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서 나온 태식(유건 분)을 도와 다시 소매치기의 길로 나설  뻔 했던 유나(김옥빈 분), 하지만, 유나와 태식의 작전이 사전에 창만(이희준)에게 알려지고, 달호(안내상 분)와 창만은 유나와 태식이 범행하는 현장을 덮친다. 결국 엎치락 뒤치락 몸싸움까지 하며 창만 일행은 결국 태식의 일행을 배신한 남수(강신효 분)의 도움으로 유나가 소매치기한 돈봉투를 빼앗아 경찰에 가져다 준다.

 

결국 유나는 창만과 달호의 훼방으로 소매치기의 길로 다시 들어설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런데 유나는 화가 나있다. 창만과 달호가 유나가 다시 범죄자의 길로 들어서게 한 걸 막아준 건데, 감사하기는 커녕 잔뜩 화가 나 터져버릴 듯하다. 오히려 창만은 유나의 전화를 피하고, 그런 창만에게 유나는 전화를 자꾸 걸어댄다. 결국, 다영(신소율 분)으로 인해 유나의 전화를 받고, 유나가 홀로 술을 마시던 포장마차로 창만은 향한다. 그런 창만을 향해, '다시는 보지 말자'며 막말을 하던 유나, 말로 자신의 감정을 다할 수 없는지, 결국 창만을 향해 손찌검을 한다.

 

창만이 맞는 모습을 보다 못한 다영이 거들고, 결국, 창만을 향한 분풀이는  볼썽 사나운 여자들의 육박전으로 마무리된다. 그러자, 부처님 가운데 토막같은 창만도 마음이 달라진다. 자신이 정성을 다해, 유나를 향해 최선을 다하면 유나가 자신의 마음을 알고, 자신에게로 돌아오리라 믿고, 칼도 주먹도, 심지어 친어머니를 찾아다니며 갖은 애를 썼는데, 여전히 달라지지 않는 듯한 유나에게 서운하기 그지 이를데 없다.  그런 창만에게 달호는 상처난데 고춧가루라도 뿌리는 격으로 창만처럼 외사랑을 하는 사람에게 유나는 어울리지 않는 여자라 단언한다.

 

(사진;tv리포트)

 

하지만, 마음이 서운하여, 거리에서 마주친 유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가는 창만을 유나는 한참 바라본다. 그런 유나의 눈은 많은 걸 담는다. 창만은 유나가 태식을 만나, 다시 소매치기를 하고, 그와 다시 사랑하게 될까 걱정하지만, 유나에게 태식은 그저 빚쟁이일 뿐이다. 마음의 빚쟁이.

 

유나의 마음은 복잡하다. 어린 시절 소매치기를 시작한 자신을 '사랑'의 이름으로 물심양면으로 도와 준, 그리고 자기의 죄까지 뒤짚어 써가면서 감옥 생활을 한 태식에게 유나는 마음의 빚이 깊다. 출소한 태식이 자신을 도와 달라고 했을 때, 유나는 마지막으로 그를 위해 소매치기를 함으로써 자신이 가진 마음의 빚을 청산하겠다는 심사였다. 그런데, 바로 그 일을 창만과 달호가 나타나 엎어뜨려 버리자, 유나는 자중지란이다.

 

미선과 양순의 충고로, 태식에게 이제 더는 소매치기 일을 하고 싶지 않다고 하지만, 태식은 본색을 드러내며 유나때문에 얽크러져 버린 일을 들먹인다. 그만하면 태식에게 진 빚은 갚았다고 하지만, 유나의 마음은 여전히 무겁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빚어지는 '마음의 빚'은 어떻게 청산되어야 할까?

양순은 무거운 마음으로 고민하는 유나에게 그녀의 도움으로 태식이 손을 씻을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결국, 손을 씻을 정도의 도움도 되지 않는 유나의 소매치기는 결국 악순환의 일부라고 단언하며.

