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성황리에 종영되었다. 닥본사를 하고싶어 ENA 채널을 찾기 위해 리모컨을 아래로, 위로 오르내려야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울컥한 눈물 한 방울의 여운을 남긴 채 시청자에게 '뿌듯한' 감동을 선사하고 마무리됐다.
자폐스펙트럼 장애까지는 아니라도 '경계성'의 우려를 보이는 자녀를 둔 어머니와 함께 이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었다. 극 초반 사람들이 우영우가 드러내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자, 어머니는 다행이라고 하셨다. 그래도 사람들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인식이 조금은 나아질 것이라는 점에서 였다.

왜 우영우였을까?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의연한 자페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우영우 변호사에 환호하던 열기는 중반을 지나, 그녀가 가진 '천재성'에 대한 노파심어린 이야기들이 등장하며 그 어머니 역시 다양한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왜곡'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셨다.
그런 어머니께 한 편의 작품을 소개해 드렸다. 우영우처럼 서울대 법대 수석까지는 아니지만 역시나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주인공이 나오는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이하 무브 투 헤븐)>이다. 공교롭게도 <무브 투 헤븐>의 그루(탕준상 분)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모두 '물고기'를 좋아한다. '고래 이야기' 금지라고 해도 기승전 '고래'가 되어버리는 우영우처럼, 그루는 고향처럼 '수족관'을 찾아 하염없이 유영하는 물고기들을 본다. 그들에 대한 압도적인 지식을 줄줄 늘어놓는 점에서는 막상막하이다.
그런데 넷플릭스에서 똑같이 방영되었음에도 두 드라마에 대한 온도차이가 나는 건 무엇일까? 똑같은 '아스퍼거 증후군'임에도 한그루 때는 등장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이제 우영우의 천재성이 불편하다고도 한다. 두 드라마는 모두 '픽션'이다. 우리 사회의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이들의 '실재'를 근거로 하되, 거기에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진 것이다.
<무브 투 헤븐>도 그렇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도 그렇고, 좀 더 거슬러 올라가 유사한 서번트 증후군을 가진 천재 의사가 주인공이었던 <굿 닥터>도 모두 주인공들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이지만 동시에 특출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왜 하필 이들이 주인공일까? 안타깝게도 그건 아마도 그나마 우리 사회에서 이른바 '보통 사람들에게 접근성이 좋은 이들이어서가 아닐까?
하지만 아스퍼거나 서번트 증후군조차도 아인슈타인이니 모짜르트니, 혹은 스티브 잡스니, 일론 머스크니 하는 사람들이 그랬다는 연구들이 등장하며 '인식의 문턱'이 낮아졌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는 보통과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의 선이 '엄격'한 것이다.

우영우에게 손을 내민 흰고래들이 되어주세요
우영우는 서울대 로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했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그런 그녀에게 주어진 기회는 우영우의 능력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엄밀하게 '우영우'를 볼모로 경쟁사 '태산'의 오너인 태수미의 발목을 잡고자 한 한바다 로펌 대표의 큰 그림이었다. 제 아무리 법조문이 눈 앞에 쫘악 펼쳐지듯 줄줄이 꿰는 '천재적 능력'을 가졌지만 서류조차 받아주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런 자리에 오기까지도 우영우의 시간은 순탄치 않았다. 맹모삼천지교처럼 학교를 옮겨다녔지만 학교에서 우영우는 늘 놀림과 왕따의 대상이었다. 그녀가 잘하면 잘하는대로 이용 대상이 될 뿐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김밥'만을 먹게 되었고, 아버지는 김밥을 싸다 못해 김밥 장사를 하게 되었다. 만약 동그라미(주현영 분)라는 친구를 만나지 못했다면 영우는 학교를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을까.
대학에 가서도 마찬가지다. '봄날의 햇살'같은 최수연(하윤경 분)이 곁에 없었다면 어땠을까? 늘 정해진 루틴대로 살아가야 하는 영우가 '수석'이 가능했을까? 한바다에서 영우가 만난 정명석 변호사(강기영 분)에게 '서브 아빠'란 별명이 붙었다. 늘 영우에게 아량과 관대함을 보여준, 그래서 외려 권영우가 차별당한다고까지 느끼도록 만든 그의 '혜량(다른 사람이 살펴서 이해함을 높여 이르는 말)'은 그가 암수술로 자리를 비운 사이 '대타'가 된 장승준 변호사(최대훈 분)로 인해 더욱 돋보인다. 조금은 외로워도 사랑한다며 스스로를 '고양이 집사'라 칭한 이준호(강태오 분)의 이해심깊은 사랑은 또 어떨까?
영우는 스스로를 흰고래 무리에 사는 외뿔 고래와 같다고 말한다. 너무도 다른 외뿔 고래가 고래 무리에 함께 어울려 살기 위해서는 '외뿔 고래'의 노력이나 능력도필요하지만, 그런 외뿔 고래를 기꺼이 자신들의 무리로 받아들여줄 수 있는 '흰고래 무리'의 노력도 필요하다.

왜 정명석 변호사에게 '서브 아빠'라고 했을까. 대부분의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이들, 그리고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아니라도 그 경계에 있는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전적으로 부모와 가정의 책임이다. 부모들의 소망은 아이들보다 하루 더 사는 것이고, 때로는 끝없는 터널 속에 있는 듯한 막막함을 토로한다. <무브 투 헤븐>은 바로 그 '보호자' 아빠의 부재로 '위기'가 시작된다.
하지만 그 '아빠'가 '사회'까지 따라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의 '어른됨'으로 드라마가 마무리된 것은 바로 여전히 어려운 우리 사회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의 '홀로서기'를 '강변'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우영우의 홀로서기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우호적인 흰고래 무리들'이 필요하다고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동그라미가, 봄날의 햇살이, 서브 아빠가, 해바라기 사랑 그리고 바보같은 권영우까지. 그들의 인식적 전환과 호의가 있어야 우영우가 '뿌듯하고 아름다운 삶'을 이어갈 수 있다고 드라마는 말한다. 그리고 드라마를 본 우리들에게 손을 내민다. 한 사람의 우영우와 우리와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당신이 동그라미가, 봄날의 햇살이, 그리고 정명석 변호사가 되어줄 수 있겠냐고. 기꺼이 외뿔 고래를 당신의 무리와 함께 유영할 수있게 마음의 문을 열어주겠냐고.
불과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문화 콘텐츠' 영역에서 '동성애'를 다룬 작품들은 '문제작'이었다. 하지만 꾸준한 작품들의 등장을 통해 사랑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한때는 '이상한 사랑'이 이제는 '보통 사랑의 영역 중 하나'가 되었다. <무브 투 헤븐>에 이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일천한 이해의 대상인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들 역시 꾸준히 이어져 간다면 이들에 대한 이해가 보다 넓어져 가지 않을까 싶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대한 열광과 질시는 그 고갯마루를 넘는 통과의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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