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시즌2로 돌아온 <인간의 조건>에 대해 <삼시세끼>를 흉내냈느니, <1박2일>을 흉내냈느니, 구설들이 많다. 솔직히 제 아무리 그럴싸한 변명을 해도, 시골 외딴 집에 떨어뜨려 놓은 것은 <삼시 세끼>요, 여섯 남자에게 딸랑 한 조각의 아침 식사 토스트부터 시작해서, 여러가지 미션을 제시하는 것은 <1박2일>이 연상되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1박2일>의 원년 멤버인 은지원까지 데려다 놓았고, 은지원은, 그가 <1박2일>에서 하던 방식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으니, 더 그럴 밖에. 하지만, 그렇게 이리 갖다 붙이고, 저리 갖다 붙이며 구박덩어리가 된 <인간의 조건>이 진짜 문제인 것은, 바로, 이 프로그램이, 이젠 <인간의 조건>으로서, 정체성을 상실하거나, 소모해 버렸기 때문이다. 


최근 <삼시세끼>를 통해 슬로우 라이프의 예능화에 성공한 나영석 피디가 kbs를 나가기 전 런칭한 프로그램이 바로 <인간의 조건>이다. 파일럿으로 시작한 <인간의 조건>에서 三無, 즉 컴퓨터, 텔레비젼, 그리고 핸드폰 없이 사는 삶을 제시했을 때, 그건, 그가 tvn으로 이적하여 추구했던, 아날로그화된 슬로우 라이프 예능의 단초를 보여준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인간의 조건>은, 최근 예능의 트렌드가 되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을 가능성으로 품고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렇다면 2015년 현재, <삼시세끼>를 흉내내고 있다, <1박2일>을 모방한다며 욕을 먹고 있는 <인간의 조건>은 어떻게 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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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와 텔레비젼, 핸드폰을 빼앗겼던 여섯 명의 개그맨들은, 우리가 텔레비젼을 통해 만나던 연예인이 아닌 여섯 남자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마치, <삼시 세끼> 속 이서진이, 텔레비젼 드라마에서 만나던 이서진이란 탈렌트가 아니라, 좀 까칠하지만 젠틀한 노총각처럼 말이다. 그래서, 뚱보 개그맨이 아니라, 감수성넘치는 김준현이 드러났고, 웃기는 개그맨이 아니라 엄마같은 정서를 가진 정태호가 발견이 되었었다. 겪의없는 선배 김준호도, 정말 웃기고 싶어하는 박성호도 그렇게 알게 되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나영석이 사라진 <인간의 조건>은 그때부터, 이른바 '인간답게 살기 위한' 미션들의 전시장이 되었다. 그래도, 초반에 물없이 살기, 쓰레기없이 살기, 지갑없이 살기까지는, 그래도 어찌어찌 인간다운 삶에 대한 고민이 더해졌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는, 미션을 위한 미션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었다. 그래도, 미션을 위한 미션을 버텨 간 것들은, 애초에 인간적 매력을 듬뿍 선사했던 개그맨들 개개인의 인간적인 면면들이었다. 하지만, 그것들마저 소진된 프로그랭은, 결국, 여성판 인간의 조건으로 화제를 돌렸고, 급기야는 멤버들을 개편하고, 아이돌들을 비롯한 게스트들을 초청하며 연명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 그 조차도, 소진되어 버리자, 이제 시즌2라는 이름으로 물갈이를 하고 등장하였다. 

그런데 어쩐다. <인간의 조건2>라고 해서 새롭게 보는 사람들이야, <삼시세끼>랑 비슷하다 하고, <1박2일>이랑 비슷하단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동안 <인간의 조건>을 쭈욱 시청해 온 시청자 입장에서는, 시즌2의 <인간의 조건>이 그전의 인간의 조건이랑 너무도 달라진 것이 없는 것이다. 마치, 시즌 1의 멤버들이 생명을 다하자, 슬쩍 몇몇 멤버들을 물갈이 하고, 그들에게 미션을 준 것처럼, 남성 멤버들이 인기가 없어지자, 여성 멤버들에게 남성 멤버들이 하던 미션을 고대로 주고, 도돌이표를 한 것처럼, 새롭게 시작된 <인간의 조건2>의 이른바 5無라이프는 마치 몇 번째 되풀이 되는 도돌이표 노래를 다시 듣는 것 같다. 

오죽하면, 그들이 쓰레기를 없이 살기 위해 하는 고군분투도 다 한번씩은 본 것같고, (심지어 본 것들이 다수이고), 돈이 없어 쩔쩔매는 모습도, 컴퓨터, 핸프폰, 텔레비젼 등이 없어 아쉬워하는 모습들도 새로운 것이 하나도 없다. 분명 출연자들은 전혀 달라졌는데, 하는 내용이 똑같으니, 마치 군인들이 군대에 가면 똑같이 되듯, 매뉴얼을 실행하는 듯한 상황을 지켜보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가끔은 아마도 다음에 저런 반응을 보일 것이라는 예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출연자들의 반응에 실소를 하게 된다. 아마도 이것은 그간 <인간의 조건>을 충실하게 지켜본 시청자라면 공감하게 될 부분일 것이다. 딴에는 새롭게 시골에다 그들을 풀어 놓았는데, 그것도 이미 남성판 <인간의 조건> 멤버들이 다해본 것들이 태반이다. 그리고, 도대체, 바쁜 도시의 삶에서 고민해야 될, 컴퓨터, 텔레비젼, 핸드폰 없이 살기를 시골에서 한다는게 무슨 의미가 있다는 것인지. 미션의 의미도, 가치도 둥둥 떠다닌다. 

