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문으로 들었소>의 유준상이 연기하는 한정호는 법무법인 한송의 대표다. 아버지 대부터 이어온 우리 나라 최고의 법무 법인의 대표로서, 우리 사회 갑 중의 갑이다. 그의 손에서 시작된 각종 법안들이, 결국 우리 나라를 움직이는 것으로 드라마 속에서 그려진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뒤늦은 사춘기가 찾아왔다. 자신의 딸이 한정호의 아들로 인해 상심을 하자, 그 보복을 하겠다고 한정호를 새삼 유혹한 첫사랑 지영라(백지연 분)에게 온통 마음을 빼앗겨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정호의 뒤늦은 사랑은 여느 드라마처럼 다큰 어른들의 불장난처럼 그려지지 않는다. 이제 중반을 들어선 <풍문으로 들었소>는 갑 중의 갑 한정호의 철딱서니 없는 사랑을 통해, 이른바 우리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아노미'를 적나라하게 해부한다. 




한정호, 한인상 부자가 선택한 다른 길
아니, 도덕적 아노미라고 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한정호가 지영라를 만난 후 보이는 일련의 행동들은, '탈도덕적'이다. 그리고 그런 그의 행동 패러다임을 통해, 우리는 현재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는 이른바 지도층의 '탈도덕적' 습성들을 짚어볼 수 있다. 

초반 만삭이 된 서봄을 이끌고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온 아들 한인상에 대한 한정호 부부의 반응, 그리고 이후 이어진 서봄의 집안에 대한 처분 등에서, 한정호 부부는 일관되게 무자비한 '갑질'을 행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갑질은 자식을 둔 부모 맘이라던가, 처지가 다른 사돈을 하루 아침에 맞닦뜨린 처지라던가 하는 묘한 공감대를 통해 희석되기도 하였다. 그들은 분명 '갑질'을 했지만, 그 과정에서 보여지는 한정호 부부의 적나라한 '인간적' 반응들이, '속물'로 세상을 살아가는 시청자들에게 그저 밉게만 보이지는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뒤를 밟고, 뒷조사를 하고, 교묘하게 자신이 가진 모든 정보를 이용하여, 사돈댁을 손아귀에 쥐려는 처지조차, 그러려니 하게 유준상이 연기하는 한정호는 설득력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아들보다 더 똑똑한 서봄을 기꺼이 '변종교배'를 통한 집안을 업그레이드 시킬 존재로 받아들이는 융통성까지 발휘하니. 이제 바야흐로 서봄과 한정호네 식구의 진정한 '융합'이 이루어지는가도 싶었다. 더구나, 한정호네 집안의 시스템을 재빨리 학습한 서봄이 '작은 마님'으로 등극하니, 그녀의 입지전적 성공기로 이어지는 것 같기도 하였다. 

하지만, <풍문으로 들었소>는 그리 호락호락 '화해'의 손을 내밀지 않는다. 오히려 잠시 '작은 마님'에 취했던 서봄이 자신의 존재를 깨닫고, 한인상과 함께, 한정호에 대한 반란을 도모하면서, 이 평화로운 모드는 균열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아버지의 교모한 법리적 해석으로, 작은 아버지와, 민주영의 오빠가 다니던 회사의 노조 사람들에게 부당한 결과라 판결되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심리적, 신체적 손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알게된 서봄과 한인상은 민주영을 도와 그 일을 해결하고자 한다. 

여기서 한정호의 아들 한인상은 그가 서봄을 택했듯이, 아버지와 다른 길을 선택한다. 그의 달느 선택을 묻는 서봄에게, 그간 자신이 먹여 키웠던 그 돈의 근원에 대한 고민을 털어 놓는다. 그는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버지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어려움을 외면하면서, 그들을 핍박하면서, 그 반대편에 서서 지금의 한송을 만들어 왔는지 어렴풋하게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정호 괴물로 키워지다
그리고 이런 아들 한인상의 깨달음과 부끄러움의 맞은 편에 한정호의 후안무치가 있다. 공교롭게도 아들 한인상이 대산 노조의 끝나지 않는 법정 투쟁에 함께 하기로 마음을 먹은 그 시점에, 그 아버지인 한정호는 첫사랑 지영라에게 다시 눈이 먼다. 그의 어머니가 마음에 들지 않아, 그와 이루어 질 수 없었던 재벌집 안주인 지영라, 번연히 남편이 있는 그녀에게 그는 다시 마음을 빼앗기고, 그 마음을 숨기지 않고 질주한다. 

