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마주친 현실이 녹록치 않을 지라도/ 불안과 좌절이 우리를 짖누를 지라도/ 이 역시 우리 삶의 일부라는 것을/ 각자의 방식으로 차곡차곡 담아냈습니다


제 19회 EBS 국제 다큐영화제,  EIDF 2022가 시작되었다. Pitch your dream, 다큐의 푸른 꿈을 찾아서 라는 슬로건으로 막을 연 영화제는 올해도 ebs 방송과 에무 시네마 등 전세계 유일의 온, 오프라인 페스티벌을 열었다. 

 

 

EIDF2022는 총 24개국 63개의 작품이 페스티벌 초이스, 컨템포러리 다큐 파노라마, 커넥티드, 클로즈업 아이콘, 단편 화첩 등 10개의 섹션을 통해 출품되었다. 8월 22일 <사라지는 유목민>을 시작으로 EBS에서는 낮과 밤 시간을 통해 방영되고, 상영관에서 직접 다양한 다큐 작품과 만날 수 있다. 또한 언제나 그렇듯 EBS가 마련한 'D - BOX''다운로드'를 통해 언제든 자유로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지난 2년간 팬데믹의 영향으로 EIDF는 관객에게 제한된 방식으로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 이제 기지개를 켜고, 그간 말하기 조심스러웠던 꿈과 낭만을 다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위와 같은 취지로 시작된 영화제, 올해 개막작으로 상영된 작품은 8년 여의 제작 기간이 소요된 진화칭 감독의 <다크 레드 포레스트 Dark Red Forest>이다. 


 

티벳 고원의 비구니들 
다큐가 시작되면 카메라의 시선은 2017년 겨울 4000 M 높이의 티벳 고원으로 향한다. 이곳에 자리한 야칭스 수도원, 그곳에는 만 명이상의 비구니들이 정진하고 있다. 

그런데, 막상 보이는 것은 겨울 벌판을 가득 메운 겨우 한 사람이 앉을 수 있을까 싶은 나무판자로 지어진 작은 임시 거처들이다. 바람이나 피할 수 있을까 싶은 이 작은 박스에서 야칭스 수도원 비구니들은 가장 추운 겨울의 100일 동안 '동안거'를 한다. 눈이 와 쌓일 정도가 돼도 이들의 '동안거'를 멈출 수는 없다. 추운 건 집뿐이 아니다. 야칭스 수도원 마당에서 진행되는 불경 공부 시간, 비닐 한 장만이 추위를 막는다. 

'수행의 목적은 여러분 의식의 강에 존재하는 증오와 탐욕을 멸하는 것입니다. 고통으로부터의 자유는 바로 마음으로 부터 얻어질 수 있습니다. 전생에 지은 '업보'는 우리 삶의 그림자와 같습니다. '


만 명의 비구니들이 모인 시간 앳된 어린 승려가 똑부러지게 불법을 읊는다. 티벳에서는 비구니가 되는 걸 숭고하게 생각한다. 이곳의 승려들은 대부분 이처럼 앳된 어린 시절에 이곳에 들어온다. 그리고 이곳에서 평생을 보낸다. 

 

 

하지만 스승님을 맞이한 등이 굽은 노년의 비구니는 겸허하게 말한다. '제가 너무 더뎌 걱정입니다. 탐욕과 증오, 무지가 어디서 왔는지 조차 모르겠습니다. 어디로 가야할 지도요.'  한참 멋을 낼 나이의 젊은 비구니는 '반짝이는 불빛에 제 영혼이 빠져나갈 듯했습니다. 겨우 기도로 다시 제 영혼을 붙잡았습니다'라고 참회한다. 기도와 명상만이 아니다. 매년 6개월 동안 불경을 공부하고 시험을 치루고, 앞치마처럼 두른 포대가 구멍이 날 정도로 '오체투지'를 하는 강행군의 생활이 이어진다. 하지만 수행의 길은 멀다. 

