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블루스>가 종영했다. 처음엔 낯설어 '자막'이 필요하기 까지 했던 제주도 사투리가 나도 모르게 우물거릴 정도로 친숙해 졌다. '어멍, 아방, 했시니? 했져?', 친숙해진 제주도 말만큼 20부작을 함께 했던 인물들도 정이 들었다. 드라마는 끝났지만 여전히 그곳 푸릉리에서 얼크렁설크렁 어우러져 살아갈 듯하다. 단 한 사람만을 빼고. 

위암 말기였던 옥동은 결국 눈을 감았다. 첫 회부터 징글징글하게 애증의 역사를 써내려갔던 옥동과 그의 아들 동석, 다행히도 두 사람은 '화해'했다. 끝내 아들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남기지 않은 옥동인데, 어떻게 두 사람은 '작은 어멍'과 '동석'이 아니라, 다시 태어나면 '어멍과  그 아들로 만나 살자는 약속을 하기에 이르렀을까?

 

 

옥동은 자신을 '미친년'이라 했다. 
옥동은 끝내 한글을 깨우치지 못했다. 글자도 모르는 여인, 겨우 물질만 하던 그녀가 딸이 바다에서 죽자, 물질조차도 할 수 없었다. 그런 그녀가 아들 동석을 키우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동석이 어멍 옥동이 말기암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여전히 안하무인으로 굴자, 은희 등 푸릉리 친구들이 모였다. 동석의 누나 친구였던 은희가 말한다. 그 누구보다 동석의 맘을 안다고. 자기도 그때 어멍이 용납이 안되었다고. 그 누구보다 이해심이 많은 은희조차 그랬다. 하지만 그런 말도 동석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외려 그의 부아를 돋울 뿐이다. '나를 이해한다고!', 버럭거리던 그는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그 회차가 끝난 후 애기 엄마인 지인에게서 톡이 왔다. 자기는 그냥 이해가 되는데 왜 드라마 속 사람들은 옥동을 이해못하는 지 이해가 안된다고. 아이를 낳아 키워본 '엄마'의 입장이라면 옥동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가 안될래야 안될 수가 없다고. 

제주의 여성들은 왜 '물질'을 하게 되었을까? 화산섬인 제주는 밭농사만이 가능한 지리적 환경이다. 그 조차도 '척박'하다. 그런 곳에서 식구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바다 밭'으로 뛰어든 건 '생존'의 모색이다. 그런 '생존'을 더는 할 수 없을 때, 글조차 모르는 옥동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옥동의 선택은 두고두고 그녀의 멍에가 되었다. 스스로 '미친년'이라 하듯, 옥동 자신도 자신의 결정을 용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새끼는 먹여살려야 했다. 

짐 실은 리어카를 끌고 가다 아들에게 이제부터 자신을 '작은 어멍'이라 부르라며, 그걸 따르지 않는 아들의 따귀를 때렸을 때 옥동은 기꺼이 그 멍에를 짊어지겠다 결심했을 것이다. 아들을 먹여살리고 학교를 보낼 수만 있다면. 하지만 먹고 입히고 학교도 보냈지만, 옥동의 처지에서 미처 염두에 둘 수 없었던 것이 평생 그녀의 발목을 잡는다. 

아들 동석은 '작은 어멍'이라 부르라던 그때부터 내내 '옥동'에 반항했다. 부러 의붓 형제들에게 맞고 돌아와 그 상처를 옥동에게 보이며 옥동의 가슴을 후벼팠다. 그렇게 스스로 '생채기'를 내는 동석의 행동은 마흔이 넘어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작은 어멍이라 부르는게 싫다며 울던 그때 그대로였다. 

 

 

동석이 컸다. 
그렇게 평생 옥동을 용서할 수 없을 거 같던 동석이 달라졌다. 옥동이 말기암이라서? 그것만은 아니다. 푸릉리 사람들의 성화에 못이겨 옥동을 모시고 의붓아버지 제사에 갔을 때만해도 동석은 그저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주는데' 하면서도, 그 '소원'을 다 들어주면 자기 한풀이를 하겠다고 별렀다. 

의붓 아버지 제사에 가서도 동석은 하던대로 했다. 결국 자신의 상처, 의붓 형제들에게 맞았던 그 상흔을 끄집어 내고, 의붓 형의 아픈 데를 들쑤셔 밥상을 뒤집어 엎었다. 그런데도 어멍 옥동은 참았다. 그저 자기 할 도리만 하면 된다던 어멍 옥동, 그런 옥동이, 의붓 형의 한 마디, '거지같은 것들'이란 그 한 마디에 '포효'를 내뿜는다. 국물도 삼키지 못해 토해낼 정도로 위중한 옥동이, 도대체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저 밑바닥에서 긁어내는 듯한 한서린 목소리로, 자신이 이 집안에 들어와서 했던 병자 뒤치닥거리를 보상하라 손을 내민다. 그러면서 말한다. 동석이 칼을 들지 않은 것만해도 어디냐고. 외레 동석이 말려야 하는 기세다. 

