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열의 스케치북> 100회, 200회, 300회, 그리고 400회를 함께 했다. 그리고 7월 17일,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500회를 맞이했다. 당연히 500회도 이 프로그램과 함께 했다. 

코로나 팬데믹 시대, 공개 방송이었던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함께 울고 웃던 관객들과 더 이상 자리를 함께 할 수 없었다. 그간 100회 세션맨 특집을 비롯하여 늘 신선한 아이디어로 자축연을 벌였던 특집들은 그 자리를 빛낸 주인공들에게 한없는 박수 세례를 쳐주었던 관객들의 열기로 그 자리가 더욱 빛났지만 2020년 500 회 특집에 박수를 쳐줄 관객들의 자리는 비었다. 하지만 '위기'는 또 다른 기회라고,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관객들의 자리에 '추억'을 앉혔다. 바로 그저 <유희열의 스케치북> 500회가 아니라,  KBS2 TV 음악 프로그램에서 뮤지션이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진행했던 '고품격' 프로그램의 역사, 그 뒤안길을 '추억'하는 자리를 만든 것이다. 바로 <유희열의 스케치북 500회 특집 - THE MC>이다. 

 

 

1992년 시작된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가 그 시작이다. 그 뒤를 1995년부터 <이문세쇼>가, 1996년에 <이소라의 프로포즈>, 2002년 <윤도현의 러브레터>가 바통을 이어받고, 2009년부터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시작되어 2020년 500회에 이르렀다. 햇수로만 28년이다. 

이문세, 이소라, 윤도현과 함께 한 시간 여행
그 시간을 함께 추억하기 위해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앞선 프로그램들에서 MC를 맡았던 이문세, 이소라, 윤도현을 초청했다. 이문세, 이소라, 윤도현이 프로그램의 첫 MC를 맡았던 그 날을 추억하며 시작된 '시간 여행'은 시작된다.

그 시절을 보니, 그 자리에 앉은 이문세, 이소라, 윤도현이 이제는 제법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 시간,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윤도현, 유희열은 <이문세쇼>가 첫 데뷔 무대였고, 이소라 역시 세션으로 활동하던 시절을 지나 신인으로 <이문세쇼>에서 솔로 가수로서 첫 선을 보였다.

 

 

정말 정글에서 갓 튀어나온 듯한 기세로 '타잔~'을 우렁차게 불러대던 그 시절 기세등등하던 신인 윤도현과, 그 때나 이 때나 썰렁한 농담 한 자락을 얹어 분위기를 애매하게 만들어 버리는 윤도현의 말대로 살아있는게 기적인 듯한 신인 유희열의 모습은 말 그대로 '격세지감'이다. 정말 헤어진 연인 생각에 흐르는 눈물로 '제발'을 부르다 뛰쳐나간 자신의 모습을 보며 여전히 눈물이 글썽하지만 담담하게 그 시절을 회고한 이소라는 <이소라의 프로포즈> 때보다 나이는 들었지만, 그 세월만큼 편안해 보인다. 

MC들 뿐인가. 다른 MC들만큼이나 달랐던 프로그램의 성격, 공개방송으로 진행되어 사전에 분명 노래를 안부르기로 했지만 흘러나오는 반주 때문에 얼떨결에 노래를 부르고 마는 안성기, 강수연의 모습은 <이문세쇼>가 아니고서는 볼 수 없었던 장면이다.

이소라의 감성넘치는 연애 편지는 다시 들어도 '귀가 녹고', 가슴이 울린다. 절대 움직이지 않기로 유명한 이소라가 장국영의 리드에 따라 영화 속 한 장면을 재현한 무대는, 고 장국영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먹먹해지는 추억이다. 이제는 명 MC가 된 김제동과 신이 목소리에 모든 것을 주었다는 김범수의 데뷔 무대는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였다. 

 

 

28년, 발라드의 황금기였던 시대를 풍미했던 <이문세쇼>와 <이소라의 프로포즈>, 힙합과 인디 밴드의 전성기를 누볐던 <윤도현의 러브레터>, 그리고 K-POP에 부응하여 뮤지션 유희열이 댄스를 마다하지 않았던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그 자체로 한국 음악사의 산 증인이 된다. 

아이들을 재우고 늦은 밤 하루 종일 육아로 지친 심신을 달래주던 시간은 어느덧 다 큰 아이들과 함께 음악으로 교감하는 '공감'의 시간이 되었고, 다 자란 아이들은 집을 떠나고 이제 다시 28년을 추억하는 시간에 홀로 앉았다. 

 

 

잊지못할 실수로 등장한 <이문세쇼>의 깜짝 전화 방문에서 벌어진 해프닝도, 얼굴없는 가수 조성모의 등장도, 고 장국영의 센스 넘치는 무대도, 김제동의 촌철살인도, 그리고 세션으로 무대 뒤에서 주인공이 되어 무대 앞으로 나오기까지 음악 인생 전체가 걸렸다던 아코디언 연주자 심상락 옹의 뭉클했던 명언의 순간도 다  함께 했다. <이문세쇼>에서 <이소라의 프로포즈>, <윤도현의 러브레터>, 그리고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그 28년의 세월 동안 삶의 굽이굽이마다 위로와 안식과 즐거움을 주었다. 감사하다. 

by meditator 2020. 7. 18. 03: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