파르라니 깍은 머리에 파랑, 노랑의 띠를 두른 비구니들이 말간 하늘 아래 나풀나풀 춤을 춘다. 그렇게 춤사위가 잦아든 광장에 나신의 육체가 놓여있다. '육탈'을 한 수행자들이다. '업보'의 고뇌에서 벗어난 이들, 그들의 육체를 기다리고 있는 건 티벳의 독수리들이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독수리 무리가 육체만 남은 수행자들을 덮칠 때, 그  한 켠에서 삶의 그림자를 짊어진 생존의 수행자들이 '독경'을 한다. 그저 '업보'가 잠시 머물던 곳, 육체는 그렇게 자신의 '업'을 다한다. 죽음의 순간은 이들에게 '업'의 그림자에서 벗어난 '영광의 순간'이다. 

 

 

그렇게 극한의 수행으로 이어진 비구니들의 삶, 하지만 종교적 경건함과는 별개로 그들의 문화적 환경은 낙후되어 있다. 그들의 건강은 소변에 뜬 부유물의 모양과 빛깔로 점쳐진다. 처방은 티벳의 전통약이거나 불에 달군 쇠막대로 '지압'을 해주는 식이다. 길흉화복의 행방은 '점'에 달렸다. 죽은 자의 안식을 묻자, 예전에 불곰 한 마리를 죽여 산신에게 노여움을 탔을 것이라는 답이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였을까, 이 지역에 들어온 사회주의 정부는 더는 이런 비구니의 존재를 허용치 않는다. 2017년, 그리고 2018년 겨율울 지나 이어진 다큐, 그런 가운데 중국 정부는 다음 해 여름까지 비구니들이 야칭스를 떠나라는 명령을 내렸다. 

링거를 맞으면서도 수행을 마다하지 않던 비구니들, 그럼에도 '스승님'은 그들에게 수행에 진심을 다하라 말씀하신다. 눈과 정신과 마음을 다해서, 코 위에 개미가 지나간다해도 한 눈 팔지 말고, 단, 정부 관계자가 중단을 요철할 때를 제외하고라고. 그 말씀의 정부가 이들에게 수행의 중단을 요구했다. 

수행의 진심을 묻던 비구니들이 이제 스승님께 호소한다. '떠나온 지 오래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모릅니다.' 이런 이들을 스승님은 안타까워하신다. 속세의 경험이 없는 이들이 자칫 세찬 강에 뿌려진 양의 배설물처럼 될까봐.

2019년 여름 거의 모든 비구니들이 집으로 돌아갔다. 동안거동안 그들이 머물던 판잣집은 해체하니 한 사람이 짊어질 분량의 짐일 뿐이다. 다시 시간이 흐르고 진화칭 감독이 찾아간 고원, '동안거'의 그 움막들이 곳곳에 즐비하다. 여전히 그 짙은 붉은 수도복을 입고 머리를 민 비구니들이 소를 몰고, 새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반야, 초월적 지혜'가 무엇이죠? 스승님이 물었다. '그게.......' 젊은 비구니는 답을 하지 못했다. 불성을 지닌 존재는 무엇인가요? 다시 스승님이 물었다. '자신입니다', '그 자신은 어떤 겁니까?' '자아와 자신은 같나요?', 비구니는 복잡한 얼굴을 할 뿐이었다. 그리고 시험을 못봤다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었다. 

 

 



그녀였었다. 그렇게 수행의 즉답을 하지도 못하고, 불경 시험도 못치던 그녀가, 여전히 붉은 수도복을 입고 그곳에 있었다. 

'삶이 예측불가능하다는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석가모니도 병을 앓고, 노화하고,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제 고통을 이해하고 받아들이자 고원의 새들이 보였습니다. 그들 역시 굶주리고 매에게 잡아먹힐까 불안에 떨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비로소 만물을 연민의 마음으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현세의 삶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지요.'


평생 이곳에서만 살아왔던 그녀가 이곳을 떠나라 하자 죽음을 생각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스승님은 말렸다. 정부의 명령을 따르라 했다. 야칭스를 떠난 그녀, 동안거의 움막이 이제 집이 되었다. 그녀는 말한다. 평생 짙은 붉은 색 법복을 입은 채 수행자로서의 삶을 다할 거라고. 오랜 수행에도 닿을 수 없었던 마음의 진심을 모든 것을 다 잃은 후에야 얻을 수 있었다. 그곳에 여전히 '다크 레드 포레스트'가 있는 이유이다. 




by meditator 2022. 8. 23. 2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