그리고 <풍문으로 들었소>라는 제목답게, 그 소식은 한정호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는 '스캔들'이 된다. 심지어 그의 아내와, 아들과 딸조차도. 
그렇게 남의 아내라는 현재의 처지조차 상관없이 함께 외국 여행을 꿈꾸는 그를 두고, 그의 아랫 사람들은 뒷담화를 한다. 어린 시절부터 불면 날아갈세라, 쥐면 꺼질세라 키워졌던 한정호, 심지어 사춘기 시절 혹시나 여자 문제를 일으킬까, 과목 별로 이쁜 여자 선생님을 붙여주었다는 부모 밑에서, 그는 오로지 자기 자신이 최고인 줄 아는 '괴물'로 키워졌던 것이다. 그렇게 그를 괴물로 지칭한 그의 비서는 덧붙인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한정호 식 교육을 부러워해서, 너도 나도 그런 방식을 본땄다고. 

아들의 2차적 성징과 그에 따른 자연스런 호기심조차도, 과목별 이쁜 과외 선생님을 통해 충당해 주는 부모들, 그렇게 성적인 관심조차도 케어받은 아이는, 자라서, 자기 자신은 물론, 타인의 감정을 느낄 수 없는 괴물이 되었다. <풍문으로 들었소> 한정호가 가장 잘 하는 것은, 바로 그에게 닥친 상황에 임기 응변과 합리화에 능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저 한정호에게 스킬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바람핀 것을 알고 그의 머리를 박은 아내에게, 먼저 용서를 하겠다는 엽서를 보냈듯이, 진정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내에게 사과의 선물을 비서를 시켜 보내면서, 동시에 지영라에게도 선물을 보내듯이, 도무지 '인간적인 반성'을 할 수 없는 사람인 것이다. 아내의 분노 대신, 아내가 혼자 먹는 라면에 더 눈이 가고, 자기 자신을 챙겨주지 않는게 더 화가 나는 사람, 아내와의 싸움에서, 그녀가 자신이 애지중지 하는 머리칼을 움켜 쥔 것에 분노하는 한정호에게, 진정한 반성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타인에 공감'할 수 없는 오로지 '자기'만으로 존재하는 한정호를 그를 오래도록 수행한 비서는 거침없이 '괴물'이라고 부른다. 

이제 중반에 들어선 <풍문으로 들었소>는 그저 드러난 갑들의 속물적 행동 양태를 넘어, 그들의 '속물성'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를 해부한다. 그리고 그 해부를 위해 가장 사적인 한정호의 '바람'을 등장시켰고, 그 과정에서 그가 어떻게 '괴물'로 성장되어 왔는가를 그려낸다. 그렇게 모든 것을 다 갖추어줘서 괴물이 된 그의 맞은 편에, 이제 막 '자각'과 '부끄러움'에 첫 발을 딛은 한인상과 서봄 부부가 있고, 다시 그 구석에, 몸도 마음도 '무소유'라 떳떳하고 초라한 서봄의 아버지가 있다. 

서봄의 아버지는 그의 아내에게 한없이 당당하지만, 무기력하고, 아내와 아들 앞에서도 부끄러움조차 느낄 수 없는 괴물 한정호는 모든 것을 가지고, 모든 것을 좌지우지한다. 그리고 이것은 그저 드라마 속 한정호와 서형식(장현성 분)의 존재가 아니라, 슬프게도 우리가 사는 사회 속 관계의 상징이다. 우리가 매번 총리를 갈아치우고 또 갈아치워도 매양 그 사람이 그 사람일 수 밖에 없는 이유, 국회 검증 과정에서 털면 털수록 각종 비리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이유를, <풍문으로 들었소> 속 한정호를 통해 알게 된다. 그렇게 부모 대에서부터, '도덕'이라고는 '개나 줘버리듯'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순종'으로 '양육'되어져 온 그들은, '타인'에 대해 '배려'는 커녕, '타인'의 존재를 느끼지도 못하는 '도덕적 불감증' 괴물들인 것이다. 그런 한정호들이기에, 민주영의 오빠나, 서봄의 작은 아버지와 같은 사람들의 고통 따위는 가볍게 즈려밟고, 마치 '타짜'들이 화투판을 '작전'짜듯이 이 나라의 법을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주무를 수 있는 것이다. 풍자의 도를 더해가는 <풍문으로 들었소>, 우리가 만나게 되는 건, 괴물 한정호, 바로 우리 사회 갑 오브 갑들이다. 

by meditator 2015. 4. 22. 05: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