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사는 세상'의 표민수 pd가 모처럼 돌아왔다. 이번엔 공중파가 아니라, 젊은이들의 연애 담론에 일가견이 있는 tvn을 통해서이다. 그가 가지고 돌아온 작품은 <이웃집 꽃미남>으로 이미 작품화된 바 있는 웹툰 작가 유현숙 작가의 동명 웹툰이다. 원작의 청순 가련했던 여주인공을 당당한 국가 대표 수영 선수로 둔갑시킨 작가는 <꽃미남 라면가게>, <직장의 신>의 윤난중작가이다.

표민수 피디와 윤난중 작가 콤비는, 세상에 둘도 없는 강호구(최우식)의 조건없는 사랑을 통해, 사랑조차도 디지털화되어가는 세상에서, 아날로그한 진솔한 사랑을 그리겠다는 포부를 펼친다.

 

제작진의 포부에 걸맞게 2월 9일 방영된 첫 방송에서, 김밥까지 싸들고 데이트에 설레이던 강호구는, 6개월의 해외 연수도 모자라 애인인 오빠의 등장으로, 진짜 오빠 같은 오빠로 전락하게 된다. 그리고 드라마는 반복해서, 이 시대의 '썸'이라 칭해지는, '내꺼 인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사랑의 가벼움을 논한다. 그리고 그런 '썸'타는 세태 속에서, 호구는 친구와 여동생, 심지어 어머니의 지청구를 받으면서도, 여전히 계산하지 않는 가슴을 울리는 사랑을 고민한다. 그리고, 그렇게 순수한 사랑을 갈망하는 그의 앞에, 고등학교 시절부터 그가 좋아했던 스포츠 여신 도도희가 나타난다.

 

첫 선을 보인 <호구의 사랑>은 이름부터 강호구인 인물의 '호구스러운' 성격을 그려내기에 애쓴다. 애인이라 생각하는 여자가 눈 앞에서 다른 남자의 차를 타고 가는데도, 상상만 할뿐 가지고 있는 김밥까지 주려고 하는 남자, 첫사랑 도도희를 만났지만, 말 한 마디 제대로 건네지 못하는 호구같은 남자를 묘사하며, 그런 그의 거절하지 못하는 성정을 '착하다'로 정의내리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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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이미 웹툰에서 그려지고 있듯이 사랑하는 여자의 아이조차도 거둬주어야 하는 '호구'적 설정이 예정되어 있기에 불가피한 전략이겠다. 하지만, 막상 첫 선을 보인 강호구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은, 착하다 라기 보다는, '답답하다'라는 감성이 우선한다. '썸'과 사랑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과연 순수한 것인지, 눈치가 없는 것인지도 애매하다. 물론 고등학교 동창의 보험 가입 강권조차 결국 거절하지 못하고 나서서 들어주는 이 남자 호구가, 드라마의 마지막 도도희와 바다행을 감행하는 결정을 내리는 걸 보면, 그만큼 도도희를 좋아하는구나 라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거기까지 이르기까지, 호구는 정말 말 그대로, 호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런 호구의 캐릭터를 통해, 그것이 계산적인 사랑이 범람하는 이 시대에, 아날로그적인 순수한 사랑을 그려내고자 한다지만, 어쩐지 강호구는 불온하다. 마치 그의 지고지순함은, 70년대 한 남성을 바라보며 온갖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던 지고지순한 여주인공의 전복된 캐릭터인 듯하다. 데이트하던 여성이 화장실에 간 동안, 그 앞에서 그녀의 핸드백을 들고 순순히 기다리는 남성, 그리고 이어 그녀 대신 핸드백을 들고 데이트에 임하는 남성, 이 시대의 여성들이 데이트 대상으로 요구하는 남성의 온순한 매너들이, 강호구라는 인물을 통해 극대화된 느낌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게다가 드라마 속 호구를 비롯한 호구의 친구들은 호구의 여동생에게 사랑학 강의를 들어야 할 만큼 사랑에 무지하다. 마치 <마녀 사냥>에서 처럼, 남자들은 여자를 모르고, 여자들은 그녀들만의 세계가 있다. 그래서, 그녀를 사랑하는 그들은 늘 예습하지 않고 칠판 앞에 선 수학 시간의 둔재들처럼, 남의 다리만 긁는 식이다. 드라마는 '아날로그적' 감수성을 그려내려 하지만, 그 속에서 그려진 남성상은, 이 시대가 편견을 가지고 규정하는 사랑에 무지한 남자애들일 뿐이다.

 

더구나 웹툰에서 청순가련하던 여주인공은, 이름조차도 도도희, 국가 대표 수영선수요, 그녀의 뛰어난 미모로 일찌기 여신으로 칭송받는, 거기에 성격조차 거칠 것없는 캐릭터이다.  이렇게 전통적으로 여성과 남성에게 요구되는 성적 역할이 전복된 듯한 두 주인공 캐릭터를 통해, 그려내고자 하는 <호구의 사랑>이 과연, 21세기의 순수한 사랑으로 도달할 수 있을까? 그렇게 도달한 사랑은 사랑조차도 디지털화되어가는 세상에, 아날로그적 감수성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될까? 그게 아니라, 오늘날 젊은이들의 사랑론에 고착되어 등장하는 수동적 순수남의 환타지를 강화시키는 것은 아닐지. 특히나 젊은 층의 지지를 받고 있는 tvn의 드라마이기에, 첫 회를 선보인 <호구의 사랑>에 노파심이 앞선다.

by meditator 2015. 2. 10. 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