심지어 새로운 출연자들인데, 출연자들의 면면도 새롭지 않다. 윤상현은, 예능에서 소진된 캐릭터가 아님에도, 그가 보이는 행동의 면면은, 그가 드라마 속에서 보여주던 캐릭터와 그리 이반되지 않아 새롭지 않다. <삼시세끼>의 매력이, 이서진이라는 인물, 연예인이 가진 반전 매력에 상당 부분 기대어 있는 것과 달리, 이상하게 윤상현은, 연예인 윤상현과 별 차별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거기에 합류한 은지원은 더 말할 것이 없다. 이미 소진될 대로 다 소진된 '은초딩' 캐릭터를 모두가 예능 초짜인 배우들 예능에 끼워넣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조건> 제작진의 선택이 아쉬울 뿐이다. 그렇다고 은초딩 캐릭터를 넘어서 은지원이 배우들 가운데 예능적 조화를 이루는 것도 아직은 난망이다. 그나마 신선하다면, 케이블 예능을 통해 가능성을 보인 봉태규 정도이지만, 역시나, <인간의 조건>은 그가 케이블에서 보여 주었던 그 이상을 끄집어 내지 못한다. 허태희가 가능성이 보이지만, 아직은 미지수고, 현우나, 김재영은 굳이 왜 예능에 나왔는지 아직 타당한 이유를 찾기 힘들어 보인다. 마치, 배우들 예능이 대세라니, 우르르 몰려나온 모양새를 넘어서지 못한다. 우르르 몰려 나온 그들에게 개연서을 부여해주는 것이, 제작진의 몫이지만, 이미 <인간의 조건> 앞 시즌에서 보여지듯이, 그것을 하기엔 늘 미션 우선의 제작 방식이 발목을 잡는다. 

시즌에 시즌을 거듭하고 있는 <1박2일>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의 조건>이 출연자들을 갈아치우고, 남성편, 여성편에 이제 시즌2까지 거듭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문제는, 남성편, 여성편을 하고, 시즌2를 하는데, 새로운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데 있다. 심지어, 이제는 <인간의 조건>이 어떤 프로그램이었는지 기억조차 할 수 없이, 타 프로그램의 아류만 말이나 듣고 있는 상황이 문제인 것이다. 

<인간의 조건>을 쭈욱 지켜보며, 줄곧 지적했던 지점이, 바로, 이 프로그램이 <인간의 조건>이라는 것이었다. 컴퓨터 없이 살고, 쓰레기 없이 살고, 물없이 살고, 돈없이 사는 미션을 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사는 인간들의 삶을 되돌아 보고자 하는 프로그램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었다. 그것은 번다한 미션 후에, 몇 마디 멘트로 설명할 수 없는 프로그램의 정서다. 물론, 제작진은 이 시대 인간들의 삶을 되돌아 보기 위해, 숱한 조건들을 고민해 왔다. 하다하다 심지어, 피부 미용에 탈모까지. 하지만 언제나, <인간의 조건>에서 2% 부족했던 것은, 바로 나영석 피디가, 지금 <삼시세끼>를 통해 펼쳐보이고 있는 바로 그, 아날로그화 된 슬로우 라이프였다. 그것은 다채로운 미션, 다양한 출연진들만으로 메꿔줄 수 없는 프로그램의 철학인 것이다. 늘 그것의 빈자리가 아쉬웠던 <인간의 조건>이 결국, 타 프로금의 아류로 지적당하게 된 것은 어찌보면 필연적인 귀결인가 싶기도 하다. 

물론, 단 8회의 분량으로 트렌드가 된 <삼시세끼>와 몇 년을 거듭한 <인간의 조건>을 비교한다는 건 어불성설일 수도 있다. 여기서 다시 한번 매회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는 공중파 피디의 안타까운 숙명을 상기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1박2일> 시즌3가 <1박2일>이지만, 심지어 그 전의 멤버 김종민과 차태현이 있는데도, 그들의 앞선 시즌에서의 활약이 전혀 떠올려지지 않듯이, 시즌2로 돌아온 <인간의 조건>이라면, 다른 버전에 대한 준비를 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것이, 그저, 도시에서의 멤버들을 시골로 옮겨놓고, 여러 가지 미션을 한데 뭉뚱그려 충격파를 더하는 것으로가 아니라, 2015년에 생각해 볼 만한, 진짜 인간의 조건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되어야 하겠다. 부디, <인간의 조건>이 장수 프로그램으로 생존할 수 있기를 바란다. 



by meditator 2015. 1. 18. 1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