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장센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원래 연극에서 시작된 용어로 소품, 의상, 분장, 조명 등의 요소를 연출자가 자신의 의도를 관객에게 제대로 잘 전달하기 위해 배치하는 것을 말하는데서 출발하여, 영화 속 카메라의 프레임 안에서 화면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의미하는 것으로 발전된 용어입니다.

영화 평론가 앙드레 바쟁에 따르면 미장센이 뛰어나다는 것은, 영화 <시민 케인>처럼 주제를 전달하기 위한 가장 적절한 조명, 각도, 앵글을 배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런 미장센이란 용어가, 우리 영화로 돌아오면, 화면 상에서 감독이 자신의 주제를 보다 탐미적으로 추구해 나가는 경향에 좀 더 힘이 들어간 듯합니다. 김지운 감독의 영화 <장화홍련>이나, 이명세 감독의 <형사; duelist>와 같은 작품을 대표적으로 미장센이 뛰어난 영화가 일컫습니다.

 

(사진; 영화 <시민 케인> 중 한 장면)

 

그러던 '미장센'이란 단어가, 최근에 들어서는 드라마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듯합니다. 텔레비젼 드라마를 즐기는 세대들이 보다 감각적으로 혹은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궤를 같이하면서 텔레비젼 드라마를 만드는 입장에서도, 이야기만이 아니라, 미장센을 통해 만드는 자의 입장을 전달하고자 하는 시도가 자주 시도되고 있습니다.

특히나, <칼과 꽃>의 김용수 감독은 kbs드라마 스페셜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통해 뛰어난 미장센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탁월하다는 것을 증명해 낸데 이어, <적도의 남자>에서도 그 특기를 잘 살려낸 것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새로 시작한 <칼과 꽃>에서도 김용수 감독 특유의 '미장센'을 한껏 살려낸 화면은 영화 못지 않는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한 듯이 보여집니다.

 

 

그런데, 이런 선택은 어떨까요?'연출이 좋은 드라마와 작가가 좋은 드라마',

물론 애초에 이건 말이 안되죠. 드라마의 가장 기본 요소들인데, 그중 어느 것이 더 우위를 점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일반적으로 드라마를 '작가 놀음'이라고 농담처럼 정의 내리듯이, 2시간 만에 승부를 내는 것이 아닌, 매주 2회씩 오랜 시간을 통해 끌어가야 하는 드라마에서, 이야기를 밀어가는 작가의 힘이 더 중요하게 부각되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요즘처럼, 조금만 시선을 끄는 그 무엇이 없으면 바로 리모컨으로 손이 가는 변덕스러운 상황에서, 잠깐만에라도 시선을 확 잡아끄는 연출의 능력 또한 무시못할 요소입니다.

하지만, <칼과 꽃>에 앞서 종영한<천명>에서처럼 제 아무리 연출이 미장센이 뛰어난 화면을 연출한다고 해도, 스토리가, 배우들의 연기력이 그것을 뒷받침해주지 않는다면, 드라마는 공허해져 버리고 맙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천명>에 뒤를 이은 <칼과 꽃>이 바로 그런 <천명>의 '도로'를 그대로 따라하고 있는 듯 하다는 겁니다.

 

(사진; 칼과 꽃, 티브엔)

 

 

 

 

물론 그래도 다행이다 싶은 것은 <천명>에 비해, <칼과꽃>은 묵직한 두 중견 배우 김영철과 최민수가 영류와과 연개소문을 맡아 굳이 애써 설명하지 않아도, 대립되는 고구려의 두 세력의 팽팽한 기 싸움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두 배우의 연기력이 그렇게 보여지게 한다는 것이지, 드라마 속으로 들어가, 영류왕과 연개소문의 대립이 설득력있게 그려지고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칼과 꽃>은 그 대립의 내용을 언제나 어느 사극에서나 그래왔던 왕의 세력과 신하들간의 역학 관계의 대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설정한 대신, 대립의 극한적 분위기를 보여주는데 치중합니다. 극한의 클로즈 업을 통한 긴장감의 조성, 독대씬에서 보여진 탐미적인 분위기를 통해 대립을 설득해 내려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분위기 조차도, 보다 보면, 자꾸 어느 영화에서 봤지? 어떤 일본 드라마에서 본 거 같은데 하는 기시감을 불러 일으킬 뿐, 심각하기는 한데, 되돌아 보면 왜 심각하지란 반문을 하게 만드는 상황인 것입니다.

 

 

그래도 영류왕과 연개소문의 대립 장면은 멋집니다. 하지만, 첫 회, 연충(엄태웅 분)과 공주(김옥빈 분)가 만나자 마자 첫 눈에 반한다는 설정들은 실소를 금치 못하게 만듭니다. 물론 엄태웅이 훌륭한 연기자인 건 인정하지만, 적어도 만나자 마자 얼굴 근육을 풀리게 만들 정도의 대상이 되려면, 영화 <형사; duelist>의 무사(강동원 분) 정도는 되야, 시청자들이 공감을 하지 않을까요? 게다가 만나자 마자 첫 눈에 반하더니, 질주하는 마차로 부터 공주를 구하기 위해 공주를 거꾸로 세우다 '눈이 맞는' 장면은, 암만해도 '미장센'의 부작용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것들입니다. 게다가 연충은 그 방금 전에 자신을 쫓아오던 공주와 칼을 겨루기도 했었습니다. 제 아무리 공주가 이쁘다고 한들, 방금 전에 칼을 겨눈 그녀와 바로 사랑에 빠진다는건 아무래도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관련사진

(사진; 칼과 꽃의 한 장면, 한국일보)

 

 

첫 회의 <칼과 꽃>은 이야기를 통해 시청자들을 설득하는 대신, 몇 마디의 짧은 대사를 통한 선문답같은 메시지의 전달과 미장센이 뛰어나다 못해, 과잉이라고도 할 분위기를 통해 분위기를 전달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 화려한 치장을 걷어내고 보면, 영류왕과 연개소문의 대립은 그 상황을 조선 시대에 가져다 놓아도 하등 이상하지 않을 것같은 고구려 특유의 역사성을 전달하지 못했고, 연충과 공주의 만남은 언제나 늘 그러하듯이 상투적이다 못해 그 뻔함이 낯부끄럽기 까지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미장센이 뛰어나다고 했던 <장화홍련>과 <형사; duelist>는 그 평가의 반대편에 내용이 불충실하다는 지점도 있습니다. 앞선 작품에 비해 한결 더 미장센에 치중한 <칼과 꽃> 역시 부실한 대본을 가리려는 임기응변이 아닐까 해서 안타깝습니다. 더구나, 그런 얕은 수로는 시청자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이미 <천명>이 보여주었는데, 또 다시 그 길을 <칼과 꽃>이 가려 하고 있다는 데서 안타까움은 배가됩니다.

by meditator 2013. 7. 4. 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