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신입생이 된 작은 녀석의 대학 입학식에 갔었다.
연단에 서신 총장님도, 그리고 학교 설명을 위해 올라오신 교수님도, 모두 빠짐없이 말씀하시는 건 바로 우리 대학이 얼마나 취업률이 좋은가 하는 거였다. 그런 광경을 보니, 첫 아이 때 입학식도 떠오른다. 아마도 그때도 이런 비슷한 언급이 있었던 거 같다.
우리나라 대학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건, 역시나 취업이다. 그리고 젊은 사람들의 취업률이 사회적 문제가 되면서, 그리고 경기가 둔화되면서 대학은 더더욱 자기 학교의 취업률을 올리기 위해 고심한다. 심지어, 재단이 기업에 넘어간 대학들은, 아니 기업이 재단이 아니라 하더라도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인문 계열의 과들을 통합하거나, 없애버리는 등의 합리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잘려나가거나, 사라져간 대표적 학과들은 다름아닌 인문학과 관련된 과들이다. 심지어, 국문화가 필요없다는 대학도 나오려고 한다.
이런 우리의 현실과 정반대로 가는 대학이 있다. 대학의 목적은 취업이 아니라 소리높여 외치는 대학이다. 어라, 그런데, 이 대학 4 년 째 취업률 100%란다. 전 일본 신입 사원 선호도 1위란다. 바로 일본 아키타 현에 자리잡은 일본 아키타 국제 학교(AIU)다. 4월 17일 밤 EBS는 특집 다큐멘터리를 통해 이 대학을 기적의 대학이라며 소개한다.
(사진; 세계 일보)
2004년 거듭되는 경제 불황에 학생 수가 줄어 폐교하는 대학들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가운데, 개교한 공립대학 아키타 국제학교는, 지금은 세상을 떠난 나카지마 미네오 초대 총장의 신념이 관철되어 있다. 일찌기 대학의 변화와 미래에 대한 비판을 아끼지 않았던 나카지마 총장은 이름값이 아니라, 얼나마 학습했는가에 따라 10년 후 대학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라는 자신의 철학을 아키타 국제학교를 통해 실현했다.
당장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를 키워야 한다며 조급증에 떠는 우리 대학과 달리, 도쿄에서 신칸센을 타고 3시간을 달려 가야 하는 지역 아키타 현에 자리잡은 일본 아키타 국제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오로지 국제 교양학이다.
단 한 명의 학생을 위해서라도 불은 켜져 있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24시간 밤을 밝히는 도서관, 아키타 현의 특산인 삼나무로 지어진 그곳을 7만여권의 인문서가 채우고 있다. 그리고 학생들은 그 인문서 들 중 시집, 고전, 비평서 등을 다양하게 읽고 그 중 한 권의 감상문을 졸업 전에 반드시 제출해야 한다. 불이 꺼지지 않는 도서관, 자정이 넘어서도 학생들의 발길은 이어진다.
독서 만이 아니다. 미술, 음악, 서예, 꽃꽂이, 다도, 심지어 아키타 현 전통 의식 등 다양한 예술 수업 중 하나를 선택하여 배우는 것도 수업 중 하나다. 이들 수업의 평가 방식도 다르다. 전문가를 키우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얼마나 성취했는가의 실력보다도, 얼마나 성실하게 수업에 임했으며, 그것을 즐기기 위해 어떤 노력을 경주했는가가 평가의 기준이 된다. 이렇게 다른 평가 방식을 통해 예술에 접근하는 학생들은, 함께 악기를 맞춰보며 그 과정에서 협동심을 배우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자연스레 터득해 간다.
또한 이 학교 학생이라면 무조건 1년간 머물러야 하는 기숙사는 다국적의 학생들이 함께 지내도록 되어 있어, 자연스레 학생들은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나와 다름에 대한 이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그 다름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공통점을 찾아 성숙해져 간다. 또한 똑같이 1년간의 수업료 700만원 정도를 내고 누구야 한번씩은 다녀와야 하는 해외 유학 과정은 그런 공감대의 확장, 확산의 과정이기도 하다.
도달해야 할 평균 점수를 얻지 못하면 상위 교양 과정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아키타 국제 학교의 수업은 엄격하다. 4학년의 철학 수업은 한 철학자의 사상을 두고 교수와 영어로 토론이 가능할 정도의 수준에 이르러야 할 정도로.
하지만 20;1의 치열한 경쟁률이 증명하듯, 도쿄대와 아키타 국제 학교를 놓고 고민을 하는 게 현실이 되듯, 현재 일본에서 이 학교는 고등학생들이 선망하는 대상의 학교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취업률만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100% 취업률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취업을 위한 예비학교냐는 질문에 단호하게 NO!라고 답하는 아키타 국제 학교의 관계자는 그저 4년간 열심히 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 취업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상담 학생과 상담 시간이 정해져 있을 정도로 교수와 학생의 유대가 제도적으로 마련되어 있는 이 학교가 추구하는 것은 바로 학생들 스스로가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스스로 편견과 선입견을 떨쳐 버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가도록 선택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고자 하는 것이다. 대학 교육이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주체적으로 지식, 기술, 사고를 배우고 익히는 것에 중점을 둔 것이다. 실제 이 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친 교수는 지난 1년간의 경험이 도달한 결론이 바로 대학의 주인공이 학교라는 인식이었다고 밝힌다.
대부분의 고등학생들은 자신이 뚜렷하게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대학을 선택한다.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과라는 한계에 갇혀 대학 생활을, 그리고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게 된다. 아키타 대학이 추구하는 교양은 바로, 그런 한계를 지양하는 것이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기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찾아가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대학의 존재 이유라는 것이요,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취업일 뿐이다.
(사진; TV리포트)
다큐의 마지막은 아키타 국제 학교 학생들의 인터뷰로 이어진다. 학생들은 저마다 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한일 교류를 해보고 싶다. 아키타 현의 전통을 널리 알리고 싶다. 지역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 4년의 대학 생활을 통해 자신이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알게 된 것이다. 그건 어느 기업에 가고 싶다는 우리네 대학생들의 희망과는 달라보였다.
우리 대학에서 지양하려고 하는 보편적 교양, 함께 살아가는 방식, 그리고 스스로 찾아가며 배우는 환경만으로 일본 최고의 대학으로 도약하고 있는 아키타 대학, 현실의 우물에 갖힌 채 대학을 취업의 방편으로, 학생을 스펙의 노예로 만드는데 앞장서는 우리 대학에 대한 가장 엄격한 질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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