하지만 그래도 옥동은 여전히 동석에게 '미안하지 않다'고 말한다. 뉘집 개인 줄 모르는 개한테도 미소짓는 옥동인데, 여전히 자기에게는 한겨울 얼음장같은 그 냉랭함이 동석은 서럽다. 

그래도 동석은 '죽을 사람 소원'이라 옥동이 가자는 대로 향한다. 이제는 '수몰'된 옥동의 고향, 그곳에서 비로소 동석은 안다. 어멍 옥동이 '타지' 사람이었음을. 그리고 자기 보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도, 어머니도, 오빠도 잃었음을. 그런 옥동이었으니 그 어린 '동석'을 지키기에 얼마나 '오매불망'했을까. 

하지만 옥동은 힘이 없었다. 아버지를 처음 만났다던 구산리, 그곳에서 동석은 또 알게 된다. 열 서너 살 무렵부터 옥동이 '식당 일'을 했었다는 것을. '무슨 팔자가', 동석의 입에서 자리도 모르게 나온 말이다. 

 

 

옥동에게 따지듯 이런 저런 말을 하지만 어쩐지 동석의 기세가 점점 누구러진다. 마흔 줄의 동석, 의붓 아버지네 집에서 돈과 패물을 들고 튀어 서울로, 다시 제주로, 나름이 인생 고비를 넘겨본 동석에게 비로소 '옥동'이라는 한 사람의 '팔자'가, 아니 '인생'이 보이기 시작한다. 수몰된 골짜기에서 태어나, 가족을 잃고, 어린 나이에 식당에서 잡일을 하다, 자장면을 사줘서 좋았다는, 그래서 말기 위암에도 먹고픈 게 자장면인 어머니 옥동의 삶, 사랑하는 이 따라 제주에 왔지만 그 이는 아이들 둘만을 남기고 먼저 떠나고, 딸마저 자신을 따라 물질을 하다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아들을 먹여 살리려고 한 선택에 아들은 평생 '어멍'을 원망만 한다. 

'어멍'의 죽음 앞에서 비로소 동석의 눈에 옥동이란 한 사람이 보인다. '내 어멍'이 아니라, 죽을 힘을 다한 여정에도 '어멍'이란 말 한 마디 하지 않는 아들과의 여정이 제일 행복한 시간이라는 옥동의 '가여운 삶'이. 제주에 살면서 한라산도 가보지 못한 우물 안 개구리같은 옥동의 인생이. 비로소 동석은 옥동의 철부지 아들에서 이동석이란 한 사람의 '어른'으로 자라나고 있다. 그래도 동석은 더 늦기 전에 옥동과 '화해'할 수 있었으니 다행이 아닐까. 

'부모'와 '자식'의 인연은 피를 나눈 귀한 것이지만, 그만큼 세대만큼의 '해원'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자신이 살아온 '경험'의 울타리를 넘지 못해 끝내 '이해'와 '화해'의 손을 내밀지 못한다. 자식이, 부모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는 무엇일까? 노희경 작가는 자식의 어른됨을 말한다. '부모'를 부모의 자리에서 내려, 한 사람으로 풍파의 시간을 겪어낸 불완전한 인간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부모'를 온전히 이해하고, '화해'할 수 있는 거라 말한다. 그리고 그럴 때 비로소, '아이'였던 자식도, '어른'으로 살아가게 된다고. 

드라마의 일관된 주제는 '살아있는 자 모두 행복하라'였다. 옥동의 삶을 돌아보니 그녀의 선택을 묻고 따지기가 무색했다. 그저 그 삶을 헤아리고 나면 다시 한번 '어멍'과 아들의 인연으로 만나고 싶어지는 것을. 사랑은 이유를 댈 수 없는 거라던가. 가장 행복한 일이 '아들과 함께 하는 이 순간'이던 옥동은 기쁘게 아들을 위해 된장찌개를 끓여놓고 세상을 떠난다. 장사도 지내지 말라던 옥동의 유언이 무색하게 그녀의 부고에 모두 울며 달려온다. 사랑하는 이만을 믿고 제주에 온 산골짜기 마을의 옥동, 그 인생은 그저 외롭기만 한 건 아니었다. 

by meditator 2022. 6. 13. 1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