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0일 <육룡이 나르샤>의 시청률은 그 전회 13.3%에 비애 0.8%나 상승한 14.1%(닐슨 코리아 기준)를 기록했다. 6회를 제외하고 가장 높은 수치를 보인 셈이다. 하지만, 동시간대 mbc월화 드라마 <화려한 유혹> 역시 전회에 비해 똑같이 0.8% 상승한 것을 놓고 보면 월요일 <가요무대>의 영향력을 반증하는 것같기도 하다. 하지만 시청률과 상관없이 12회 <육룡이 나르샤>는 흥미진진했으며 감동적이었다. 그런데, 이 흥미진진과 감동의 속내를 한번쯤은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그 속내가 곧 쉽게 치고 오르지 못하는 이 드라마의 지지부진한 원인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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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마리 용의 산만함
제목에서 부터 여섯 마리의 용이 날아 다니는 이 거창한 이름의 사극, <육룡이 나르샤>, 하지만 300억 대작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게 시청자들의 반응은 지금까지 엇갈리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엇갈린 반응들이 11월 10일자 방송에서는 한결같이 '좋았다'로 돌아섰다. 무엇이 좋았던 것일까?

무엇보다 그간 함주에 칩거(?)한 채 좀처럼 정도전의 '육룡' 낚시에 낚이지 않았던 이성계가 그의 아들 이방원의 옥사를 계기로 정치 전면에 등장했다는 것이다. 전쟁터에서 살아온 장수, 흰서리가 희끗희끗한 상투 머리가 흐트러지고 얼굴엔 상처, 그리고 먼지와 피로 얼룩진 군복으로 등장한 천호진의 이성계 모습은, <정도전>의 기세 등등했던 유동근의 이성계와는 또 다르게 무인 이성계의 존재감을 고스란히 느끼게 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전쟁터를 누비던 그가, 자신의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이제 정치를 하겠다는 그 결심은 그 어떤 정치의 출사표보다 설득력을 느끼게 하였다. 결국 이러니 저러니 해도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역성 혁명을 이끄는 주역인 이성계가 극의 전면에 자신을 드러내자, 비로소 극이 중심을 갖추는 듯한 느낌이 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이성계가 중심에 들어서도록 그 숨막히는 정쟁의 막후에서 그 모든 것을 주물렀던 정도전과 그런 정도전의 손아귀 안에서 어떻게든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보전하기 위해 고심하는 이인임, 홍인방, 길태미의 이합집산이 긴장감을 부여했다. 

결국 이러니저러니 해도 정치에 나서는 이성계와 그의 막후에서 그의 브레인으로 자리매김하는 정도전의 존재감이, 비로소 <육룡이 나르샤>를 본 궤도에 올려놓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곧, 퓨전 사극으로서, 역사적 사실 이상의 작가의 상상력의 산물인 장치들의 취약함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즉, 제목부터 거창하게 육룡을 내세우고, 이성계, 정도전, 이방원이라는 역사적 인물 외에 연희, 분이, 무휼, 땅새라는 '민중'을 고려 말 역성 혁명 과정의 중요한 주체로 내세우려 했지만, 그들이 극을 중심으로 이끄는 순간, 드라마는 흐트러지고, 그들의 이야기조차 설득력을 크게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증명하고 있는 셈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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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원 정도전, 그 혁명 조직의 설득력의 한계
<뿌리깊은 나무>의 프리퀼에 해당하는 <육룡이 나르샤>는 세종 조에까지 암약했던(?) 본원 정도전의 유지를 따른 결사 조직의 시초를 그린다. 당연히 거기엔 말 그대로 본래 이 조직의 뿌리가 된 본원 정도전이 등장한다. 

