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로 갈 수는 있어도 느낄 수는 없다' 이 말을 자동차없이 살기 1주일에 대한 소회를 김준호가 한 마디로 표현한 것이다. 휴대폰, 쓰레기, 그리고 이제 자동차까지 세 번째 미션을 완료하게 되면서 <인간의 조건> 멤버들은 서로를 '가족'이라 부르는 걸 서슴치 않게 될 만큼 친밀해지고 인간적(?)이 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그런 훈훈한 면모가 <인간의 조건>이란 프로그램의 성격이 다가 아니다. 오히려, 자동차 없이 살기 미션의 마지막회에서 확연하게 드러났듯이 <인간의 조건>은 지금 당장 현장에서 투입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그 어느 교육 프로그램보다 훌륭한 환경에 대한 교재로 쓰일만한 '에듀테인먼트' 프로그램이다. '환경'교육에 삶을 돌아보는 '철학'까지 덧붙이니, 이만한 '양수겹장' 교재가 어디있을까?

 

아침 식탁에서 우연히 영화 <일 포스티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아들 왈, '일 포스티노는 얼마 전 본 <파이 이야기>같아, 뭔가 분명하게 이거다 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굉장히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어'란다. 물론 거기에 엄마란 사람은 '그런 게 좋은 영화야' 라며 호들갑을 떨면서 맞장구를 쳤다.

과연 '~ 없이 살기'란 계몽성 주제를 가진 버라이어티가 제 목소리를 내면서 재미를 찾아갈 수 있을까? 란 의구심을 <인간의 조건> 파일럿 때부터 가졌었는데, 이제 세 번째 미션을 마친 <인간의 조건>은 제법 그 과제에 대한 균형점을 찾아가고 있는 듯하다. 그건 바로 좋은 영화가 우리 삶에 많은 의문부호를 던져주듯이, <인간의 조건>이 선택한 방식이 바로 단정적으로 '이거다. 이렇게 해야 한다'가 아니라 우리가 무심코 익숙해진 '문명의 생활'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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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수소이든, 전기이든 거의 1주일만에 차를 탄 멤버들은 그 편리함에 저절로 '참 좋다'란 소리를 연발한다. 더구나 비까지 내리니 오죽하겠는가? <인간의 조건>제작진들은 그런 상황을 그저 바라본다. 김준호가 다른 멤버들과 달리 약삭빠르게 왕발통을 이용해서 오르막길을 손쉽게 드나들어도, 박성호의 제지 해프닝 말고는 별다른 제재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굳이 제작진이 나서서 개입하지 않아도, 제작진이 기후제를 지낸게 아니냐는 멤버들의 씁쓸한 우스개처럼, 기상 상황이 비가 눈으로 바뀌자 그토록 편리하던 차들은 고스란히 애물단지로 변하고 만다. 그저 두 발이면 춥기는 해도 홀가분해졌을 퇴근 길인데, 차를 이용한 멤버들은 눈길에 미끄러질까 노심초사, 억덕길을 올라가기 위해 미는 건 당연지사, 심지어 주차를 위해 눈 치우기 봉사까지, 편하다고 좋아한 게 무색할 정도로 고생을 사서 하게 된다. 물론 차 때문에 늦게 끝나는 허경환을 데리고 올 수 있는 편리함은 있지만, 거리를 가득 메운 차들이나 기상상황으로 인해 애물단지가 되어버리는 차의 이중적 면모를 카메라는 그저 묵묵히 보여준다. 마지막 회에 가서야 김준호가 스스로 자신이 왕발통을 이용한 것이 잘못이었음을 스스로 시인하게 만들듯이.

 

<인간의 조건>을 보노라면 우리 사회가 거창하게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는 '환경 오염' 문제의 절박함을 우선적으로 공감하게 된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다. 실제로 생활에서 우리가 그 문제를 실천하려고 했을 때 불법 주차된 자전거 도로나, 대체 에너지를 이용하고 싶어도 막상 찾기 힘든 것처럼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또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실천이지만 막상 우리가 문명의 이기들에서 벗어났을 때 자동차를 탔을 때는 지옥이지만, 걸으면서 바라본 동네의 설경은 아름다운 풍경화인 것처럼 조금은 불편하지만 다른 무엇을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한다. 김준호가 마지막 회에서 후배들과 함께 차를 타고 돌아오면서 비로소 자신이 코가 얼어가면서 집착했던 왕발통으로 인해 잃은 것이 함께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음을 깨달아 가듯이.

 

이처럼 <인간의 조건>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을 수 밖에 없는 '문명'과 '인간'의 딜레마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리고 거기서 섣부르게 앞서 예단하지 않는다. '편리함'과 '여유' 사이의 고민을 그저 안겨주는 것으로 만족한다. 보고 나면 가슴이 답답해지는 영화처럼.

by meditator 2013. 3. 31. 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