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나의 거리> 5회 거리를 걷던 창만(이희준 분)은 유나(김옥빈 분)를 발견하고 반가움에 화색이 돈다. 하지만 그도 잠깐 그는 유나가 소매치기 하는 걸 목격하고 만다. 허겁지겁 유나를 쫓아간 창만, 겨우 유나를 따라 잡아 지갑을 돌려주라고 닥달하지만 그런 창만에게 유나는 냉담하고, 뒤쫓아 온 유나의 패거리들 덕분에 뒤돌아 설 수 밖에 없다. 

바로 이 장면, <유나의 거리> 두 번 째 ost, 윈터 플레이의 <함정>이 흘러 나온다. 

네가 나를 좋아한다는 것은 함정

네가 나를 케어한다는 말은 함정

 누가 누굴 욕해 나를 찾자 가만보면 똑같은게 그냥 전부 웃기는게 함정

 (중략)

그냥 그렇게 가자

제발 날 좀 버려둬

세상 가는 길이 다 내가 가는 길이야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은 다 함정

 

네 생각이 맞을거라 믿는건 함정

참는 자는 복이온다 생각하면 함정

그런 착해빠진 생각들로 살다보면 당하고 또 당하는게 세상이다 함정




그리고 <유나의 거리>5,6회를 설명하는데 이  윈터 플라이의 <함정>만큼 적절한 노래도 없을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등장인물들이 서로 얽히기 시작하는 <유나의 거리>, 등장인물들은 각자 자기만의 인생이 파놓은 함정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유나는 아버지(임현식 분)가 죽어가면서도 손가락을 자르며 소매치기의 대를 끊어보려 했지만, 그런 아버지의 소원이 무색하게 이젠 아예 작정하고 남수(강신효 분) 패거리와 함께 소매치기 사무실을 열고 필요한 인원을 충원하며 사업에 몰두한다. 물론 그런 유나의 행동이 어떤 야심이 있어서는 아니다. 유나는 늘 혼자 일하는 게 편했지만, 우연히 얽혀들게 된 남수 패거리의 딱한 사정에 자신의 기술을 전수하고자 마음을 먹게 된다. 킬리만자로의 표범보다는, 거리의 하이에나라도 조금 덜 외로운 길을 택했다고나 할까. 

하지한 이렇게 삶의 함정에 빠져드는 것은 유나만이 아니다. 
유나와 함께 사는 미선은 이미 간통죄로 감옥을 한번 들어간 경험이 있음에도 여전히 유부남의 등을 쳐먹으며 사는 생활을 자신의 주업으로 한다. 돈이라면 사랑 없이도 사랑을 나눌 수 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미선은 헤어지는 조건에 원하는 건 뭐든 해주겠다는 카페 사장 부인의 호소에, 이번에는 어떻게 하든 아파트 한 채는 챙겨야 겠다고 속내를 밝힌다. 하지만 사랑없이도 남자를 만날 수 있다고 하는 미선은 정작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또 다른 사랑없이 웃음을 파는 남자들을 만나러 간다. 

<유나의 거리>에서 유나도, 미선도 드라마 속 등장하는 여러 가지 삶 중 하나의 유형을 사는 사람일 뿐이다. 소매치기를 해서 병든 어머니를 모시고 동생을 가르친 남수처럼, 비록 불법이지만 소매치기도 밑바닥 사람들이 사는 인생살이의 한 방법이다. <유나의 거리>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장면은, 유나가 이제는 손을 턴 선배 소매치기 언니를 양순(오나라 분)을 만나, 진지하게 자신이 더 나쁜가, 미선이 더 나쁜가를 물어보는 장면이다. 그 장면에서, 유나는 자신은 그저 남의 돈을 잠깐 터는 것에 불과하지만, 미선은 남의 마음을 터는 것이기에 더 나쁘다면서은연중에 소매치기를 하는 자신의 세계관을 토로한다. 물론 미선이 바라보는 유나는 정반대겠다. 

할아버지 조폭 도끼(정종준 분)가 후배 조폭 똘마니들을 앞에 놓고 장황하게 자신이 몸담아 왔던 주먹의 역사를 설명하고, 한만복(이문식 분)이 말끝마다 주먹으로서의 자신의 자존심을 내세우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유나의 거리> 속 인물들은 꼴에 그것이 불법이든 어떻든 자신의 세계에 대한 자부심, 아니 자존심을 가지고 산다. 
바로 그것을, 윈터 플라이의 입을 빌어, 말한다. 삶의 함정이라고.

