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새해를 맞이한 <인간의 조건> 오프닝에서 김준현은 자신있게 말한다. 향후 7년 정도, 작년 연말 연예 대상 시상식에서 <인간의 조건> 팀이 받은 '실험정신상'을 대신할 프로그램은 나오지 않을 거라고. 그도 그럴 것이 김준현의 말대로, 실험적 정신이 살아있는 프로그램은 <인간의 조건>과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인데, 두 작품은 서로 다른 장르의 작품이기 때문에 <무엇이든 물어보세요>가 결코 연예 대상에서 수상을 할 일 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독보적인 위치로 자부심을 내보이는 <인간의 조건>이지만, 프로그램의 성격 외, 동시간대 타 방송사와의 경쟁으로 들어가면 위축되고 만다. 그도 그럴 것이, 전통의 <세바퀴>가 1위의 자리를 탈환하는가 싶더니, 이젠 케이블의 <히든 싱어>의 추격세도 만만치 않다. 심지어, 이젠 특집 <히든 싱어>에 밀리기 까지 한다.
이렇게 작품의 내용으로는 자부심을 한껏 뽐내지만, 타 방송사와의 경쟁에서는 위기를 맞이한 <인간의 조건>이 새해를 맞이하는 각오는 남다를 수 밖에 없다.

(사진; tv리포트)

1월 11일 선보인 <난방비 0에 도전하기>에서 보여지듯이, <인간의 조건> 제작진이 우선 선택한 것은, 초심으로 돌아가, 가장 강력한 미션을 내세우는 것이다. 프로그램의 촬영이 이루어지던 지난 연말, 날마다 갱신하던 한파 속에서, <인간의 조건> 팀에게 주어진 것은 10도의 냉기가 가득한 아지트였다. 영하가 아니라니 다행이라고. 게스트로 등장한 이봉원이 딱 한 마디로 정리해 버린다. 8~10 도가 냉장고 적정 온도라고. 결국 한파주의보 속에 멤버들은 온수 역시 나오지도 않는 냉장고 집에서 1주일을 보내야만 한다. 덕분에 시청자들은 따뜻한 아랫목에서 한 겨울 얼음 동동 띠워진 냉면을 먹으며 겨울을 만끽하듯, 추위에 떠는 <인간의 조건>을 보며 자신이 누리는 안온한 온기를 역체감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추운 냉골에서 서로 껴안듯 도란도란 부대끼는 멤버들과, 서로가 추울까 내복에, 수면 바지에, 심지어 군대 깔깔이 까지,  각자 바리바리 싸들고 온 훈훈함은 냉기는 커녕 따스함을 배기시킨다. <인간의 조건>의 제 맛이다. 

뿐만 아니라, 게스트도 바뀌었다. 그동안, 제 아무리 유명해도, 멤버들에게는 낯설었던, 그래서 어쩐지 함께 게임을 해도 겉도는 거 같고, 얼굴 알고, 서로 이제 친숙할 만하면 헤어져야 했던 아이돌 멤버 대신에, 서로가 잘 알고 있는 개그맨 선후배가 게스트로 등장했다. 

흔히들 개그맨들이 텔레비젼에 나와서 온갖 재밌는 행동을 해서 평소에도 재밌는 사람이라는 속설과는 달리, 실제 개그맨들이 대부분 진지하고 숫기가 그다지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는 건, 새로운 사람들이 등장할 때마다, 혹은 새로운 사람들과 접해야 할 때마다 진땀을 흘리는 <인간의 조건> 멤버들을 통해 익히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기에 잘 모르는 아이돌 멤버의 등장은 그들과 섞이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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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스타 투데이)

이제 새롭게 등장한 김기리는 이들의 <개그콘서트> 직속 후배로, 그런 시간을 압축할 수 밖에 없는 장점을 지닌다.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이미 <개그콘서트>를 통해 연예 대상을 받았을 정도로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사람이지만, 예능에서는 신선한 캐릭터이기에, 이제 1년 여 여섯 멤버의 면면이 익숙해져 가는 <인간의 조건> 자체에도 신선한 활기를 불어넣었다. 잘 아는 막내 동생을 얼르고 달래는 <인간의 조건> 여섯 멤버들의 모습은 그 어느때보다도 활기차 보였고, 서로 알아가는 과정없이, 그 누구랑도 함께 붙여놔도 바로 푸근한 그림이 나오는 김기리의 선택은 뻔하지않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신선한 김기리를 보니, 또 다른 개그 콘서트의 익숙한, 하지만 예능에서는 신천지인 인물들의 활약을 어떨까 지레 기대를 해보게도 되는 것이다. 첫 방에 불과한 <사남 일녀>가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은 거, 별거 없다. 정말 막내딸 같던 이하늬의 천진난만함이 다다. 부디, 광활한 <개그 콘서트>라는 풀을 <인간의 조건>이 올 한 해 제대로 써먹어 보길 바래본다.

덕분에 이 날 방송의 화룡점정은 당연히 김기리의 몰라 카메라가 되었다.
등장부터 개구장이 막내동생처럼 그리고 <인간의 조건>게스트가 되었다는 기쁨으로, 공중으로 한  1m는 부양된 듯 의기양양해 하던 김기리가 선배들이 짜고 치는 몰래 카메라에 희생되어 눈물까지 흘리는 모습은 물론 가학적이었지만, 그의 순수함을 한껏 보여준 정점이었고, <인간의 조건>에 모처럼 등장한 클라이막스였다. 

<꽃보다 누나>가 왜 별 거 아닌, 길 잃어버린 모습을 보여주고, 또 보여주면서 시청자들에게 주입식 교육을 하겠는가. 이제는 다큐에서도 드라마를 요구하는 시청자들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다. <인간의 조건>이 그간 부족했던 것은, 단타의 잽은 난무하지만 전체적 드라마를 만드는 고비가 없었는데, 친근한 후배 김기리가 등장해 단번에 그걸 만들어 낸 것이다. 그가 진심으로 어려워하고, 당황해 하고, 그리고 눈물까지 흘리고, 그런 그가 안쓰러워 선배들이 물고 빨고 하는 장면은, 그간 <인간의 조건>에서 드물었던 진심이 보여진 장면이었다. 그리고 바로 지금 <인간의 조건>이 관록의 <세바퀴>를 이기기 위해, 또 다른 절창의 감동<히든 싱어>를 제끼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그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체취인 것이다. 

(사진; tv리포트)

'인간적인 체취'는 김기리만 보여준 것이 아니다. 선배로 등장한 이봉원은, 야구 방망이를 들고 군기를 잡겠다는 모습과는 달리, 늦은 밤 돌아오지 않는, 이른 아침 밤새 추위로 잠못들다 곯아 떨어진 후배들을 위해 솔선수범 상을 차린다. 늦게 들어온 까마득한 후배 김기리를 위해 상을 차려주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 그였기에, 그를 믿고 날뛰던 김기리가 그의 호령에 더 당황스러워 했던 것이다. 김기리의 말처럼, 선배이기 보다는 아빠같은 훈훈함으로 다가왔기에. 그런 이봉원의 재발견도 또 다른 '인간적인 체취'를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선후배의 훈훈한 모습으로 시작된 '인간적인' 새해의 출발이 좋다. 부디 이 분위기를 좀더 농밀하게 끌어내, 새해에는 '실험적' 시도 이상, 보다 많은 시청자들에게 사랑받는 <인간의 조건>이 되기를 바란다. 


by meditator 2014. 1. 12. 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