또 다른 월화 드라마 <연애의 발견>에도 마음의 빚이 등장한다. 어린 시절 입양이 된 하진(성준 분)에게는 고아원의 동생 아림(윤진이 분)이게게 마음의 빚이 있다. 아림이가 입양될 뻔한 기회를 둘이 도망가서 날렸음에도, 정작 자신은, 그 기회를 잃을까봐, 아림이가 자는 사이 몰래 도망치듯 고아원을 떠났던 기억에서 비롯된 마음의 빚이다. 그로 인해, 하진은 늘 악몽과 두통에 시달린다. 하지만 정작, 아림을 만나, 그녀로 인해 여름(정유미 분)의 오해를 사면서도, 하진은 아림 앞에서 솔직해 지지 못한다. 그녀를 물적으로 돕기를 마다하지 않으면서도 끝내 자신이 고아원의 그 오빠라는 걸 고백하지 못한다. 그리고, 외국으로 떠나는 아림은, 하진에게 편지를 통해 말한다. 자신이 서운했던 건, 그가 자신을 버렸다는 게 아니라, 인사도 없이 떠났다는 그것 뿐이라고, 그러니 더 이상 마음의 빚쟁이가 되지 말라고. 하지만 그런다고 하진의 마음이 쉬이 가벼워지지는 않는다.

여름 역시 마찬가지다. 여름의 능력을 아까워하며 자기 회사의 공간까지 빌려주며 가구 박람회에 나가기를 종용하던 태하(에릭 분)의 요청을 여름은 거절한다. 더 이상 그에게 또 다른 빚을 지고 싶지 않아서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빚이 어디 있느냐고 하지만, 마음으로 진 빚은, 돈으로 청산되는 빚보다도 그 그림자가 깊다. 마음의 빚은 빚이다. 사랑이 아니다. 유나가 다시 소매치기를 하면서까지 그걸 갚으려고 할 만큼. 그리고 역으로, 창만이 유나에게 갖은 정성을 다하면 다할 수록, 유나와 창만의 관계에도, 아이러니하게 마음의 빚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오히려, 이제 유나에게 서운해 하는 창만, 그리고 그런 창만을 안타까이 바라보는 유나의 관계에서 비로소 두 사람은, 마음의 빚을 진 관계를 넘어, '사랑'을 논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음의 빚을 '불교 용어'로 '업보'라고 한다. 불교에서는, 한 생에서 다하지 못한 업보를, 몇 생을 거듭하며 갚아나가야 하는 삶의 숙제로 설명한다. 그렇게 자신이 진 빚을 다하고 나면 비로소 생명의 순환의 굴레에서 벗어나 해탈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저,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중생(中生)의 처지는, 업보를 쌓고, 지고 가는 고행길일 뿐이다.

그런 고행의 인생을, <유나의 거리> 작가는, 도끼 형님과 독사의 관계를 통해 상징적으로 풀어낸다. 유나가, 자신이 진 마음의 빚을 갚고자 태식을 도와 다시 소매치기를 하려고 할 때, 도끼의 병실에서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도끼를 넘보던 독사, 하지만 이제 위암 말기에, 고통만을 호소해 병원 자체 내에서 기피 환자가 되어버린 독사를, 도끼와, 그 주변 사람들이 품어준다. 인지상정으로 보면 독사가 일어나 무릎 끓고 빌어도 모자를 판에, 오히려 독사는 도끼의 도움을 받는다. 심지어, 독사로 인해 혈압이 내려가지 않아 병실을 바꿔주겠다는 병원 측 배려에, 도끼는 괜찮다며 거절을 하고, 독사를 그런 도끼에게, 함께 있어 달라고 간청한다.

즉, 김운경 작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빚이, 그렇게 유나가, 소매치기 한번으로 태식의 빚을 갚아내듯 단순한게 아니라고 도끼와 독사의 관계를 통해 우회적으로 설명한다. 이승에서 진 업보는, 일회성으로 갚을 수 있는, 자신이 짊어지고 갈 말 그대로의 업보임을 작가는 밝힌다. 이미 유나가 저지른 과거의 소매치기 범죄가, 어디 가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결자해지가 아니라도, 삶에는 또 다른 돌파구가 있다. 평생을 조폭으로 살아오던 도끼가, 말년에, 한 병실의 독사를 품어내고, 빌라 사람들의 윗어른으로 살아가듯, 일더하기 일의 갚음은 아니라도, 그렇게 도끼는 자신의 업보를, 풀어가고 있는 모습을 통해, 마음의 빚을 갚을 기회는 언제든지 열려 있음을 작가는 암시한다.

 

마음의 빚에서 시작된 유나의 소매치기 재범 해프닝은, 그저 유나와 태식, 창만의 삼각 관계를 넘어, '업보'라는 인간적 딜레마에 대한 진한 고찰로 이어진다. 여전히 <유나의 거리>가 보는 세상은 넓고 깊다.

 

by meditator 2014. 10. 7. 1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