왜 그들은 그런 삶의 함정에 빠지게 되는 걸까?
유나가 좋아진 창만은 같은 처지인 양숙과 결혼한 봉달호(안내상 분)를 찾아간다. 소매치기를 하던 여자의 손을 씻게 만들려면 어떻게 하냐고. 그런 창만에게 봉반장은 회의적인 답을 전한다. 유나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기술이 뛰어나고, 본인이 그걸 잘 알기에 아마도 손을 씻기 어려울 거라며. 배운 도둑질이라고 할 줄 아는게 소매치기 밖에 없는 이십대 후반의 유나가, 감방을 나온지 얼마 안된 유나가 그나마 세상에서 자기 것이라며 내세울 것이 어쩌면 소매치기 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막상 손을 씻은 양순의 삶도 그리 만만치 않다. 경찰을 그만두고 노래방을 차린 남편을 위해 틈만 나면 노래방 전단지를 돌리고, 겨우 온 손님을 위해 도우미를 자청해야 하는 처지이다. 그녀가, 도우미로 들어가 부르는 '에레나의 노래'에서는 묘하게 양순의 처지가 오버랩된다. 


하지만 유나와 정반대의 선택을 한 사람도 있다. 
유나가 소개한 유나의 이웃에 싼 값으로 방을 얻어 들어오게 된 창만, 싼게 비지떡이라도 방을 헐값에 주었다는 핑계로, 창민은 만복의 요구에 이리저리 불려다니다, 망치를 손봐주러 가는 도끼의 똘마니 역에, 결국 만복이 하는 콜라텍의 기도 비슷한 역할을 맡게 된다. 하지만, 몇번 이리저리 만복의 요구에 따라 끌려다니던 창만은 단호하게 그 세계에서 발을 뺀다. 그 집에서 쫓겨날 수도, 그래서 더 이상 유나 가까이에 지낼 수 없는 상황일 수도 있는데도, 창만은 그것을 거부한다. 고등학교도 제대로 못나왔다는, 하지만 대학생인 주인집 딸보다도 아는게 더 많은 공무원 시험 준비생, 몇 달을 월급도 받지 못한 채 폐업한 식당을 지키던, 하지만, 자신의 길이 아니다 생각하니 단칼에 주먹 세계와 발을 끊는 청년 창만은, 근자에 보기 드문 드라마 남자 주인공 캐릭터이다. 허긴, 소매치기 여주 주인공 역시 드물긴 마찬가지지만. 

그러나 창만의 선택이 <유나의 거리>에서 환영받기만 하는 건 아니다. 그 어떤 이해 관계에 얽힌 적이 없는 창만임에도, 그가 자신이 하는 콜라텍을 그만두었다는 이유만으로 만복은 그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몇 대 맞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한때 창만과 함께 '노가다'를 뛰던, 그래서 창만이 만복의 수하로 들어가자 그건 너의 길이 아니라고 충고를 하던 칠복(김영웅 분)은 막상 자신이 일도 얻지 못하는 처지가 되자, 꼬박꼬박 나오는 콜라텍을 그만 둔 창만을 아쉬워한다. 하지만, 단호하게 왜곡된 삶의 함정에서 빠져 나온 창만을 기다리는 건, 정작 사랑의 함정이다. 새로 돈을 들여 방을 재계약하고, 봉반방과 특별 수사반을 꾸려 유나의 소매치기를 감시하겠다 결정한 창만의 선택은, 삶의 함정은 피했으되, 사랑의 함정으로 한발 더 깊숙이 빠진 셈이다. 

한나절이 지나도록 일감을 얻지 못한 칠복은 그만 그럴 땐 죽고싶은 심정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어쩌지 못해, 살던 가락이 그거라서, 혹은 죽고싶지 않기 위해, 저마다 자신의 삶이 파놓은 함정에 빠져들어가는 것, 그것이 <유나의 거리> 에서 사는 밑바닥 사람들의 모습이다. 


by meditator 2014. 6. 11. 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