그런데, <육룡이 나르샤(이하 육룡)>의 정도전은 <정도전>의 풍운아 정도전과 다르다. 12회, 옥사를 겪던 이방원을 마지막에, 옥사를 담당했던 남은(진선규 분)은 이인임의 수하인 듯 굴었으나 결국, 정도전의 둘도 없는 벗이었으며, 이인임의 계략 하에 놀아나는 듯한 옥사를 정도전의 의지에 따라 바꿔놓은 결정적 인물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보여지듯이, <육룡이 나르샤>의 정도전은 스스로 역사 속에 뛰어들어 혁명을 온 몸으로 겪어가는 인물이 아니라, 혁명을 계획하고 집도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그를 따르는 연희의 태도에서 보여지듯이 전지전능한 종교적 교주와도 같은 인물로 그려지는 정도전은 드라마적 캐릭터로 보았을 때 '납작'하다. 즉, 그는 고뇌하나, 그의 고뇌는 마치 예수가 그의 제자를 두고 고민하듯 '인간적이지(?) 않다. 그리고 뻔히 구해줄 수 있는 이방원을 이 기회를 통해 반성을 하라고 내처두었듯이, 전지전능하다. 따라서 그런 전지전능한 인물 정도전은 종종 등장하는 코믹한 씬에도 불구하고 극중 할 일이라고는 알고보니 이게 내 계략이었어라던가, 아니면 장황한 설명조의 웅변 밖에는 극중 기여할 바가 적다. 다른 사람들은 욕망에 고뇌하고, 앞날을 몰라 헤매고, 세상에 자신을 던지지만, 이미 그의 머릿 속에 모든 것이 들어있는 혁명의 계획자 정도전은 믿고 의지할 대상은 되지만, 정이가는 캐릭터는 아니다. 그러기에 그와 홍인방의 불꽃튀는 설전의 장면에서, 어쩐지 홍인방에 연민이 느껴지는 것은 홍인방의 의견에 동조해서가 아니라, 그가 인간적이었기 때문인 것이다. 바로 이런 본원, 혁명의 기획자 정도전의 절대 옮음이 <육룡>의 장점이자, 동시에 극적 매력을 덜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다. 

또한 <육룡>은 그런 혁명의 기획자 정도전의 휘하에 비밀 조직원으로서 나머지 용들, 특히 고려의 젊은이들의 이합집산을 그려낸다. 특히 12부의 과정에서 아버지 이성계보다, 그의 아들 이방원의 열혈 혁명 의지로 인한 굴곡을 다룬다.  비록 지금은 젊은 혈기에 정도전을 스승으로 모시겠지만, 곧 그는 왕좌를 위해 정도전을 제거할 것이고 아비와 척을 지고, 형과 동생들을 제거할 권력의 화신이기에, 유아인의 호연에도 불구하고 역성 혁명의 주도 세력으로 그를 따라가는 것이 저어된다. 

이방원이야 그래도 역사적 인물이니 그렇다 치고, 나머니 인물들 분이, 땅새, 연희, 무휼의 이야기로 가면 극은 지지부진해진다. 이들은 고려의 민중을 상징하는 중요한 인물들인데, 어쩐지 저마다 사연도, 극중 역할도 어정쩡하다. 마치 정도전의 심중을 설명하기 위한, 보조 장치가 된 듯한 연희의 존재도 부담스럽고, 당차게 황무지를 개간하던 소녀에서, 천민 출싱에 어울리지 않게 장황한 대사를 읊어대며 어느덧 이방원 바라기가 된 분이도 어정쩡하다. 땅새도, 무휼도 그들의 사연으로 들어갈라치면 극이 갈팡질팡하는 듯하다. 결국 '민중 사극'를 지향하지만, 극이 그 '민중'들은 저마다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어느덧 본원의 조직원으로만 그 존재감이 귀속되어 버리고, 대신 칼만 들지 않았을 뿐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정치판과, 가끔씩 등장하는 황당무개한 무협 칼싸움이 <육룡>의 재미를 추동한다. 결국 무인과 사대부의 합작품 넘어선 조선의 역성 혁명, 그를 설득해 낼 수 있을 지, 이것이 시청률과 무관하게 <육룡>의 진짜 딜레마이다. 

by meditator 2015. 11. 11. 1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