정에 사용된 광고지를 보며 비방 광고를 가려내는 법을 배우거나, 후보자 공약을 분석한다. 그리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인다. 이렇게 이 초등학교는 대선때마다 실제와 가장 근접한 선거 교육을 통해 투표가 국민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권리임을 가르친다. 



호주는 투표를 하지 않으면 20달러 벌금을 무는 의무 투표제를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굳이 벌금이 아니더라도 호주 시민들은 투표를 당연한 의무와 권리로 여기며 투표를 안하는 사람을 어리석고 멍청하게 여기는 정서를 지니고 있다. 자신들이 투표를 안하면 정치인들이 자기 마음대로 하며 지역 사회가 관심있는 일이 이루어 지지 않을 거라 믿는다. 이런 호주인의 정서가 투표율 세계 1위 93.1%의 득표율을 만든다. 

아직도 전주민이 광장에 모여 손을 들어 의사를 결정하는 직접 민주주의를 실행하는 곳이 남아있는 스위스, 하지만 이런 직접 민주주의의 제도가 아니더라도 3개월에 한번씩 법안 통과 여부 등의 국민 투표를 실시하는 스위스에선 1년에 한 사람이 투표해야 할 일이 3~40여회에 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위스 국민들은 번거로워하기는 커녕 정부를 압박하는 야당으로서의 국민의 존재에 대한 강한 믿음으로 기꺼이 참여한다. 

그 다음은 스웨덴이다. 의무 투표제를 실시하는 나라를 제외하고 가장 높은 투표율을 보이고 있는 나라로, 평균 80%가 넘는 투표율을 보이고 있다. 이런 스웨덴의 투표는 미국과 마찬가지도 어릴 때부터 이루어진 교육의 결과물이다. 학생들은 투표권이 희생과 투쟁의 결과물이라는 걸 배우고, 자신의 지지 정당을 놓고 토론하며 정치에 대한 폭넓은 견해를 배양한다. 

투표율이 높은 호주, 스위스, 스웨덴 이들 나라의 또 다른 공통점은 높은 국민 소득과 높은 행복감이다. 우리에겐 그들의 높은 국민 소득이나 복지가 관심사지만, 다큐는 바로 그런 안정된 국민들의 생활과 행복 지수에는 바로 '정치의 힘은 모아진 투표의 힘'에 비례한다는 투표율의 결과물로서의 행복 국가를 증명해 낸다. 또한 이들 국가는 어릴 때부터 교육 과정에서 국민된 권리의 실천으로 선거와 투표를 배우고, 그런 과정 속에서 소속감을 성취하여 민주주의의 주인 의식과 행복감을 고양시킨다고 주장한다. 

다큐는 한번도 우리가 4월 13일 투표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신 그 보통의 선거권을 얻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피흘린 역사를 나열한다. 그리고 우리가 부러워하는 잘 사는 나라의 투표 교육과 국민의 권리로서 투표를 당연히 여기는 시민 의식을 보여준다. 잘 사는 나라를 부러워하기 전에, 솔선수범하여 우리가 투표로서 우리가 원하는 나라를 만들어 가라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2부작의 다큐를 보고 나면 투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다. 홈쇼핑 광고같은 연예인을 동원하지 않아도 마음을 움직이는 진짜배기 선거학 개론이다. 
by meditator 2016. 4. 11. 05: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