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나를 보아도 나는 그 사람 몰라요

두근거리는 마음은 아파도 이젠 그대를 몰라요~'
<몬스타> 마지막 회, '니가 부르고 싶은 노래'를 들려달라던 나나(다희 분)에게 선우(강하늘 분)가 들려준 노래이다. 세이를 아직 정리하지 못하는 선우의 마음을 담은 노래이자, 선우를 해바라기처럼 바라보는 나나에 대한 선우의 마음을 담은 노래로, 그냥 그 노래를 선우가 부른 순간, 나나가 울음을 터트리며 가버렸듯 모든 것을 노래 가사로 다 설명해 줄 수 있는 노래였다. 


그런데 노래가 나오는 동시에 함께 자연스레 함께 읊조리는 엄마와 달리, 현직 고등학생인 아들은 고개를 갸웃한다. 저 노래가 뭐지? 하면서.
그도 그럴 것이, 이영훈 작사, 작곡, 이문세 노래의 <사랑이 지나가면>이 첫 발매된 것이 1987년이다. 무려 26년 전 노래를 2013년의 고등학생이 사랑의 슬픔을 대변하는 곡으로 부르고 있다. 엄밀하게 이건 넌센스다. 하지만, <몬스타>를 시청했던 그 누구도 그 장면에서 선우가 부른 그 노래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은 비단 <몬스타>에 그치지 않는다. 굳이 시작을 따지자면 영화 <건축학 개론>을 들어야 하나, 아니면 좀 더 본격적인 계기라면 <응답하라 1997>을 들어야 하나, 하지만, <건축학 개론>이나, <응답하라 1997>의 OST들은 90년대라는 특정 시점을 상징적으로 담보해 내기 위한 의도적인 도구들이었다. 하지만 최근 청춘 드라마의 OST 들은 굳이 특정한 시대적 배경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20세기의, 혹은 20세기적인 곡들인 경우가 많다. 

'처음엔 미처 몰랐어. 눈부신 사랑에 빠질 줄은
멀리서 전학온 이상한 아이가 너란걸 누군가 얘기했을 뿐
그러던 어느날인가 조금씩 내눈에 띠더라구'
이것은 2013년에 발매된 불독 맨션의 스타걸이다. 그런데, 이 노래는 2013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무려 지금으로부터 9년 전 불독 맨션이 처음 활동하던 당시에 발표했던 노래다. 드라마 스페셜 <사춘기 메들리>에 등장한 이 노래는, <사춘기 메들리>의 내용을 그대로 축약해 놓은 듯해 화제가 되었다. 또 제이레빗의 목소리에 실린 또 다른 OST인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고 김광석이 1996년에 발표한 곡이었고, 극중 고등학생인 정우(곽정연 분)이 전국 노래자랑에 나가 부른 곡은 이적의 <하늘을 달리다>였다. 그뿐이 아니다. 제목은 <사춘기 메들리>였지만, 드라마는 <20세기 메들리>인 것처럼, 불독 맨션을 비롯해, 젝스키스까지, 그리고 커피소년처럼, 20세기의 정서와, 그들이 정서의 계보를 잇는 아티스트들의 노래로 푸짐하게 한 상을 차려 내었다. 



바람이 분다. 서러운 마음에
텅빈 풍경이 불어온다
.......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몬스타>란 드라마가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기 시작한 것이 언제였을까? 그것은 아마도 
1회 '라디오'란 별명으로 왕따를 당하는 박규동(강의식 분)이 눈물젖은 목소리로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가 아니었을까? 이 노래 역시 1990년 이소라의 6집 <눈썹달>에 실린 곡이다. 뿐만이 아니다. <몬스타>는 유재하의 <지난 날>로 시작하여, 신승훈의 <날 울리지마>, 이지연의 <바람아 멈추어다오>, 루시드 폴의 <바람, 어디에서 부는지>, 이승철의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 그리고 들국화의 <행진>, <그것만이 내 세상>까지, 20세기 뮤지션의 향연이었다. 물론 그들만은 아니다. 커피 소년, 제이레빗,  M.O.T 등 역시나 20세기적 정서를 유지하는 뮤지션들의 음악이 풍성하게 담겼고, 이런 음악들은, 스토리만큼이나 극으 흐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내었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에게 음악이 ost화 되어 가고 있다는 자탄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블로그의 배경음악으로, 핸드폰의 벨소리로 음악을 소비하기 시작했고, 드라마의 ost가 되어야 귀를 기울여 듣고 찾아듣게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와 함께 ost 공해라고 할 만큼 드라마에서 음악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중이고 깔리는 곡의 수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심지어<응답하라 1997>을 기점으로, 이제 음악은 드라마의 배경을 장식하는 수준을 벗어나, 당당하게 극의 주인공으로 한 자리를 꿰어하는 경우도 늘어나는 경우도 있다. 특히나 최근 제작된 <몬스타>나, <사춘기 메들리>의 경우는 음악이 없이는 드라마 자체가 완성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런데, 주목할 만한 것은 거기에 사용된 음악들이, 2013년의 청춘들이 즐겨듣는 곡들이 아니라, 때로는 그들이 태어나기 훨씬 이전의 곡들인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편의적으로는, 그 드라마를 제작하는 사람들의 청춘을 상징하던 시점이 바로 그 20세기 였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거기다 <응답하라 1997>의 성공 사례처럼, 2013년의 청춘도 잡고, 20세기의 어른의 관심도 끌어보자는 양수겹장의 전략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한껏 위축되었던 80년대를 지나, 이른바 x세대로 상징되는 자유로운 청춘의 문화가 만개된 90년대야 말로 평론가들이 르네상스라 지칭하듯, 다양한 장르의 풍성한 음악들이 창조되었고, 지금 우리가 드라마에서 조우하듯 예전 노래라는 시대적 한계에 가둬두기에는 매우 아름다운 명곡들이 많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이름이 뭐예요? 전화 번호 뭐예요?'
'다같이 원/ 빠빠빠빠빠빠'
위의 두곡은 2013년 8월까지 가장 이슈가 된 포미닛의 <이름이 뭐예요>와 크레용 팝의 <빠빠빠>의 가사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후크송'이라며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단순한 가사의 곡들이 화제가 되더니, 올해 들어서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가사랄 것도 없는 단순한 어구들의 반복으로 만들어진 노래들이 유행 중이다. 그런데 제 아무리 이런 노래가 화제가 되기로 서니, 설레이는 첫사랑의 섬세한 감정에 '이름이 뭐예요?'라고 어겨다 붙일 수는 없지 않겠는가. 어쩌면 최근 청춘 드라마의 노래들이 그 예전 노래를 자꾸 가져다 쓰는 것은 가장 직접적으로는 요즘 노래 중에 풋풋한 청춘의 정서를 대변할 노래가 없어서일 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당연히 기승전결의 개연성있을 뿐만 아니라, 감정을 시적으로 맛깔나게 풀어준 노래들을 찾게 되는 것이고. 그러다 보니 거슬러 올라가 20세기까지 에돌아 가게 되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3. 8. 4. 1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