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찌기 어린 시절 추리 소설이란 장르의 시작을 셜록 홈즈에서 시작한 이 사람에게, 영화 <셜록 홈즈>가 셜록 홈즈의 캐릭터의 핵심조차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듯한 냉소를 자아내는 결과물이었다면, 영국 드라마 <셜록>은 어린 시절 맛보았던 셜록 홈즈의 추억의 맛과, 그것이 21세기 버전으로 변환되면서 새롭게 느끼게 되는 변환의 맛이 적절히 섞인, 잘 만들어진 퓨전 요리를 맛보는 심정과도 같다. 


어린 시절 추리 소설의 기억은 셜록 홈즈와 괴도 루팡에게서 시작되었다. 고지식한 어린 맘은 그 영웅과 도둑 중 누군가의 손을 들어주어야만 할 거 같았고, 두 사람의 대결을 그린 <기암성>을 읽은 후 내 마음의 추는 확연하게 루팡의 편으로 넘어갈 수 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분명 셜록 홈즈는 정의를 실현하는 탐정이었지만, 사건을 해결하는데 있어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오히려 괴도보다도 더 인간미가 없는, 그저 탐정이라는 그 직종에만 헌신하는 인물처럼 보였으니까.
그래서, 21세기판 셜록 홈즈의 버전 <셜록>이 셜록 홈즈를 반사회적 인격 장애가 있는 소시오패스(베네딕트 컴버배치 분)로 설정했을 때 어린 시절 맛보았던 셜록 홈즈가 떠올라 무릎을 칠 수 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늘 셜록 홈즈의 곁에서 머물며 동료이자, 조력자가 되는 왓슨(마틴 프리먼 분)을 참전 의사로 설정한 것 역시 지극히 21세기다운 해석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죽음의 틈바구니에서 트라우마를 가진 인간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소시오패스와 동료가 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심지어, 이번 시즌3에 이르러서는 왓슨의 마누라까지 소시오패스로 만들어 버리는 패기에는 두 손 두 발을 다 들 수 밖에 없다. 유유상종이랄까, 그런데, 그게 묘한 위안을 주는 건 어떻고. 


국영 방송 BBC에서 제작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영국 드라마에는 묘한 반사회적, 혹은 반정치적 정서가 흐른다. 일찌기 <닥터 후>의 시즌에서 영국 수상을 외계인의 후예로 묘사하는 신성 모독을 불사하던 전통은 <셜록>이라고 다르지 않다. 소시오패스와 참전 트라우마을 가진 의사가 해결하는 사회적 사건이라지만, 그 사건을 일으키는 주인공들은 오히려 그들보다 더 병적이요, 이른바 영국 정보부의 중요 직책을 가진, 셜록의 형 마이크로프트(마크 개티스 분)역시 소시오패스인 동생보다 한 수 위처럼 보인다. 
시즌3의 마지막 미디어 재벌 마그누센을 총으로 죽은 셜록이 형을 사는 대신 동유럽 첩보 작전에 동원되었다가, 비행 몇 분만에 모리아티의 등장으로 귀국해야 하는 설정처럼, 정치의 세계에 죄의식과 형벌은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세계가 오늘날이라는 걸 드라마는 놓치지 않는다. 
이런 드라마의 분위기는 정신병이 사회적 병리 현상으로 대두된 현대 사회를 가장 상징적으로 대변하고 있으며, 협잡과, 농간과, 비리가 점철된 현대 정치와 사회에 대한 냉소적인 시각을 거침없이 드러냄으로써 시청자들의 답답한 속을 긁어준다. 

시즌 1이 셜록과 왓슨의 캐릭터를 형성하는데 중점을 두고, 시즌 2가 절대 악 모리아티와 셜록의 대결에 치중했다면, 2년만에 돌아온 <셜록 시즌3>는 불과 세 편의 시리즈를 오랫동안 기다려준 시청자들에게 보답을 하려는 양, 시리즈의 다종다양한 매력을 점층적으로 보여주었다.

첫 회, <빈 영구차>에서는 호청자들을 경악으로 몰아넣었던 시즌2의 마지막 사건, 즉 옥상에서 떨어져 죽은 셜록의 미스터리를 풀어내며, 셜록과 왓슨의 재회가 중심 스토리였다. 하지만, 스토리 외에, 눈이 돌아갈 정도의 장면 전환과, 화려한 카메라 워크를 통해, 스타일리쉬한 <셜록>의 특기가 무엇인가를 뽐내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1회는, 2년간을 골머리를 썪었던 셜록 죽음의 비밀을 푼 것 외에, 현란한 영상미만으로 어딘가 2년간의 갈증이 부족하다 싶었다. 이걸 보자고 오랜 시간을 갈망해 왔는가 허무해 질 무렵, 이어진 2회, <세 사람>은 잘 짜여진 추리극을 보는 맛을 즐기게 해주었다. 흩어져 지나갈 뻔한 사건, 사람들이 마지막에 가서 한편의 스토리로 짜여지는 즐거움은 역시나 <셜록>이라는 확신을 들게 해주었다. 하지만, 굳이 털어서 먼지를 내보자면, 2회의 스토리는 추리를 위한 추리랄까. 마치, 일본 만화 <명탐정 코난>의 알고 보면 어쩐지 뻔한 밀실 살인 사건을 보는 작위적인 맛이 슬며시 느껴지려는 찰라. 시즌3의 마지막 회, <마지막 서약>은 결국 또 다시 시즌4를 기다리는 <셜록>의 노예로 시청자들을 묶어두는 화룡점정의 한 편이 되었다. 


특히나, 시즌3의 3회, <마지막 서약>은 가장 널리 알려진 추리 소설 셜록 홈즈의 에피소드이기도 하다. 냉소적인 탐정 셜록 홈즈를 21세기판 소시오패스로 재탄생 시켰듯이, 은밀한 밀애의 편지를 빌미삼아 정치적 협잡을 꾀하는 정적의 이야기를 정보의 보고를 통해 현대사회에 중요 지위를 차지하는 미디어 재벌의 현신으로 해석한 핵심 스토리는 그 자체만으로도 뒷통수를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데다, 원전 속의 편지를 가장 잘 보이는 편지 보관함에 숨겨두었던 미스터리를 천재적인 두뇌 속에 저장이라는 아이디어로 재해석한 것에 이르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시즌3의 매력은 그저 점층적으로 흥미를 고양시켰던 사건과 그 해결에만 있지 않다. 소시오패스라는 인간 관계의 부적응을 상징하는 인물 셜록이, 왓슨과 그의 아내라는 삼각 관계 속에 인간미의 언저리를 서성이는 모습에서, 시청자들은 묘한 동질감과 공감의 고통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가장 인간적인 인물 왓슨이 택한 친구, 그리고 이제 아내마저 소시오 패스라는 지경에 이르르면, 재미를 넘어, 연민의 경지에 이르르게 된다. 가장 비정상적인 인물과, 비정상적인 관계들이 빚어내는 불협화음의 인간미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위안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모리아티의 '내가 보고 싶었지?'라는 반문이 없어도, 우리들은 저 반사회적 인간들의 모험의 다음 시즌을 기다릴 수 밖에 없는 볼모가 된다. 그래서 시즌4는 언제 만들어 진다구요?


by meditator 2014. 1. 20. 19:19